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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 묵상 해설] 요한 12,27-50-----송영진 모세 신부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유타한인성당 쪽지 캡슐 작성일2016-11-03 조회수2,452 추천수0

 

12장

 

<27절-36절 : 사람의 아들은 들어 올려져야 한다>

 

27절..<"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예수님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와 죽음을 생각하고 마음의 동요를 느끼셨습니다. 이것은 인

    간적인(원초적인) 공포 같은 것인데,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적인 번뇌입니다. 지금 예수님

    이 자문자답하는 것은 그 내적 번뇌와 내적 투쟁을 나타냅니다.

    '이제'는 '죽음이 임박한 지금'을 뜻합니다.

    '마음이 산란하다.' 라는 말은 괴롭고 초조하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라는 구절에서 '이때'는 죽음의 때인데, 죽음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영광의 시간입니다. 따

    라서 이 물음은 죽음을 면하게 해달라는 간청이 아니라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무슨 기도

    를 드려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고, 예수님의 내적 갈등을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라는 말은, 예수님 자신의 질문에 스스로 답변하

    신 것인데,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는 결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때를 위하여' 라는

    말은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는 때를 위하여'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신의 소망은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죽음의

    시간을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입니다.

 

28절..<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라는 말은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는 순종의 뜻이 담긴 청원기도

    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와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영광은 아들의 죽음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말은 성서적인 표현으로서 하느님 자신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와 변모하셨을 때와 같은 음성

    이 들려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직접 대답하셨다는 뜻

    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

    고' 라는 말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활동 전체, 예수님의 생애 전체

    를 하느님께서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통해 하

    느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 라는 말은 이제 예수님을 하늘의 영광에 받아들이겠다는 뜻

    이기도 하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많은 결실을 얻음으로써 (밀알 하나의 죽음으로 많은 열

    매를 맺음으로써) 아버지가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29절..<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하느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은 사람은 예수님

    한 분뿐이었거나, 혹은 몇 명의 제자들뿐이었을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천둥소리는 하느

    님의 음성으로 생각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음성을 천둥소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어떤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생각했음을 나타냅니다. 천사가 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은 그 소리가 하늘에서 온 어떤 '말'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천둥소리라고 생각했든, 천사의 음성이라고 생각했든, 하여간에 일반 군중은 하느

    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30절..<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예수

    님께서 그 소리는 바로 군중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사실 군중은 그 소리가 하느

    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했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군

    중을 위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구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음성의 내

    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의 응답이 있었음은 믿어야 한다." 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즉 하느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자신의 청을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셨

    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응답이 들려온 것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즉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31절..<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이제' 라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이 다가온 '지금'이라는 시간을 강조하는 말입

    니다.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은 곧 심판의 시작이라

    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의 패배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악의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추방하는 승리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악의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고, 믿음도 없는 인간 세계를 뜻합니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는 사탄을 뜻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쫓겨날 것이고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라는 말은 사탄이 힘과 권위를 잃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

    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모두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의 시간은

    예수님께는 승리와 영광의 시간이고, 사탄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32절..<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땅에서 들

    어 올려진다, 라는 말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되는 것과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모두 뜻

    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십자가 죽음을 거쳐서 하늘의 영광을 얻게 되면, 이라는 뜻입니

    다.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라는 말은 모든 사람을 예수님과의 일치로

    인도할 것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할 것이라는 뜻

    입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입니다.

 

33절..<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

    다.>--이 구절은 복음서 저자의 설명인데, 예수님은 자신에게 닥칠 죽음이 십자가형이라

    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 죽음의 의미도 알고 계셨다는 것을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죽음이었다는 것을 설명하

    는 말입니다.

 

34절..<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율법에서 메시아는 영원히 사실 것이라

    고 들었는데, 어떻게 선생님은 사람의 아들이 들어 올려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그 사

    람의 아들이 누구입니까?">--여기서 '율법'은 구약성경을 뜻합니다. 구약성경에는 메시아

    의 나라가 영원하다고 되어 있습니다(이사 9,6). 그래서 유대인들은 메시아는 영원히 사

    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여

    기서 '메시아'로 번역된 말의 원문은 '그리스도'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의 아들'이 메시아를 뜻한다면 사람의 아들이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들어 올려져야 한다.' 라는 말은 십자가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것이고, 그 말이 십자가 죽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면 그 말은 대체 무슨 뜻인가? 반대로

    그 말이 십자가 죽음을 뜻하는 말이라면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

    이 아닌 것이 되는데,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것이 유

    대인들의 질문입니다.

