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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성바오로의서간들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13 조회수3,519 추천수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바오로 서간의 연대적인 순서


번호

서신명

저작연대

저작장소

수신인

비고

1

데살로니카전후서

50년

고린도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 체류기간(약1년반, 행18)

2

고린도전서

55년

에베소

고린도교회

  바울의 에베소 체류말기

3

고린도후서

55년

마게도냐

고린도교회

  고린도전서 보내고 수개월 후

4

로마서

57,58년

고린도

로마교회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도중

5

갈라디아서

56년

마게도냐

갈라디아교회

6

골로새서

62년

로마옥중

골로새 교회

  바울의 1차 투옥 기간 중

7

에페소서

에베소교회

8

필립보서

빌립보교회

9

빌레몬서

빌레몬

10

디모데전서

63년

마게도냐

디모데

  바울의 1차 석방후 2차 투옥 전

11

디도서

66년

마게도냐,니가볼리(?)

디도

  바울의 2차 투옥 기간 중

12

디모데후서

66년

로마옥중

디모데



저술 연대 순으로 나열한 바울의 서간 

孫 元 鎬  


1. 서 론


바울의 서간문을 알기 위해서는 바오로와 그의 전도여행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본 서론에서는 바오로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그의 전도여행을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쫓아가도록 하겠다.


그리고 본론부에서는 각 서간들을 바오로가 기록한 연대순으로 하여 정리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론에서 서술되어질 바울의 전도여행은 본 바오로서간의 순서를 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 되리라 생각한다.




1.1. 바오로의 회심(A.D.35)


바오로서간의 저자인 바오로는 당시에 매우 번성하고 교육의 중심지인 다르소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상속 받았으며(행22:25-28), 다르소의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다(행21:39). 또한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3:6)라고 말할 정도로 열렬한 율법주의자였다. 이 열심으로 그는 교회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다.(고전15:9; 갈1:13,23).


그러나 다마스쿠 길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을 하고 이방인의 전도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아라비아로 갔다가 돌아와 다마스쿠 근처에서 3년을 지낸 그는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15일 동안 머물렀다(행9:22-26;갈1:18). 고향인 다르소로 가서 잠시 머물렀다가 시리아 안디옥으로 가서 1년 동안 머물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선교사로 임명 받아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행11:27-30; 12:25).



1.2. 제1차 전도여행(A.D.46-48)


바오로와 바나바와 마가의 전도여행은 안디옥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인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 섬의 살라미에 도착한 후 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구브로 섬의 서부 지역인 바보로 들어가 복음을 전파하였다(행13:4-12) 이곳의 전도 이후부터는 바오로란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한다.




바오로와 그 일행이 배를 타고 버가(소아시아)에 도착한 후,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13:13). 바오로와 바나바는 내륙지방인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갔다. 이곳에서 바오로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유대인들이 박해를 하여 루스드라로 가게 되었다.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고치는 이적을 행하지만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부터 바오로는 쫓아 나선 유대인들의 방해로 더베로 갔다(행14:19). 더베를 방문하여 많은 결실을 거둔 바울과 바나바는 이전에 그들이 전도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에 들어가서 그들을 다시 격려한 후(행14:20-23),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버가에서 복음을 전한 후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1.3. 예루살렘 총회(A.D.49)


유대로부터 안디옥으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 신자들도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다(행15:1). 이같은 문제로 안디옥 교회는 바오로와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보내게 되는데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결국 이 총회에서 이방인 성도들이 최소한의 몇 가지만 삼가해 줄 것을 결정하고(행15:19-21,28,29), 바오로와 바나바, 바사바와 유다와 실라를 통하여 이방 교회에 전달하도록 하였다(행15:22). 이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고자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갈라디아서를 썼다고 본다(A.D.49).




1.4. 제2차 전도여행(A.D.50-52)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사항을 안디옥 교회에 전달해 주었던 바오로와 바나바는 얼마 동안 안디옥에서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쳤다(행15:30-36). 이들은 구브로 섬과 소아시아 남부에 세워진 교회들을 돌아보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버가에서 헤어진 마가와 동행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인하여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자기 고향 근방으로 떠났으며(행4:36), 바오로 역시 자기 고향 쪽으로 향하였다. 이때부터 바오로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실라와 함께 하였으며, 루스드라에서 디모데와 합류하였다(16:1-3).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에 이르러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드로아로 갔다(행6:6). 다시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네압볼리로 가서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하였다(행16:6-12).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다 빌립보의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감옥에서 나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행17:1). 이곳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많은 헬라인들과 귀부인들을 전도하지만 유대인들의 시기로 쫓겨났다.




밤에 바오로와 실라는 베뢰아로 가서 전도를 한 후(행17:10), 아덴에 가 그곳의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설교를 한다(행17:22). 이후에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일년 육개월 동안 말씀을 전하면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를 보냈다(A.D.52). 또다시 반대에 직면하여 에베소에 갔다가 잠시 전한 후 배를 타고 가이사랴에서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귀환하였다(행18:21,22).



