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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욥기: 신학적 논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6 조회수4,508 추천수2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욥기 (17) : 신학적 논지

 

 

편협한 전통에서 해방 시도

 

「삶의 법칙」이 제대로 통용되지 않는 곳이 있다. 그 곳의 이름은, 의외일 수 있지만, 바로, 「삶」이다. 삶은 삶의 법칙대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지난주까지 우리는 욥기 개관과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았다. 욥이 마주한 삶의 문제(고통)가 무엇이었으며, 그 문제는 이스라엘의 전통적 「삶의 법칙」(신명기적 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욥기 해설의 마지막 단계로 그 신학적 메시지를 간략히 정리해보기로 한다.

 

 

왜?

 

욥기에서 무엇보다 부각된 주제는 『왜?』라는 물음이다. 죄 없이 성실하게만 살아온 당신이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들을 잃어야만 했다면(1장), 급기야 건강까지 잃고(2장), 사랑하는 아내에게조차 신랄한 비난과 독설을 들어야했다면, 우리 중 누구도 왜? 라는 항변에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욥기의 저자는 그 왜? 에 대한 답을 「올바른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찾아내고 있다. 즉, 불현듯 다가온 고통은 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인 것으로 하는 은총과 지혜의 장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욥기가 제시하는 가장 궁극적 주제는 인간 실존과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고통 중에 어떻게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이스라엘적인, 이스라엘을 위한…

 

욥기의 또 다른 주제는 「이스라엘 전통의식에 대한 재해석」이다. 욥기는 거의 모든 배경과 등장인물을, 이스라엘 밖의 것으로 설정하고 하느님의 이름조차 이스라엘적 명칭 「야훼」를 벗어남으로써, 언뜻 보기에는 이스라엘과 무관한 이야기를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을 보면 이내 생각이 달라진다. 가장 이스라엘적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신명기적 의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이스라엘 전통 교의의 한계와 허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설정된 저자의 의도적 발상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즉 저자는 전통 사상에 직접적으로 메스를 대기보다, 이야기를 선회하여 묘사함으로써 좀 더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병폐를 수술하고 있는 셈이다.

 

 

겉도는 이론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삶 자체」보다 「삶의 원리」나 「원칙」이 더 비대해졌다는 데 있었다. 욥기의 저자는 「중심」과 「주변」이 전도될 때 야기되는 불안한 긴장을 정면에서 본 사람이었다. 신명기적 사고로 욥의 고통을 설명하려던 친구들의 논지를 통해, 이론만으로 삶을 이해하던 당시 이스라엘의 풍조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느님의 진리, 정의, 자유의지는 결코 인간의 공식 혹은 논리에 의해 제한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욥기가 제시한 가장 뛰어난 신학적 성과는 「원칙」에 「사실」을, 「개념」에 「인간」을 대치시켰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비본질적인 것(원리, 이론, 교의)을 잘라냄으로써 본질(인간, 살아있는 구원)을 제대로 보게 하는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선행한 만큼 복을 받고 죄 지은 만큼 벌을 받는다는 신명기적 원칙은 매우 공평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구원의 중심에 「인간」이 서있는, 「인간 중심적(신 중심적이 아닌) 논지」임을 배제할 수 없다. 하느님의 은총과는 무관하게, 인간 스스로의 선행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여타종교의 교의(자력自力 구원)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욥기의 저자는 「인간의 선행」보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구원의 핵으로 제시함으로써, 편협한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하고 있다.

 

 

복제될 수 없는 행복

 

인간이 복제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인간은 복제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행복과 구원은 복제될 수 없다. 욥을 다시금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고통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이해였다. 나를 고통에 이르게 한 사건 혹은 인물에 대한 복수나 시비 따짐이 묘책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정체성(하느님을 벗어나서는 결코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에 대한 이해가 고통을 종식시키는 길임을 분명히 깨달은 것이다. 고단하지만 정직했던 욥의 여정을 통해, 고통 때문에 당황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희망을 품게 되기를 기원하며, 욥기 해설을 마친다. 다음 주부터는 「잠언」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가톨릭신문, 2004년 2월 1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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