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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쿰란 공동체 [Re : 488]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김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1-03-24 조회수2,259 추천수1 신고

+ 찬미 예수님 !

 

   충분한 자료는 아닙니다만, 만족하실 만한 답변이 나올 때까지 잠시 참고하십시요.  "꿩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쿰란 공동체>는 1947년, 이스라엘의 死海 부근에 있는 쿰란 동굴에서 많은 양의 성서와 문헌들(소위 "사해 두루마리", 혹은 "사해문서", 혹은 "쿰란문서")이 소년 목동들에 의해 발견되면서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자들입니다.  이 문헌들의 발견으로 성서학계에서는 커다란 파장이 일었고, 또 잘못 알려진 많은 사실들이 정정되고,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사실들이 밝혀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여담이지만 성서 주석에 있어서 개신교 성서학계의 많은 오류들이 고쳐지는 계기도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쿰란 공동체>는 흔히들 <에쎄네파, 혹은 에쎄느파>라고도 하며, 일종의 후기 유다교의 한 분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쿰란 공동체>는 주로 예루살렘 성직자들에 반감을 가진 사제들이나, 추방당한 일반 신자들이 모여 기원전 150년경에 발생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도 그의 행동이나, 먹는 음식, 입는 의복으로 보아 에쎄네파 출신의 사람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들은 死海 북부의 광야에서 수도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쿰란 공동체>의 생활 방식은 공동체를 이루면서 엄격한 생활 방식을 고수하고 살았습니다.  1) 이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주로 동굴에서 지내면서 엄격한 수도자적, 은수자적 공동체 생활, 곧 은둔적 집단 생활을 하였습니다.  2)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나누며 사용하였고, 각자 지기 손으로 노동할 의무를 지니고, 상거래를 금지하였습니다.  3) 이들은 율법에 절대적인 순종을 추구하며, 정결 규정을 철저히 지켰고, 제사에서의 피흘림을 금지했습니다.  4) 이들은 자기들만이 참된 이스라엘인이고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여기며, 어둠의 자녀들과는 분리되어 금욕주의를 강조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이들 거주지의 무덤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에서 여자의 뼈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셔날 지오그래픽’ 다큐멘타리를 본 기억이 납니다).

 

   <쿰란 공동체>의 조직은 그리스도교 수도회와 매우 흡사하다고 합니다.  입회 조건이 까다롭고, 수련 기간을 거치게 되어 있었으며, 계급적으로 다스렸고, 정결 예식을 시행하고, 식사(특히 저녁 식사)는 꼭 공동체적으로 거룩하게 했다고 합니다.

 

   <쿰란 공동체>는 "정의의 스승"이라고 하는 자기네 나름의 메시아를 기다리며(어떤 자료에서는 "정의의 스승"이 쿰란 공동체를 설립했다고도 합니다), 이 메시아가 세상에 오면 불경한 자들을 발본색원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거룩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는 <쿰란 공동체>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이 이루어지는 종말과 메시아 시대를 갈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쿰란 공동체>는 이원론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1) 이 이원론은 빛과 어두움, 진리와 거짓의 대립으로 특정지어 집니다.  2) 이들은 선한 영과 악한 영을 하느님이 창조하셨고, 이 둘이 서로 투쟁하는 가운데 인간의 변화가 결정된다고 보고 있으며, 양측의 거센 투쟁은 있으나 결국 하느님께서 악의 영을 파멸시키신다고 봅니다.  3)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받을 수 있고, 거룩한 무리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4) 이들은 바리사이파와 같이 반로마주의적 성향을 지녔다고 합니다.  5) 그들의 사상을 종합하면 사제적 성격, 계급성, 엄격한 준법성, 묵시론적 영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쿰란 공동체>의 최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는 없으며,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으나, 제1차 유다 항쟁 중이던 68~70년 사이에 파괴되었거나, 그들의 사상이나 생활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지 못하고 점차 주변 국가들에 동화되어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사해 두루마리>는 사해 북서쪽 11개의 동굴에서 1947~1956년 사이에 발견된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문서로, 주로 양피지와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1) 이 문서들은 1세기 유다교 분파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2) 발견된 성서는 에스델서를 제외한 구약성서, 제2경전과 외경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3) 그밖의 문서로는 규칙서, 회칙, 축복 명세서; 예언서들의 부분적 주석서(하바꾹, 나훔, 미가, 이사야, 호세아, 스바니야, 시편 37편);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 다마스커스 문헌(사독문헌); 청동 두루마리; 감사시편; 창세기 외경; 종말론적 미드라쉼, 성조들의 축복, 증언록으로 구성된 선집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각 문서의 번호와 약식 표기 등은 복잡할 것 같아 적어놓지 않겠습니다)  4) 한편으로는 쿰란 공동체 이후의 다른 곳(마사다, 나할 헤벨, 와디 무라바앗, 나헬 쎄엘림, 키르벳 미롯, 나할 미쉬마, 카이로 등)에서 발견된 문서들도 포함시켜 <사해 두루마리>의 범주에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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