1.5. 제3차 전도여행(A.D.53-58)


안디옥에 얼마 있다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다니며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다가(행18:23), 에베소로 가서 전도하였는데(행19:1-41), 이곳 에베소에서 바오로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개의 편지를 썼다(A.D.55-58). 데메드리오의 사건으로 에베소를 떠나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행20:1-5). 바로 이때에 이 지방에 있는 고린도를 출발하기 직전에 로마서를 써 보내었다(A.D.57/58).


무교절 후에 바울은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로 가서 이레 동안 머물며 강론을 하였다(행20:6-12). 이 후 앗소에서 배를 타고 미둘레네, 기오, 사모를 거쳐 밀레도에 도착하였다(행20:13-16). 이곳에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작별을 하고(행20:17-38), 행선하여 제자들의 반대에도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났다(행21:1-17). 둘레마이에서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하루를 묵은 후 가이사랴에 이르러 빌립의 집에서 아가보라 하는 선지자로부터 예루살렘에 가지 말 것을 듣지만 계속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예루살렘에 도착을 하여 '형제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행21:17).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이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했다는 소문 때문에 유대인 신자들을 무마하기 위하여 정결예식을 행하였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방인 드로비오를 성전 안뜰로 데리고 들어왔다는 말로 군중을 충동하여 바울은 심하게 폭행을 당하였다(행21:28-29). 이 때 로마군 천부장의 도움을 받아 빠져 나왔다. 그러나 바울의 고발당한 이유를 확실하게 알기 위하여 천부장은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 앞에 데려갔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바울을 죽이고자 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행22:30).




1.6. 결박과 순교(A.D.59-67/68)


대제사장과 몇몇 유대 지도자들은 가이사랴까지 찾아와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였다. 벨릭스 총독은 첫 재판을 한 후 재판을 연기한 후 2년이 지날 때까지 연기하였다(행24:27). 이후 벨릭스의 후임인 베스도 총독에게 예루살렘에서 재판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베스도에게 로마로 건너가 네로 황제(가이사 행25:7-12) 앞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베스도 총독은 상소할 자료를 작성하기 위하여 헤롯 아그립바2세를 불러 도움을 구했다(행25:26-27).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로 가게 되었다.


로마로 가는 바울의 여행은 항해하던 중 폭풍을 만나 멜리데 섬에 상륙을 하기도 한다(행27:14-28:1). 그러나 이듬해 봄 다시 항해를 계속하여 무사히 로마까지 도착하게 되었다(행28:11-14).


이 로마감옥의 첫 투옥 때 바울은 옥중서신을 보내었다(A.D.60-62). 그 후 다시 석방이 되어 자유롭게 마지막 전도여행을 하던 도중에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보냈다(A.D.63-65). 그러다 갑작스럽게 로마의 감옥에 결박되어 있으면서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 후서를 보내었다(A.D.67/68).


바울의 순교는 네로 황제시대 때 순교를 당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 년도에 대하여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데 유대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주후67년으로 잡고, 교부 제롬은 주후68년으로 잡고 있다.




 ◎ 바울 = 바오로  (개신교창에서 공부차 복사해 놓았던 자료입니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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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서간 읽기

이제 성 바오로의‘짧은 서간들’을 공부할 차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서간들을 자신이 세우고 공고히 한 공동체들에 보냄으로써 멀리서 자신의 활동을 보완했습니다.

바오로 서간들의 내용은 실천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우리 삶에도 아주 적합합니다.

서간들을 성경에 엮인 순서에 따라 읽으십시오. 곧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둘째 서간,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둘째 서간, 티도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의 순서로 읽으십시오. 진기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각 서간을 앉은자리에서 전부 읽으십시오. 아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은 서간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서간마다 나름대로 완전한 하나의 체계, 곧 인사말과 본론과 결론을 갖추고 있습니다. 앉은자리에서 서간 하나를 완전히 다 읽는다면 그 서간의 내용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매 장마다 영적 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거의 모든 성경본에는 그 서간에 대한 훌륭한 해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 해설과 주해들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서간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개념과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쇠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주는 반드시 모두 읽으십시오.

이 작업은 한 달 반가량이 걸릴 것입니다. 더 짧은 시간 안에 마칠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열정적 리듬을 유지하십시오.


바오로의 짧은 서간들

  ⊙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둘째 서간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둘째 서간

  티토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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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해 특집 2부/바오로 서간과 신학 사상 /1.바오로 서간은 "


▲ 성 바오로 대성전 안에 있는 바오로 사도 무덤.


신약성경 27권 중 13권이 바오로 사도 서간

신약성경 전체 27권 가운데서 바오로 사도가 썼다고 하는 바오로 서간은 모두 13권이다.
신약성경 거의 절반이 바오로 사도의 서간인 셈이다.
신약성경 가운데서 복음서 4권과 사도행전  그리고 요한묵시록을 제외하면 21권이 서간인데,
그중 바오로 서간은 거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그만큼 바오로 서간은 신약성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또 중요하게 읽힌다.
바오로 서간과 서간에 나타나는 신학 사상을 공부하기에 앞서 몇 가지 기본 사항을 알아본다.