 

35절..<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걸어가거라. 그래서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35절은 34절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니고, 유대 군중에 대한 권고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유

    대인들과 더 이상 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빛'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

    에 걸어가거라.' 라는 말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 곁에 있는 동안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라고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여라.' 라는 말은 심판과 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라는 말

    씀입니다. 여기서 '어둠'은 죄와 죽음, 심판과 멸망을 뜻합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만

    이 그 어둠에서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라는 말은 11장 10절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어둠에 사로잡힌 사람, 멸망을 향해 가는 사람입니다. '자기

    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라는 말은 올바른 길, 즉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고 멸망으로

    향하는 길을 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36절..<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어라." 예수님께서는 이렇

    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을 떠나 몸을 숨기셨다.>--'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어라.' 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고 촉구하시는 말

    씀입니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라는 말은 앞의 35절에서도 하신 말씀인데 예수

    님이 아직 지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라는 뜻입니다. 또 35절에서는 '걸어가거라.' 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빛을 믿어' 라고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십니다. '빛의 자녀'란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을 뜻합니다.

    36절은 유대 군중에게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 말씀인데, 믿지 않으면 멸망하게 될 것

    이라는 경고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어서 구원을 받으라고 촉구하십니다. 예수님은 심판

    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을 떠나 몸을 숨기셨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피

    해 숨으셨다는 뜻이 아니라 군중을 상대로 한 활동을 마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

    제부터는 군중이 아니라 제자들만 가르치시게 됩니다.

    요한복음을 1부와 2부로 나눈다면, 이 구절은 실질적으로 1부의 마지막 구절이 됩니다.

    37절부터 50절까지는 1부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37절-43절 : 유다인들의 불신>

 

37절..<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그토록 많은 표징을 일으키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이 구절은 복음서 저자의 설명입니다. '표징'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도록 인

    도하는 기적을 뜻합니다. (공동번역 성서의 '기적'은 '표징'으로 바꿔야 합니다.) 여기서

    '그토록 많은'이라는 말은 표징의 양이 아니라 가치를 뜻합니다. 즉 '그토록 위대한'이라는

    뜻입니다.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위대한 표징들을 많이 보여주셨는데도 유대

    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믿지 않았다.' 라는 말은

    지속적으로 믿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38절..<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한 말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 저희가 전한 말

    을 누가 믿었습니까?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습니까?">--이 구절은 이사야서

    53장 1절을 인용한 것인데, 원래는 고통 받는 야훼의 종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 구절을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불신과 거부를 예언한 구절로 해석해서 인용

    하고 있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은 예수님의 활동이 실패한 것이 아

    니라 이사야의 예언대로 된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언대로 되었다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언대로 되었다고 해서 하느님에게 책임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억 속에서 회상하는 것처럼 예언이란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기억이 과거에 일어난 일의 원인이 아니듯이 예언이 미래의 일에 대한 원인이 될 수는 없

    습니다. 또 하느님의 섭리나 계획대로 된다는 말이 인류의 모든 일은 미리 정해진 운명대

    로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선택하고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

    야 합니다.

    다만 그 모든 일들이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는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아신다는 것입니다.)

 

39절-40절..(39)<그들이 믿을 수 없었던 까닭을 이사야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40)<"주님

    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무디게 하였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

    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복음서 저

    자는 다시 이사야서 6장 9절-10절을 인용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이유를 설

    명합니다. 여기에 인용된 이사야서의 구절은 일종의 역설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무디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과

    마음을 고쳐 주려고 해도 그들이 거부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님은 눈먼 사람을 보게 하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쳐 주시는 분인데 유대인들은 예수님

    의 치유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보려고 하지 않았고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1절..<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분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이다.>--이사야는 환시를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이사

    6,1-4). 요한복음서 저자는 이사야가 본 것은 예수님의 영광이었다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동일한 분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바로 그 해석을 바탕으로 해서 이사

    야가 하느님에 대해 한 예언들도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42절..<사실 지도자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바리사이들 때문에 회

    당에서 내쫓길까 두려워 그것을 고백하지 못하였다.>--이 구절은 40절에 대한 보충 설명

    입니다. 사람들의 눈이 멀고 마음이 무디어진 것은 하느님에 의해 정해져 있는 일이 아니

    라 각자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서 저자는 그 증거로 지도자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안 믿

    은 사람보다 더 많았다는 뜻이 아니라 지도자들 중에도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다는 정도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들 자신이 믿음

    을 고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의 9장 22절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

    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합의했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은 지도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있었지만

    회당에서, 즉 유대교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것이 두려워 믿음을 고백하거나 겉으로 드러내

    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43절..<그들이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보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

    다.>--복음서 저자는 42절에서는 예수님을 믿은 지도자들이 용기가 없어서 믿음을 고백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는데, 43절에서는 그들이 인간적인 영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추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을 사랑하는 것은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모두 맡겨드리고 하느

    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에게서 받는 영광'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인 명예

    를 추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기를 바라면서 사는 것

    입니다. 용기가 부족한 것은 죄라고 할 수 없고 그냥 믿음과 용기가 부족한 상태이지만,

    하느님보다도 인간적인 영예를 더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고 하느님 앞에서 죄를 짓

    는 것입니다.

 

<44절-50절 : 예수님의 말씀과 심판>

    44절-50절은 앞의 내용과 이어진 것이 아니라 독립되어 있는 부분인데, 복음서 저자가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요약한 것으로 봅니다.

