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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예수님 시대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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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2-02 조회수377 추천수0

[구역반장 월례연수] 예수님 시대 배경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데 있어서 종종 어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의 지리적 배경, 당시의 역사적 상황, 문화, 풍습 등 성경을 풍요롭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배경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는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그리스, 로마의 지배와 이에 맞선 유다의 항쟁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 시대 : 마카베오 항쟁

 

약 200여 년간 고대 근동을 지배하던 페르시아 제국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BC 2년에 멸망합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거대한 세계를 정복하였고, 그 영향으로 그리스 문화가 곳곳에 뿌리를 내립니다. 그리스식 도시가 건설되고 그리스 신전과 경기장이 세워졌으며 그리스어를 비롯하여 그리스 사상이 확산되어 ‘헬레니즘’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강력하게 형성되었습니다. 유다 땅에 거주하는 유다인들과 그리스 제국 다른 지방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디아스포라 유대인) 역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헬레니즘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점차 신앙의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기원전 175-164년)가 즉위한 다음 유다인들과의 갈등과 마찰이 커졌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전을 더럽혔으며, 유다인들에게 그리스 신들을 숭배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이들에 맞서 하스모니아 가문의 사제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은 BC 167년에 항쟁을 시작합니다. 이를 마카베오 항쟁이라고 하는데, 마카베오기 상 · 하권에서 이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니엘서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마타티아스가 죽고 그의 다섯 아들 중 ‘망치’라는 뜻의 ‘마카베오’라고 불리는 유다가 뒤를 이었습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승리를 이어가며 3년 만에 성전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BC 164년 12월에 성전을 정화하고 봉헌하였습니다. 유다 마카베오에 이어서 그의 동생 요나탄 그리고 형 시몬이 이어서 항쟁을 이어가고 결국 시몬은 BC 142년에 실질적인 독립을 이루어냈습니다. 그 결과 유다는 하스모니아라는 독립왕조를 이루었지만 외적으로는 그리스를 이어 등장한 로마라는 강대국의 압박과, 내적으로는 하스모니아 왕조의 권력 다툼으로 인하여 결국 로마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로마 시대 : 헤로데 가문

 

BC 63년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고 유다인들은 로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로마는 유다 지방에 직접 총독을 파견하지 않고 유다 민족에게서 영주를 뽑아 스스로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에돔 출신이었던 헤로데 대왕은 로마에 충성을 맹세하며 로마군의 지원을 받아 BC 37년부터 BC 4년까지 유다의 왕으로서 팔레스티나 지역을 통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성경에 등장하는 헤로데가 바로 헤로데 대왕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여러 헤로데를 만나게 돼서 종종 헷갈리는 경우가 발생하기에 이 자리를 빌어서 헤로데 가문을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 헤로데 대왕 : 팔레스티나 지역을 다스렸던 왕으로서 재위기간 말미에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메시아의 탄생을 두려워한 나머지 죄 없는 아기들을 살해했습니다(참조 마태 2,1). 헤로데 대왕은 지중해 해변에 위치한 항구 도시 카이사리아를 건설하였고, 사마리아를 그리스식 도시로 재건하는 등 많은 건축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개축하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바빌론에서 귀환한 후 BC 515년에 봉헌한 즈루빠벨 성전인데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초라하게 지어졌습니다. 헤로데 대왕은 이 성전을 솔로몬 성전보다도다 더 크게 증축하였습니다.

 

헤로데 대왕은 배신의 두려움과 의심으로 가득 찬 삶을 살다가 세 아들인 헤로데 아르켈라오스, 헤로데 안티파스, 헤로데 필리포스에게 자신의 영토를 나누어준 뒤 BC 4년에 죽었습니다.

 

* 헤로데 아르켈라오스 : 헤로데 아르켈라오스는 유다와 사마리아 등 에돔 지방의 가장 많은 영토를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폭정을 펼치다가 결국 로마에 의해 6년에 쫓겨나고 유배를 떠났습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예수님을 낳고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때 유다 지방으로 가지 못하고 나자렛으로 향했던 것도 유다를 다스리던 아르켈라오스의 폭정 때문이었습니다(참조 마태 2,19-23).

 

아르켈라오스가 쫓겨난 뒤 로마는 총독을 파견하여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지방을 직접 다스리게 됩니다. 참고로 26-36년에 5대 총독으로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을 다스렸던 이가 바로 본시오 빌라도입니다.

