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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마카베오기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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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4-04 조회수1,571 추천수1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마카베오기 상권

 

 

구약 성경의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책은 마카베오기 상‧하권입니다. 두 권 모두 기원전 2세기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와 이를 거슬러 마카베오 형제들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유다인들의 항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서로 분류되고 있으며, 상‧하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두 권의 내용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지만 두 권은 역사적 상황들을 순서대로 다루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당 부분 겹치는 내용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셀레우코스 왕조에 대항한 유다인들의 항쟁을 민족주의적인 차원에서 다룸으로써 정치적인 차원에서의 독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마카베오기 하권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유다인들의 항쟁을 바라봄으로써 하느님의 권능과 하느님 나라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마카베오 상권은 히브리어로 작성된 반면, 마카베오 하권은 그리스어로 작성된 것으로 미루어봐서 두 권의 저작 연대 등을 포함한 여러 가지 것들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카베오기 상권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먼저 1-2장은 유다인들의 항쟁이 일어나게 된 정치적인 배경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1장을 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를 통해서 마카베오기 상권은 페르시아 시대를 지나 헬레니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1장 10절에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코스 4세로서 유다인들에게 가혹한 박해를 가했던 인물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 임금은 유다인들에게 이민족들의 풍습을 강요하였으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민족의 제사를 봉헌하면서 성전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제였던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들은 하시디인들과 다른 사람들을 모은 뒤 이민족들의 제사를 거부하면서 안티오코스 4세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3장부터 16장 22절까지는 마카베오 가문의 항쟁의 역사가 전해집니다. 2장 말미에서 마타티아스가 죽은 뒤 마카베오라고 불리는 셋째 아들 유다가 뒤를 이었습니다.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항전을 이어갔고, 안티오코스 4세가 페르시아 원정을 가 있는 동안 “하늘에서 내려오는 힘”(3,19)으로 유다 지역을 탈환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금 하느님께 봉헌한 뒤(BC 164년), 이민족들을 제압해나갔습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병으로 사망하고 뒤를 이어 안티오코스 5세, 데메트리오스 1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계속해서 이들에 맞서 항쟁을 이어가지만 데메트리오스의 장수 바키데스가 이끄는 군대와의 전쟁에서 전사합니다.

 

유다 마카베오의 뒤를 이어 마타티아스의 막내 아들인 요나탄이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요나탄은 시리아의 내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습니다. 데메트리오스 1세와 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손자 알렉산드로스 발라스와 다툼을 벌였으며, 뒤이어 알렉산드로스의 아들 안티오코스 6세의 후견인이었던 트리폰과도 분쟁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리아 내부의 복잡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다음 아닌 BC 152년에 요나탄이 알렉산드로스에 의해서 대사제로 임명된 것이었습니다.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와 맞서 유다인들의 항쟁이 발생했는데, 유다인들의 지도자인 요나탄이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가 인정한 합법적인 대사제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로마가 팔레스티나를 점령하기 이전까지 하스모니아(마타티아스의 증조부) 가문이 대사제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방 민족에 의해서 대사제로 임명되는 것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대사제는 차독(사독) 가문에서 대를 이어서 담당하는 것이 전통이자 원칙이었기 때문에 하스몬 가문의 요나탄이 대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은 율법에 충실하고자 했던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요나탄은 트리폰의 덫에 걸려 포로로 붙잡히게 됩니다.

 

요나탄의 뒤를 이어 마타티아스의 둘째 아들인 시몬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시몬은 셀레우코스 왕조 출신이 아닌 트리폰 대신 데메트리오스 2세를 지지하였고, 트리폰은 포로로 붙잡아두었던 요나탄을 처형하였습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시몬과 동맹을 맺고 세금 면제 해택과 이스라엘 백성이 세운 요새들의 지배권을 인정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의 실제적인 독립이 주어졌고, 시몬은 하스모니아 왕조의 첫 임금으로서 왕직과 대사제직을 겸직하였습니다. 시몬은 유다의 성읍을 정비하고 예루살렘의 성채도 장악하였고 비교적 평온한 시기를 보냅니다. 시몬은 아들인 요한 히르카노스에게 왕위를 양도하였지만 훗날 사위인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암살됩니다. 그리고 요한 히르카노스는 자신까지도 암살하려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없애러 온 병사들을 붙잡아 죽입니다.

 

16장 23-24절은 마카베오기 상권의 결어로서 마카베오 가문의 항쟁에서부터 시작해서 독립을 챙취한 뒤 하나의 왕조를 이루게 된 하스모니아 왕조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마카베오기 상권은 셀레우코스 왕조에 대항한 유다인들의 항쟁을 민족주의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스모니아 왕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그들을 하느님을 대신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람들(5,62 참조)이라고 말하면서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상선벌악, 그리고 승리는 믿음에 대한 응답이며 패배는 죄의 결과라고 바라봤던 신명기계 역사관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카베오기 상권은 하스모니아 왕조의 정당성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스모니아 왕조는 다윗의 후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왕권을 누렸으며, 차독(사독) 가문도 아니면서 대사제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작지 않았습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2년 4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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