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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주 하느님의 뜻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김신실 쪽지 캡슐 작성일2016-06-23 조회수2,588 추천수0 신고

 

"주"의 상징적의미보다는 하느님의 이름에 관한

정승현신부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을 올려봅니다

 

하느님의 이름

 

*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 ‘야훼YHWH를 탈출기에서 세 번에 걸쳐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이 하느님의 이름 천명 내용이 각각 조금씩 다릅니다.

 

첫 번째 야훼 선언은 탈출 3,13-15에 나옵니다.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고 말하면, 그들이 저에게 그분 이름이 무엇이오?’ 하고 물을 터인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하느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그런데요. 그 이름 선포 말씀을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가톨릭 성경은 나는 있는 나.”라고 번역하였습니다.(“‘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공동번역은 나는 곧 나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이라고 일러라.”) 그러면서 야훼 하느님은 이전에 불러왔던 이름으로 되돌아가십니다.(“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이것이 영원히 불릴 나의 이름이며, 이것이 대대로 기릴 나의 칭호이다.”)

 여기서는 야훼라는 이름에 대한 하느님의 설명이 없습니다. 있다면 그것은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일 뿐입니다.

*영어 번역(Catholic Pastoral Edition): “I AM WHO AM.”(“‘I AM’ sent me to you.”)

*스페인어 번역(DIOS HABLA HOY 남미 공동번역): “YO SOY EL QUE SOY.”(“‘YO SOY’ me ha enviado a ustedes.”)

   

가톨릭 성경의 번역은 공동번역 성경과 달리 히브리 성경을 그리스말로 옮긴 칠십인역을 참고한 번역입니다. 그런데 흔히들 이 번역문에서 그리스 철학적인 사유를 전개하여 하느님의 이름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리스 철학에서 존재또는 존재하다는 핵심이 되는 주제이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리스식 사고방식 대신 히브리식 사고방식에 따라 이 말씀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어 번역본이 히브리어 성경 원본과는 다르게 하느님의 이름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이 서로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있는 나라는 말 속에 숨어 있는 있다라는 히브리어 동사는, 그리스어와는 달리 정적靜的이 아닌 동적動的으로 존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있는 나라는 말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현존하는 것다른 이들과 함께, 다른 이들을 위하여 현존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모세에게 알려 주신 이름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너희와 함께, 너희 곁에 있는 자다.”라는 의미를 지녔습니다.(발터 카스퍼, 자비, 159) 그런 점에서,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라고 재천명하신 것은 의미가 큽니다.

 

두 번째 야훼 선언은 탈출 33,18-23에 나옵니다.

 

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여기 내 곁에 자리가 있으니, 너는 이 바위에 서 있어라. 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 굴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 그런 다음 내 손바닥을 거두면, 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야훼 선언은 모세가 그분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당신 이름을 선언하셨지만 당신의 영광은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이름 야훼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십니다. 그분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푸는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자비는 그분의 본성과 모세에게 계시하신 그분의 이름에 따른 것입니다. 곧 이어 야훼 하느님은 모세에게 석판 두 개를 새로 마련하라고 하십니다. 당신 백성의 불성실과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공허와 불행에 빠지게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과 새롭게 계약을 맺으시고, 그를 통해 그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습니다. 야훼 하느님은 전적으로 자유롭고 자비로운 마음에서 그렇게 하셨습니다.(발터 카스퍼, 자비, 95)

   

세 번째 야훼 선언은 탈출 34,5-9에 나옵니다.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 번째 하느님의 이름 선포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훼는, 야훼는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세 번째 이름 계시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가 그분의 절대성과 자유뿐 아니라, 그분의 진실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 백성의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는 데 있어 당신 자신과 당신 백성에게 성실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관한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이름의 이 세 번째 계시 양식은 구약 성경, 특히 시편에서 공식처럼 계속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신명 4,31; 시편 86,15; 103,8; 116,5; 145,8; 요나 4,2; 요엘 2,13 참조.) 말하자면, 그 계시 양식은 구약 성경의 신앙 고백이 되었지요.(발터 카스퍼, 자비, 96)

   

**

그런데 저는 이 두 번째와 세 번째 하느님의 이름 야훼 선포가 하느님께서 지나가시면서이루어졌다는 점(탈출 22,19.22; 34,6)에 주목합니다. 이것은 마르 6,45-52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을 이해하는 열쇠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둘러 호수를 건너가라고 하십니다. 그들을 보내신 뒤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습니다. 저녁에 배는 호수 한가운데 있었고 예수님은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마파람 때문에 노를 젓느라 애를 먹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고군분투가 새벽녘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제야 예수님은 제자들 쪽으로 물위를 걸어오셨는데요.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 말씀은 탈출기의 말씀과 비교해서 읽지 않으면 그 뜻을 놓치고 맙니다. 분명 이것은 예수님의 자아 표명입니다. “나다.” 자신이 야훼 하느님과 같은 분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

저는 하느님의 이름 나다.”의 진짜 의미가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도 야훼라는 하느님의 이름에서 용기를 얻고 두려움을 물리쳤습니다. 신약의 우리 또한 예수님의 이름에서 용기를 얻고 두려움을 물리칩니다. 예수라는 이름 속에 구원하시는 야훼님의 이름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나약함, 무력함, 한 마디로 우리의 현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야훼 하느님, 임마누엘 하느님, 파라클리토 하느님이 나를 위하여, 나와 함께, 내 곁에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느님, 당신은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신 분,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아멘!”

2016. 2. 25.

 

* 참고 서적

- 발터 카스퍼, 자비, 가톨릭출판사, 2015. 89-95쪽과 158-164.

- 가톨릭 교회 교리서, 20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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