 

* 헤로데 안티파스 :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의 영주로 임명받아 BC4년부터 39년까지 이 일대를 다스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뒤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셨을 때 갈릴래아의 영주였던 사람이 바로 헤로데 안티파스입니다. 그는 자신의 본처와 이혼한 뒤 이복형제인 헤로데 보에토스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였는데 이 문제로 인하여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결국 그를 처형했습니다(참조 마르 6장).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붙잡히셨을 때 빌라도에게 먼저 끌려갔다가 갈릴래아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헤로데에게 보내졌는데, 이때의 헤로데가 헤로데 안티파스입니다(참조 루카 23,6-12). 헤로데 안티파스 역시 39년에 쫓겨나고 유배를 떠났습니다.

 

* 헤로데 필리포스 : 헤로데 필리포스는 BC 4년부터 34년까지 트라코니티스, 이투래아, 바타네아를 다스렸습니다(참조 루카 3,1).

 

*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 :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는 헤로데 대왕의 손자로서, 헤로데 안티파스를 추방하고 41년부터 44년까지 할아버지 헤로데 대왕의 전영토를 다스렸습니다.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였고 야보고 사도를 죽였으며 베드로 사도를 투옥시켰습니다(참조 사도행전 12장).

 

* 헤로데 아그리파스 2세 : 헤로데 아그리파스 2세는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의 아들로서 헤로데 가문의 마지막 계승자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재판에 참석했습니다(참조 사도행전 25장).

 

 

유다 항쟁 (유다 독립 전쟁) : 66년-74년

 

헤로데 아르켈라오스가 쫓겨난 뒤 유다, 사마리아 지방에 대한 로마의 직접 통치가 시작됐습니다. 로마는 유다인들에게 로마 황제 숭배 예식을 강요하였고, 불합리한 세금 정책을 펼쳤으며 대사제를 자신들이 직접 임명하였습니다. 그 결과 유다인들 사이에서 로마의 통치에 대한 불만과 갈등이 커져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66년 총독 플로루스가 성전 금고에서 17탈렌트를 약탈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유다인들이 이에 반발하자 플로루스는 무력으로 그들을 진압하였습니다. 그 결과 열혈당원들을 중심으로 한 항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장악한 뒤 성전을 중심으로 항쟁하였고 이방인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네로 황제는 이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장군 베스파시아누스를 파견했고, 67-68년에 걸쳐 대부분의 땅을 장악했습니다. 네로 황제의 죽음으로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로 돌아가 황제가 되었고, 그의 아들 티투스 장군이 뒤를 이었고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마사다 요새에서 끝까지 항쟁하였지만 74년에 마사다가 함락되면서 항쟁은 끝이 났습니다. 항쟁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많은 유다인들이 죽고 쫓겨났으며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파괴되는 비극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이 충격과 절망과 공포의 체험이 복음서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종말론적 성격을 갖는 마르코 복음 13장에서 성전 파괴와 전쟁 그리고 재난을 언급하는 대목은 실제 그들이 역사 안에서 체험한 참혹한 현실을 실제로 반영한 것입니다.

 

이 시기 그리스도교인들 또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스승이었던 사도들은 이미 다 죽었으며, 유다인들은 반 로마 항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유다계 그리스도인을 배신자로 여겨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성전파괴를 하느님의 심판으로 바라보았고 그 결과 율법에 더욱 충실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도 유다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과의 신앙의 간극 역시 더욱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기 속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오히려 사도들의 가르침을 담아 복음서와 서간을 편찬하여 말씀으로 힘을 내어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2차 유다 항쟁 : 바르 코크바 항쟁 (132년-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년)는 유다인들에게 할례를 금지하고 예루살렘 성전 터에 신전과 새 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우며 유다인들과 갈등을 야기시켰습니다. 당시 메시아라는 칭호까지 받았던 시몬 바르 코크바가 로마에 맞서 싸우며 일시적으로나마 예루살렘을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베루스 장군이 바르 코크바를 진압하였습니다. 이후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쫓겨났으며 18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 시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계속되는 항쟁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바빌론 → 페르시아 → 그리스 → 로마로 이어지는 강대국의 지배를 겪어야 하는 고난과 박해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고통과 좌절 뿐인 것 같은 어려운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 안에 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희망이 기쁜 소식이신 예수님 안에서 이루졌습니다.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지만 예수님 안에서 같은 믿음을 고백하고 있기에 하느님의 구원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1년 2월호, 이정민 신부(사목국 교육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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