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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 미르얌 - 결코 흔들림 없는 확고한 믿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3 조회수4,531 추천수2
[성경 속의 여인] 미르얌

결코 흔들림 없는 확고한 믿음,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의 모범


구약성경에서는 미르얌에 관한 짤막한 기록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이 간략한 기록들을 가지고 미르얌 생애를 재구성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미르얌은 특유의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이른바 ‘미르얌의 노래’에서 칭송되는 사건은 이스라엘의 신앙역사의 시초에 있었던 사건이다. 홍해바다는 건넜던 사건은 오늘날까지 유다인과 그리스도인에 의해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이 사건을 유다인은 파스카 축제의 의식을 통하여 기억하고, 그리스도인은 부활성야 전례를 통해 기억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 정착하여 번성하고 더욱더 강해졌을 때,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하려고 강제 노동을 부과시켰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가게 되자,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이스라엘 백성은 강제 노동에 시달려 탄식하며 하느님께 부르짖었다(탈출 2,23 참조). 하느님께서는 그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개입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집트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그럼에도 파라오와의 협상은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을 죽이는 재앙을 내리셨을 때, 비로소 파라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축의 떼와 함께 이집트를 떠나는 것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온전하게 빠져나갈 수 없었다. 파라오와 그 관리들의 생각은 어느새 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마음이 완고해진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이 강제 노동을 피하여 이집트를 떠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병거를 준비시켜 이집트를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게 했다. 이것이 바로 탈출기의 장면이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얕은 홍해바다에 이르러, 가축 떼와 함께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의 무거운 병거는 진흙에 빠져버렸다. 이때 “예언자이며 아론의 누이인 미르얌이 손북을 들자, 여자들이 모두 그 뒤를 따라 손북을 들고 춤을 추었다. 미르얌이 그들에게 노래를 메겼다. ‘주님께 누래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쳐넣으셨네.’”(탈출 15,20-21) 홍해바다를 건넌 이 사건은 후대에 많이 각색되어 이야기되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사람들에 의해 서로 다르게 보도되거나 이야기되었다. 때문에 이런 물음이 제기된다.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하느님께서 정말 개입하시어 행동하셨는가? 아니면 그 사건이 완전히 ‘자연적’으로 일어났는가? 이 기적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기적은 자연법칙을 깨뜨리는 일과 항상 결합되어 있는가?

홍해바다의 사건은 성경의 ‘원(原)기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적(Wunder)과 마술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기적은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으로서 인간에게 결단을 내리게 하고 참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사건이다. 이에 반해 마술(Mirakel)은 자연의 법칙을 정지시키거나 깨트려서 생기는 사건이다. 홍해바다가 동품으로 적당하게 말랐는지, 물이 마치 벽처럼 좌우로 나누어져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지나갔는지, 이집트의 병거가 젖은 진흙더미에 갇혔는지 등에 관한 구출의 구체적인 ‘방법’은 미르얌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관건은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으로 이루어진 구출 자체이다. 물론 이 사건을 전혀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곧 이 사건은 자연의 힘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우연이나 행운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도 그런 우연 내지 행운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을 신앙의 눈으로 볼 경우에만, 하느님께 인도하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르얌은 분명히 여예언자로 지칭되었다. 예언자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자와 심판관과 왕이신 하느님을 믿도록 인도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데 있다. 곧 주님께 순종하는 백성으로 만드는 데 있다. 때문에 그의 승리가에는 ‘하느님께서 이루셨도다.’는 선포가 있다. 이것은 신앙의 환호이다.


“나는 미르얌을 보냈다.”(미카 6,4)

탈출 사건이 있은 지 몇 백 년 후에 예언자 미카는 미르얌을 기억한다. 파라오의 군대가 가까이 추격해 왔을 때, 그토록 갈망했던 자유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말하였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탈출 14,12) 미카에 따르면 당시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하시기 위해 앞서 모세와 아론과 미르얌을 보냈다(미카 6,4 참조). 이 세 인물은 레위 지파 목록에서 아므람의 자녀로 소개된다(1역대 5,29 참조). 따라서 이들은 서로 형제자매지간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광야 체류를 전해주는 옛 보도에는 미르얌이 아론의 누이로 소개되고, 아론과 미르얌은 모세 뒷전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모세가 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있는 모습을 강조하는 후대의 전승을 통해 오래된 전승내용이 변화되는 것은 탈출기 15장에서도 볼 수 있다. “모세의 노래”(탈출 15,1-18)는 미르얌의 노래보다 후대의 것으로서 거의 같은 말로 시작한다. “나는 주님께 노래하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말과 기병을 바다에 쳐넣으셨네.”

미르얌은 민수기 12장에서도 언급된다.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 미르얌과 아론은 모세를 비판했다. 이 이야기는 모세가 아론과 미르얌보다 더 탁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구실을 한다. 미르얌은 이렇게 이의를 제기한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민수 12,2) 하지만 미르얌의 이의 제기는 거절된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와 함께 얼굴을 맞대고 말씀하시는 반면, 예언자들과는 단지 꿈이나 환시를 통해서만 말씀하신다고 밝히신다(민수 12,6-8). 결국 미르얌의 이 반항은 벌을 받게 된다. 그는 문둥병에 걸려 이스라엘의 진지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론과 모세의 간청을 들어주신다. 곧 미르얌은 7일 동안 진지 밖으로 격리되었다가, 치유되어 공동체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미르얌은 계속 백성들과 여정에 임하다가 카데스에 이르러 죽고 친이라는 광야에 묻힌다(민수 20,1 참조).

미르얌은 레베카나 드보라처럼 성경의 강한 여인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자기 백성에 앞섰던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미르얌과 같이 드러내고 활동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집중적인 비판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모세와 미르얌이 서로 다투는 이야기에서(민수 12,1-16 참조) 여예언자 미르얌은 ‘평범하고 진부한 여성’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미르얌의 신앙을 결코 훼손하지 않는다. 미르얌은 앞장서서 신앙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한 유일한 인물은 분명 아니다. 유다인 전승에 따르면 미르얌은, 위기상황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하고, 하느님께 대한 충실한 신앙을 훈계하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선포했던 일곱 여예언자 가운데 하나이다. 미르얌은 하느님께서 홍해바다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셨고,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백성이 되도록 인도하셨던 분이라고 확고하게 믿었다. 이런 믿음으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고,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쌍백합, 제29호, 2010년 여름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화산동 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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