[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63) 동료 · 제자 도움으로 에페소 복음화 이뤄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에페소 터키 서남쪽 지중해안 스미르나(이즈미르) 항구도시에서 남쪽으로 7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도시가 에페소다. 바오로 당시 인구 약 20만 명의 에페소는 아시아 속주의 수도로서 정치 · 경제 · 문화 · 교육의 중심지였다. 에페소에는 여러 종족이 섞여 살았는데, 그리스인이 압도적이었고 유다인 그리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에페소의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그리스인들이 ‘아르테미스’(로마신화에서는 ‘디아나’로 부른다)라고 부르는 여신을 숭배하기 위하여 세운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이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죄인들의 피난처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 지어진 이 신전은 기원전 356년 헤로스트라트의 횃불에 의한 화재로 완전히 불탔고, 그 후 고트족과 비잔틴의 공략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흔적들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에페소의 은장이들은 은으로 아르테미스 신상 모형을 만들어 순례객들에게 팔아서 수입을 올렸는데 바오로의 활발한 전도로 수입이 줄자 은장이 대표인 데메트리오스가 동료 은장이들과 시민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의 일행인 가이오스와 아리스타르코스를 붙들어 노천극장으로 끌고 가서 난동을 피웠다(사도 19,21-40). 바오로 시대의 에페소는 번창한 항구도시였으나 카이스트로스 강을 타고 흙이 씻겨 내려오는 바람에 현재의 에페소는 바다에서 10킬로미터 안쪽으로 들어와 있고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 유적지가 되었다. 에페소에는 사도 요한의 순교터 위에 세워진 성요한성당과 기원후 431년 제3차 공의회가 열렸던 성모님 기념성당 그리고 성모님께서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마리아의 집이 순례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교회와 선교 에페소에 그리스도교가 전해졌다는 가장 오래된 전거는 사도행전 18장이다.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이미 존재하던 그리스도교를 만났던 것 같다. 바오로는 2차 선교여행(50~52년)이 끝날 무렵인 52년경에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와 함께 코린토를 떠나 에페소에 도착하여 유다교 회당에서 유다인들을 상대로 전도하였다(사도 18,18-22). 이후 바오로는 아퀼라와 프리스킬라를 에페소에 남겨두고 에페소를 떠났다가 3차 선교여행(53~58년) 동안에 다시 이곳에서 3년 동안 머물면서 전도하였다(사도 20,31). 한편 바오로가 에페소를 떠나 있는 동안에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폴로가 에페소 회당에서 전도했는데, 사도행전 18장 24-28절에 의하면 아폴로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으므로 아퀼라와 프리스킬라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사도행전의 보도를 감안하면 에페소 교회는 52~54년경에 바오로와 그의 동료 아퀼리와 프리스킬라 그리고 아폴로의 활동으로 생겨났다고 하겠다. 53년경 바오로는 3차 선교여행을 떠나 터키 중부 갈라티아 지방 교회들과 그 남쪽 지방 교회들을 돌아보고 나서 에페소로 내려가 무려 27개월 가까이 전도하였다(사도 19,8·10 20,31). 에페소에서는 “큰 문이 열렸다”고 바오로 자신이 말할 만큼 전도가 잘 되었다(1코린 16,9). 또한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전도할 때 제자 에파프라스를 시켜 콜로새, 라오디케이아, 히에라폴리스에 교회를 세웠으며(콜로 4,12-16), 갈라티아지방 교회와 코린토교회 그리고 필리피교회와 콜로새교회의 신자인 필레몬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가톨릭신문, 2009년 5월 17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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