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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여호수아기 6장: 완전 봉헌물(헤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07 조회수6,502 추천수2
역사서 해설과 묵상 (27)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소와 양과 나귀 할 것 없이, 성읍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칼로 쳐서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여호 6,21)


예리코 성을 공격하기 전에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서 저 성읍을 너희에게 넘겨주셨다. 성읍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한 완전 봉헌물이다”(여호 6,16-17).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리코 성읍 안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을 칼로 쳐서 죽이고 성읍과 그 안에 있는 것을 모조리 불태웠다.

이런 완전 봉헌은 신명기 7장과 20장의 전멸규정에 따른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셔서 너희가 그들을 쳐부수게 될 때, 너희는 그들을 반드시 전멸시켜야 한다”(신명 7,2). “주 너희 하느님께서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저 민족들의 성읍에서 숨 쉬는 것은 하나도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 모조리 전멸시켜야 한다”(신명 20,16-17).

이런 완전 몰살 봉헌을 히브리어로 ‘헤렘’(herem)이라 한다. 헤렘은 ‘둘러막다, 둘러싸다, 제외하다.’라는 뜻이다. 이 관습은 고대 모든 민족에게 다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도 이런 고대의 관습을 어느 정도는 채용했던 것 같다. 적군의 포로와 노획물은 하느님의 왕국에 가합할 수 없으므로 죽이고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대에 가서 이 규정이 다소 완화되었다. 다시 말해 사람만 죽이고 노획물을 차지했다. 신명기 2장과 3장은 헤스본과 바산 성읍을 쳐부수었을 때 그렇게 했다고 한다. “모든 성읍에서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전멸시켰다. 그러나 성읍들의 모든 가축과 노획물은 전리품으로 거두었다”(신명 3,6-7). 더 후대로 가서는 남자만 죽이고 여자는 살려두었다(민수 31,18; 판관 21,12 참조).

헤렘은 고대의 거룩한 전쟁의식(聖戰儀式)의 일종이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자기네들이 섬기는 신이 총사령관으로서 승리했다고 생각했기에 전리품을 신에게 봉헌하는 의식을 거행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람과 짐승은 모두 살육당했고, 도시와 거기 있는 물건은 파괴되거나 의식을 위해 남겨졌다. 이로써 전리품이 신에게 봉헌되었던 것이다. 성경 밖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를 기원전 9세기 모압 왕 메사의 비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명기는 이방종교예식이 이스라엘의 신앙을 전염시키는 가운데, 비록 오래 전부터 성전(聖戰)이 실시되지 않던 시대에 있을지라도 헤렘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따라서 신명기 20장 16-18절의 헤렘 규정은 실제로 그렇게 완전 몰살 봉헌하라는 모세의 규정이 아니라, 후대 편집자의 첨가라고 보아야 한다. 편집자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전멸시키지 못해 이방종교에 물들었던 과거 역사에 대한 후회를 헤렘 규정으로 표현한 것 같다.

기원전 1200년경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정착한 뒤, 그곳에 살던 민족들의 종교와 문화에 물이 들어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다. 그 결과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배라는 최악의 국가적 불행을 체험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만일 가나안에 살던 민족들을 전멸시켰더라면 그런 멸망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후회했다. 신명기 7장과 20장의 전멸규정, 여호수아기 6장의 전멸 규정 시행은 그런 후회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신명기 자체가 그런 전멸규정과 반대되는 규정을 언급한다. 전쟁에서 사로잡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신명기 21장의 규정은 가나안에 살던 민족들을 전멸시킬 수도 없고, 전멸시켜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기 13장과 판관기 1장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가나안 땅에 사는 민족들을 전멸시키라는 신명기의 규정은 실제로 시행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현대의 독자들에게 정말 충격적인 규정 곧 이방민족을 몰살하여 하느님께 봉헌하는 헤렘 규정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묵상주제

“너희는 완전 봉헌물에 손을 대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탐을 내어 완전 봉헌물을 차지해서 이스라엘 진영까지 완전 봉헌물로 만들어 불행에 빠트리는 일이 없게 하여라”(여호 6,18).

[2013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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