◇바오로 서간은 모두 바오로가 직접 썼나

신약성경에서 바오로 서간으로 불리는 13권은 다음과 같다.
1)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로마서)
2)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코린토1서)
3)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코린토 2서)
4)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갈라티아서)
5)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페소서)
6)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필리피서)
7)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콜로새서)
8)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테살로니카1서)
9)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테살로니카2서)
10)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티모테오1서)
11)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티모테오2서)
12) 티토에게 보낸 서간(티토서)
13)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필레몬서)


바오로 친서라 부르는 7권 직접 쓴 것 확실

이 서간들을 바오로 사도가 다 쓰지는 않았다는 것이 오늘날 많은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학자들 의견을 종합하면 이 13권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우선 바오로 친서라고 부르는 것으로 바오로가 직접 쓴 것이 확실한 서간들이 있다.
로마서, 코린토1서, 코린토2서, 갈라티아서, 필리피서, 테살로니카1서, 필레몬서 등

모두 7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로는 바오로의 측근이나 제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제2바오로 서간이 있다.
콜로새서와 에페소서, 테살로니카2서,
그리고 '사목서간'이라고도 부르는 티모테오1서와 티모테오2서, 티토서 등 6권의 서간을 말한다.

이 가운데서 콜로새서와 에페소서, 테살로니카2서에 대해서는 바오로가 직접 썼으리라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또 티모테오1서와 2서, 티토서를 사목서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서간들과 달리

공동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아니라 공동체를 맡고 있는 사목자들에게 보낸 서간이어서다.

바오로의 친서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서간들에 왜 바오로가 직접 쓴 것 같은 표현들이 나올까.
바오로 사도가 살았던 당시에는 널리 알려진 인물,
특히 존경하는 스승이나 가까운 동료의 이름을 저자로 내세우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그 저작에 대한 권위를 높이고
나아가 이름을 빌려 쓴 그 사람의 사상이나 정신을 더욱 발전 또는 확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오로가 직접 쓰지 않았지만 바오로가 쓴 것처럼 제시되는 서간들도 이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바오로가 직접 쓰지 않았다고 해서
바오로의 사상과 무관하다고 일축해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학자들은 지적한다.
오히려 바오로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에 바오로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 바오로가 직접 쓴 서간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별함으로써
우리는 바오로의 사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교회 공동체에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그 편지가 쓰이거나 편집됐을 시기의 달라진 교회 공동체 상황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바오로가 쓰지 않았다고 해서 성경으로서의 권위가 줄어들거나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이 영감을 받은 하느님 말씀으로서 권위를 존중받는다.

◇언제 어떻게 쓰고 어떤 식으로 전했을까

바오로의 서간, 특히 친서들은 신약성경 가운데서 가장 먼저 쓰였다.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보다 더 이른 시기에 쓰였다.
그 중 가장 먼저 집필된 것은 테살로니카1서로 50~51년쯤에 작성됐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 생애를 연대기 순으로 정확하게 제시하기가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바오로 서간들이 언제 어디에서 쓰였는지를 정확히 밝혀내기는 현재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대략적 시기를 추정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마저도 학자들에 따라 많게는 20~30년 차이가 나기도 한다. <표 참조>

바오로 서간, 그 중에서 친서들은 바오로가 직접 썼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오로 사도가 펜을 들고

직접 편지를 써내려 간 것은 아닌 듯하다.
바오로는 편지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이 받아쓰게 했고 인사말 정도만 자신이 직접 썼다.

"이 편지를 받아쓴 저 테르티우스도
주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로마 16,22)라는 구절이나
"이 인사말은 나 바오로가 직접 씁니다" (1코린 16,21; 콜로 4,18 등)라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략적 시기만 추정  …   학자마다 차이 나기도

실제로 바오로 사도가 살던 당시에는
편지를 받아쓰게 하는 것이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바오로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지만 당시의 관행에 따라서 다른 사람이 받아쓰게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바오로가 인사말을 직접 쓴 의도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저자가 친필로 글을 쓰는 것은 그 편지가 진짜임을 확실히하면서 동시에

권위를 부여하는 의미를 지닌다.
바오로가 인사말을 직접 쓴 것 역시 같은 효과를 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쓴 편지 두루마리는 끈으로 묶어 봉인을 한 다음에
믿을 만한 인편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로마제국에서는 우편 마차가 있었지만 이는 관리나 군인들만 이용할 수 있었고 일반인들은
다른 믿을 만한 사람의 도움을 빌려야 했다.
바오로도 티모테오나 티토 같은 가까운 동료 편에 서간을 딸려 보냈다고 한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 '바오로의 서간과 신학 사상' 기사는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참고하고 있습니다.
「바오로 서간과 신학」(바오로딸)
「서간에 담긴 보화」(생활성서)
「바오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
「바울로와 그의 서간들」(생활성서)
「바오로 스케치」(빅벨) 「바울로」(분도출판사) 「신약성서입문」 (분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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