 

44절..<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라는 말은 '선포하셨다.' 라는 뜻입

    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다.' 라는 말

    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느님을 믿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을 대신하는 분이고, 하느님은 예수님 안에 현존하시며 예수님과 일치를 이

    루고 함께 활동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믿

    는 것이 아니라' 라는 말은 '예수라는 특정 인간을 믿는 것이 아니라' 라는 뜻으로 해석됩

    니다. 그래서 공동번역 성서의 '나를 믿는 사람은 나뿐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까지 믿는

    것이고' 라는 번역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라는 말은, 하느님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라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45절..<그리고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이 구절은 44절의 '믿

    는'이라는 말을 '보는'으로 바꾸어서 반복한 것입니다. 즉 믿는 것과 보는 것이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본다.' 라는 말만 따로 생각하면, 이 말은 영적으로 보는 것,

    신앙적으로 보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44절과 45절을 합해서 생각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에게서, 또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다는 뜻으

    로 해석됩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도 보는 것이다.' 라고

    번역했는데, '나를 보내신 분도' 라는 구절은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을'이

    맞습니다.

 

46절..<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라는 말은 8장 12절의 '나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즉 예수님은 어둠 속에 있는 세상의 인간들을 구원하

    기 위해 오신 빛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둠'은 죄와 죽음과 멸망을 뜻합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이

    빛으로서 세상에 오신 이유를 설명한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죄 속에서 살다가 영원한 죽

    음(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빛으로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을

    받으려면 빛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공동번역 성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번역했는데, 뜻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원문의 표

    현과는 거리가 있는 번역입니다.

 

47절..<누가 내 말을 듣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여기서 '내 말'은

    '내 말들'이라고 복수형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내 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들, 말씀들인

    데, 이것은 사실상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야기하시기 때

    문입니다.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여도' 라는 말은 '그 말씀들을 믿지 않는다 해도' 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에서의 '지킨다.' 라는 말은 믿음을 뜻합니다.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러 왔

    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심판자가 아니라 구세주로 오셨음을 강조하는 말입

    니다. 여기서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은 예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은 그를 심판

    한다는 뜻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48절에 믿지 않는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내가 한 바로

    그 말'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은 최후의 심판 때에 예수님이 심판관의 역할을 하

    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 때에 사람들을 심판하시겠지만 그것은

    처벌을 위한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심판입니다. 사람들이 처벌을 받고 멸망하는 것

    은 예수님이 심판하시기 전에 이미 그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여기서

    '심판'이라는 번역보다는 공동번역 성서처럼 '단죄'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48절..<나를 물리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

    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할 것이다.>--이 구절은 앞의 3장 18절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나를 물리치고' 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태도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내 말을 받아

    들이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를 뜻합니다. 여기서도 '내 말'은 '내 말

    들'로 번역해야 합니다. '심판하는 것이 따로 있다.' 라는 말은 앞의 47절을 보충 설명한

    것입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라는 구절에서 '그 말'은 '로고스'를 번역한 것인데, 앞에서 언급한

    예수님의 '말들'을 가리키는 집합명사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 힘이 있는 하느님의 말씀을

    뜻하기도 합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심판할 것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 또는 하

    느님의 말씀을 믿고 안 믿고에 따라서 심판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의 심판을 받기 전에 이미 예수님 말씀을 안 믿는 태도 자체가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

    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지막 날에' 라고 되어 있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은 지금의 일이기 때문에

    심판과 처벌은 사실상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이란 지금이라

    는 시간과 상관없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시작되는 날입니다.

 

49절..<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친히 나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이 구절은 48절의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심판할 것이다.' 라는 말을 설명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

    문에 그 '말'이 사람들을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그 자체로 권위와 권능

    이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은 예수님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

    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 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파견하셨

    다는 말이면서 동시에 예수님과 하느님이 일치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라는 말은 같은 뜻의 말을 반복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명령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친히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친히' 하신 명령에

    의한 말씀이기 때문에 사실상 하느님의 말씀이고, 그래서 그 말씀은 곧 사람들을 심판하

    는 권위와 권능을 지닌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공동번역 성서에는 '때문이

    다.' 라는 말이 빠져 있는데, 이것은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50절..<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

    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예수님은 앞에서는 심판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지만

    이제 구원과 생명을 말씀하시면서 마무리하십니다. '그분의 명령'은 하느님의 명령에 의한

    예수님의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은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안다.' 라는 말은 사람들은 하느님을 잘 모르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을 직접 안다는 말인

    데, 이 말은 그만큼 예수님과 하느님이 일치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명령이 영원한 생명임을 안다.' 라는 말은 '나는 아버지와 완전히 일치되어 있고 내가 하

    는 말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내 말을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

    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말이다.' 라는 구절은

    원문대로 직역한 것인데, 뜻으로는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아

    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말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으

    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반 군중을 상대로 한 예수님의 공적인 활동은 막을 내리고, 13장부터는 예

    수님의 수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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