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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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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5-04 조회수374 추천수0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사무엘 (1)

 

 

사무엘 예언자의 탄생은 특별합니다. 그는 불임의 몸이던 한나가 하느님께 청하여 얻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은 그 의미대로 사무엘이 됩니다.

 

한나는 이렇게 서원합니다: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1사무 1,11) 나지르인의 서원처럼 보이죠? 70인 역은 이 구절에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씀을 첨가함으로써 이를 더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나지르인으로서 사무엘의 사명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왕을 세워 이스라엘의 판관 시대를 마무리하고 왕정 시대를 여는 것은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사명은 단지 왕을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무엘기 첫 부분의 본문 뒤에 숨어있습니다.

 

한나는 간절히 기도하는 자신을 술 취한 여자로 여기는 엘리 사제에게 ‘좋지 않은 여자’로 보지 말아 달라고 하는데(1,6), ‘좋지 않은’은 히브리어 ‘블리야알’의 번역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삼키는 자’로도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삼킨다’라는 단어는 종종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블리야알’은 지하 세계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존재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즉,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악한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된 것이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벨리아르와 화합하실 수 있겠습니까?”(2코린 6,15)

 

그런데 이 단어는 1사무 2,12에서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는 엘리 사제의 아들들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들은 이들의 행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느님께 바쳐질 제물을 가로채는 불경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제물 가운데 사제의 몫으로 허벅지살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든 부위를 닥치는 대로 갈취하였습니다. 더구나 생명의 원천인 피를 먹으면 안 되기에 고기를 삶아 피를 뺀 다음 먹게 되어있는데, 이들은 날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블리야알’은 하느님께 의지하는 한나와 그의 아들 사무엘이 아니라, 하느님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두 아들과 그런 아들을 둔 엘리입니다. 엘리의 뒤를 이어야 할 이들이 이렇게 합당하지 않으니, 엘리 가문의 사제직은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대신하여 사무엘이 사제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예언직과 사제직을 겸하게 된 것입니다. [2022년 5월 1일 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사무엘 (2)

 

 

한나는 서원한 대로 사무엘이 젖을 떼자마자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래서 어린 사무엘은 아직 예루살렘 성전이 없던 시대에 계약의 궤를 모신 실로의 성소에서 봉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엘은 하느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엘리가 성소에 붙은 자기 방에서 자고 있을 때, 사무엘은 성소 안에서 자고 있습니다(1사무 3,2-3). 사무엘이 사제인 엘리보다도 하느님께 더 가까이 있음을 공간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은 적 없던 사무엘은 세 차례나 사제 엘리가 부른 줄로 오해합니다.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1사무 3,7) 사무엘은 경륜 있는 사제 엘리의 조언을 들을 후에야 하느님께 응답을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들은 하느님의 첫 말씀은 한밤중의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1사무 3,11-14). 사무엘 개인이나 이스라엘을 위한 희망의 말씀이 아니라, 그가 공경하는 사제 엘리 집안에 내려질 무시무시한 심판에 대한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론으로부터 이어져 온 거룩한 가문인 엘리 집안이 아들들의 죄악과 그들을 바로잡지 못한 아버지의 탓으로 철저히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만드셨을까요? 하느님께서 엘리에게 직접 말씀하셨어도 될 텐데, 왜 굳이 사무엘이 중간에서 그 말씀을 전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을 만드신 것일까요?

 

어린 사무엘이 평생 잊기 어려울 강렬한 방법으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행위에는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것, 즉 상선벌악(賞善罰惡) 말입니다. 이 교훈은 사무엘 자신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절대로 잊지 않게 해야 할 신명기적 신학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왕정 시대 이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또 하나의 교훈을 얻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놀랍게도 이스라엘이 실로의 성소에 모시고 있던 계약의 궤를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이 사건은 하느님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누구신지,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2022년 5월 8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사무엘 (3)

 

 

계약의 궤는 하느님의 지상 현존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백성은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쟁 상황이 불리해지자 계약의 궤를 마치 무기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1사무 4,3).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기대한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도구로 삼고자 한 대가가 그들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진영에 계약의 궤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필리스티아인들은 처음에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결국에는 그들의 사기를 더욱 끌어 올렸습니다. 더는 잃을 것이 없던 필리스티아인들이 절망의 힘으로 싸워 승리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계약의 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도 이때 죽습니다. 엘리 또한 이 소식을 듣고는 충격을 받아 죽어서 가문의 사제직은 끝이 납니다.

 

이 이스라엘의 패배는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인간은 하느님을 도구로 삼을 수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의 며느리가 절망에 빠져 탄식합니다. “하느님의 궤를 빼앗겼기 때문에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1사무 4,22) 하지만 계약의 궤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이 사실 또한 중요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의 소행이 계약의 궤를 잃게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돌볼 수 있으셨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의기양양하게 계약의 궤를 전리품처럼 그들의 신전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곧 그 물건이 주변에 특별한 해독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약의 궤는 현존만으로도 방사성 물질로 가득 찬 상자보다 더 치명적으로 필리스티아 도시들을 감염시켰습니다. 더 이상 계약의 궤의 현존을 견딜 수 없었던 필리스티아인들은 그것을 다시 이스라엘에 되돌려줘야 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돌려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의 궤를 제발 되찾아가달라는 의미로 보상 제물까지 바쳤습니다.

 

이렇게 계약의 궤를 빼앗겼다 되찾은 사건은 하느님의 무력함이 아니라 반대로 놀라우신 권능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2022년 5월 15일 부활 제5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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