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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읽기3: 성령 강림 사건 ~ 사도들에 대한 박해(사도 2,1-5,4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9 조회수6,775 추천수0

[신약성경] 사도행전 읽기 (3)

 

 

성령 강림 사건(2,1-12)

 

경건한 유다인은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을 순례해야 하는데, 오순절은 과월절, 초막절과 더불어 삼대 순례 축제에 해당합니다. 이 축제는 오유월경 봄 수확을 경축하는 일종의 추수감사절이지만 종교적으로는 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파스카, 곧 과월절에서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에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고 믿었기에 오순절을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이 탄생한 날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오순절이 되면 추수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의 의미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이런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성령이 내립니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에게 모든 것을 깨닫게 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담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성령 강림을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이 탄생하게 됩니다.

 

성령 강림을 목격한 이들은 디아스포라로 인해 온 세상에 퍼져 살다가 예루살렘을 방문한 독실한 유다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입은 제자들의 말을 각기 자기 지방 말로 들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는 온 세상 말이 갈라져 더 이상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던 바벨탑 이야기를 떠올려 줍니다.(창세 11,1-9)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더 이상 그들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려고 그들의 말을 섞으신 뒤 온 땅으로 흩어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두가 예루살렘으로 모여와 성령으로 인해 서로의 말을 알아듣게 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2,14-36)

 

성령 강림이 이루어진 뒤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이 구약의 여러 사건들과 연속선상에 있음을 설파합니다. 그러면서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은 요엘 3,1-5에서 계시 된 바가 이루어진 것임이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 핵심이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부활하였으며 승천하신 예수님이야 말로 참된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가 현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우리에게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줍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도망쳤던 베드로가 성령의 힘을 얻어 담대히 주님을 선포하는 모습에 감회가 새롭습니다.

 

 

예루살렘의 공동생활(2,37-47)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으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전한 성령에 대한 약속은 그 자리에 있는 이들과 그들의 자손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이들 가운데 3천명가량이 세례를 받았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살게 되었는데, 2,42-47은 그들이 어떤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지 네 가지 삶의 모습으로 전해 줍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루카는 주님께서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고 전합니다. 이 표현은 사도행전 곳곳에서 발견되는데(3,41. 47; 4,4; 6,1. 7; 9,31; 12,24; 13,49 등)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루카는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얼마나 힘 있게 전파되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데, 그 일은 오늘까지 교회를 통하여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의 사도들의 활동(3,1-5,16)

 

이제 본격적으로 제자들의 활동이 시작되는데, 그 주요 배경은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이곳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시던 대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기적을 베풉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루카 9,37-43에서는 아무런 치유를 하지도 못하던 제자들이 드디어 병자를 고치게 된 것이다. 기적을 행한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구약성경을 들어 설교합니다.(3,12-26) 베드로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설명하며 자신이 모든 것의 증인이라고 밝힙니다. 아울러 진정 치유하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임을 증언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행하신 바를 이어가고 있을 때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 사두가이들이 제자들을 찾아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예수님께 행한 것과 똑같은 행위를 제자들에게도 가한 것입니다. 하지만 더욱 많은 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그 수가 장정만도 오천명 가량 되었다고 전합니다.(4,4) 이렇게 유다인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그 수가 점점 늘어납니다.

 

제자들은 무식하고 평범한 이들이었지만 담대히 예수님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유다 지도자들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제자들을 풀어 줄 수밖에 없었고, 공동체는 이 모든 일이 구약의 예언(시편 2,1-2)에 따른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4,23-31) 그리고 제자들은 다시금 공동체 생활에 충실합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루카는 공동체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다는 점을 부각합니다.(4,32-5,11) 각자는 소유하던 모든 것을 팔아서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고 각자 필요한 만큼 나누어 썼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종말이 곧 닥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모두 기꺼이 가진 것을 나눈 듯합니다.

 

이 대목에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지닌 요셉이 등장합니다. 그 역시 자신의 것을 모두 다 팔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이 인물은 나중에 박해자였다가 회심한 바오로를 알아보고 자신의 동역자로 삼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바르나바 같은 사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니아스와 사피라는 인물들은 성령을 속이고 공동체에 귀속될 재산을 탐하다가 죽음을 맞습니다. 그렇게 하여 공동체는 하느님의 새로운 성전으로서 거룩함을 잃지 않게 되는데, 사도행전은 여기서 처음으로 공동체를 교회(5,11)라고 부릅니다.

 

 

사도들에 대한 박해(5,17-42)

 

제자들을 통해 기적들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모여듭니다. 이에 질투심을 느낀 대사제와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다시금 사도들을 죽이려고 덤벼듭니다. 그러나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사이파 사람이 나서서 제자들을 그냥 놓아두자고 조언합니다.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하느님을 대적하는 꼴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움직임은 이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결국 가말리엘의 조언에 따라 유다의 지도자들은 제자들을 풀어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회가 오늘날까지 이어짐으로써 진정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들임이 드러났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가말리엘이 바로 사도 바오로의 스승입니다.

 

[2020년 2월 9일 연중 제5주일 가톨릭마산 4-5면, 염철호 요한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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