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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오래된 미래 구약에서 배우다: 광야에서 일어난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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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4 조회수767 추천수0

[오래된 미래 구약에서 배우다] 광야에서 일어난 시험

 

 

“너희는 이집트에서 종이었다.”(신명 16,12; 24,18) 아무리 작은 민족이라 해도 타국의 노예였음을 밝히며 역사를 시작하는 예는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 역사는 그렇게 시작한다. 이는 성경의 목적이 이스라엘의 자긍심을 높이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능력을 증명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민족” “사제들의 나라”(탈출 19,6)로 거듭난 곳은 광야였다. 광야에서 하느님의 시험을 받고 그분을 시험하는 불충도 범하면서 주님의 백성으로 사는 법을 익혔다. 이런 광야 모티프는 신약 시대에도 되풀이된다. 예수님이 소명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단식하시고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신 것이다(마태 4,1-11과 병행구들 참조). 이번 달에는 신·구약 성경에서 광야가 지닌 의미를 살피고 그곳에서 일어난 시험이 주는 교훈을 알아보겠다. 

 

광야가 보여주는 여러 얼굴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 가나안 입구인 모압 벌판(민수 22,1 등 참조)까지 가는 동안 줄곧 광야를 지났다. 그들이 광야에서 보낸 세월은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로 나타난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던 이상적인 시절이자(예레 2,2; 호세 2,16-17 참조) 반역의 기질을 단적으로 드러낸 시기다(탈출 16,2-3; 신명 9,7 등 참조). 이런 이중성은 광야의 특성과 직결되어 있다. 여건이 너무 열악해 양 떼가 목자를 따르듯 하느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고 또 그런 여건 탓에 오래 머물다 보면 불평불만의 구렁에도 빠진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이 겪은 첫 위기는 물과 식량 부족(탈출 15,22-24; 16,1-3 등) 그리고 아말렉이라는 유목민의 공격(17,8-13)이었다. 이런 일들은 광야가 어떤 곳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온갖 위험이 도사린 곳(신명 8,15 참조), 창조 이전의 혼돈에 비견될 만한 곳이다.

 

실제로 창세기 1장 2절의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던 땅’은 히브리어로 ‘불모지’ ‘광야’를 뜻한다. 하느님이 이런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시며 천지를 창조하셨듯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단련받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났다(신명 8,2-5 참조). 주님께서 머무실 성소도 지었다(탈출 40장). 이 성소 건립은 천지창조의 완성에 해당한다. 주님께서 드디어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에 거처를 정하신 것이다. 주님의 성소를 모시는 이스라엘은 사제들의 민족이 된다. 그러므로 광야는 혼돈의 땅이자 창조의 땅이기도 하다. 

 

광야는 쫓기고 핍박당하던 자들의 피신처이기도 했다(1사무 24,1-2; 1열왕 19,3-4 등 참조).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광야로 탈출하여 주님의 보호를 받으며 그분 백성으로 거듭났기에 일부 예언자들은 광야 유랑기를 가장 이상적인 시기로 보았다(예레 2,2; 호세 2,16-17 참조). 특히 예레미야는 이 시기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신혼처럼 묘사했는데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계약을 맺은 직후여서 그런 듯하다. 게다가 광야는 예로부터 이스라엘과 주변 민족들이 방목하던 장소다(탈출 3,1 등 참조). 광야(미드바르רבדמ)는 성경에서 ‘사막’의 동의어로 자주 쓰이지만(이사 41,19; 예레 2,6 등 참조) 기본적으로는 ‘풀 뜯는 곳’을 뜻한다. 다만 목초지로 쓸 만한 곳이 제한돼 있어 능숙한 목자라야 샘의 위치를 잘 알고 양 떼를 좋은 곳으로 이끌 수 있다. 시편 78장 52절에서 찬양하듯 하느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목자처럼 이끄셨고 이스라엘은 양 떼처럼 따르며 그분의 존재를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가깝게 느꼈다(탈출 13,21-22 등 참조). 

 

하지만 주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홍해의 기적을 접하고도 이스라엘은 광야 체류 내내 의심하였기에, 하느님은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풍요로워질 때 당신을 잊지 않도록 광야 시험으로 미리 연습시키셨다(신명 8,1-5.15-18 등 참조). 

 

하느님의 시험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시험하신 일은 탈출기 15장 22-25절(마라의 쓴 물 사건)에 처음 나온다. 백성은 사흘 동안 걸은 뒤 발견한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자 불평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나무 하나를 보여주셨다. 광야 덤불의 한 종류로 보이는데 그것이 물에 녹아 있던 소금*을 빨아들여 단물로 만들어준 듯하다. 하느님은 갈증을 겪던 백성에게 목을 축일 방법을 때맞춰 알려주심으로써 그들이 당신을 계속 믿고 당신께서 주신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이끄셨다. 

 

그 다음 시험은 탈출기 16장(4절 참조)에 나오는데 양식과 관련이 있다. 굶주린 백성에게 만나를 먹을 만큼만 거두게 하시고 안식일에는 거두지 못하게 하신 뒤 이를 지키는지 보셨다(16.26절 참조). 앞날을 위해 저장해두고 싶은 욕구를 참는 일, 더구나 광야 한복판에서 그러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 시험으로 하느님은 백성에게 당신이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임을 실감케 하고 그들이 훗날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당신을 신뢰할 수 있도록 가르치려 하셨다(신명 8,16 참조). 곧 사람은 빵만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점을 깨우쳐주려 하셨다.

 

백성의 시험

 

백성은 하느님의 시험을 받으며 조금씩 단련되지만 불평불만에 빠져 그분을 시험하기도 하였다(민수 14,22 등 참조). 백성이 하느님을 시험한 일은 마싸와 므리바 사건(탈출 17,1-7; 민수 20,2-13 참조)이 대표적이다. 이때는 모세조차 죄를 짓는다. 여기서 모세의 죄는, 주님께서는 바위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셨는데 그가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낸 데 있다고 흔히 해석되어 왔다. 하지만 바위를 두드리지 않을 거면 하느님이 지팡이를 왜 집어 들라 하셨겠는가(민수 20,8 참조)? 게다가 탈출기 17장 1-7절에서는 모세가 지팡이로 두드려 물을 낸다. 모세의 죄는 그보다 “우리가 이 바위에서 ···마실 물을 나오게 해 주랴?”(민수 20,10)라고 한 데 있는 듯하다. 물을 내는 힘은 하느님에게 있는데 모세는 그 힘이 자신과 아론에게 있는 양 포장한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백성은, 특히 민수기에 따르면 가나안 정탐(13-14장) 때 반란을 일으켰고 레위인 코라와 그의 무리가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려 했으며(16장), 마지막에는 모세와 아론마저 죄를 짓는다(20장). 이들이 받게 된 벌은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같다. 바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 대신 이집트 탈출 2세대가 여호수아와 함께 들어가게 된다. 하느님은 이로써 백성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법을 배우게 하셨다.

 

하느님의 시험과 사탄의 유혹

 

광야의 시험 모티프는 신약 시대에도 되풀이된다. 요르단 강에서 세례 받으신 예수님이 광야에서 단식하시고 하느님의 시험과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것이다(마태 4,1-11및 병행구 참조). 복음서에는 ‘하느님의 시험’임이 명기되어 있지 않지만 “성령의 인도로”(마태 4,1)라는 말이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시험대로 이끄신 것임을 알게 한다. 다만 이때는 하느님의 시험과 사탄의 유혹이 동시에 일어난다. 마태오 복음 4장 1절의 그리스어 ‘페이라조πειράζω’가 ‘유혹’뿐 아니라 ‘시험’의 뜻도 지니므로 하느님은 예수님을 시험하셨고 사탄은 유혹했음을 시사해준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시험하심으로써 그가 소명에 적합한 인물임을 보여주려 하셨고 사탄은 그의 몰락을 꾀했다. 

 

시험대에 오르신 예수님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또는 죽음의 고통을 겪지 않고 세상의 왕국을 손에 쥐고자 성부의 능력을 청하는 행보는 보이지 않으셨다. 대신 신명기 8장 3절(마태 4,4) 6장 16절(마태 4,7) 6장 13절(마태 4,10)을 인용하시며 사탄의 유혹에 반박하셨다. 이는 광야 유랑기를 보낸 이스라엘 백성에게 교훈을 주는 일이자 예수님이 새 아담으로서(로마 5,14 등 참조) 뱀의 유혹에 굴복했던 원조들의 과오를 뒤집는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보여주었는데 이때 사탄이 불러일으키려 한 심상은 모세다. 모세도 산에 올라 가나안을 동서남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나안을 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한 모세와 달리 예수님은 그를 넘어서는 존재로 시험을 통과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처럼 요르단강을 넘어 가나안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펼쳐 보이셨다. 

 

광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 이스라엘 역사를 관통하고 있듯 우리의 삶도 어찌 보면 광야 유랑기를 닮았다. 척박하지만 샘이 있어 광야가 아름답듯 우리의 삶 역시 그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기에, 그래서 그분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주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김명숙 - 성서학자.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과 수도자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저서로 『에제키엘서』가 있다.

 

[생활성서, 2021년 4월호,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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