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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의 서간들: 요한의 서간들을 시작하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8 조회수3,556 추천수1

[요한의 서간들] ‘요한의 서간들’을 시작하며



신약성경에서 “요한”이란 이름에 속한 작품들은 모두 넷입니다. 요한 복음과 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서간이 그것입니다. 요한 복음은 많은 이가 관심을 갖고 자주 읽는 복음서이지만, 요한의 서간들은 조금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흔히 요한의 서간들은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을 이야기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요한의 서간들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편지의 저자가 누구인지, 또 누구에게 써 보내는 편지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간의 저자

요한 복음과 더불어 요한의 서간들은 전통적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야고보의 동생이며(마르 1,19) 열두 제자 중에 한 명이었던(마태 3,17) 요한, 곧 사도 요한에 의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 180년경 이레네오는 저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 후에 주님의 제자이며 그의 가슴에 기대어 있던 요한은 자신이 아시아의 에페소에 머물러 있는 동안 복음서를 기록하였다”(「이단을 거슬러」, III 1,1).

더 나아가 그는 요한에 대한 다른 이들의 언급 역시 전해줍니다. “아시아에서 주님의 제자였던 요한과 함께 있던 모든 원로들이 모여 그가 요한 복음을 전해주었음을 증언하였다. 왜냐하면 요한은 그들의 곁에 트라야누스 황제(98-117년) 때까지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이단을 거슬러」, II 22,5).

하지만 1900년대 중반 이후 요한의 작품들에 대해 새로운 제안들이 등장합니다. 전통적인 교부들의 견해와 상반되게 현대의 학자들은 요한의 작품들이 한 명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작품들에서 이러한 흔적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의 결말에서 발견되는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요한 21,24)는 표현은 저자가 “우리”임을 알려줍니다. 이와 비슷하게 요한 1서 역시 1인칭 복수로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있어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 1,1).

이러한 사실들은 요한 복음과 요한 1서의 저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말에서도 사용하는 것처럼 ‘나’ 대신 ‘우리’를 사용해서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다수의 저자 또는 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복음과 서간의 기록에 참여했으리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요한의 연구자들은 “공동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둡니다. 사도 요한의 전승을 이어받은 이른바 “요한 공동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고 요한 복음과 서간들은 이 공동체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살펴보아야 할 것은 요한의 둘째, 셋째 서간입니다. 요한 2서, 3서는 모두 “원로인 나”(2요한 1; 3요한 1)로 시작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원로’라는 표현이 당시의 언어 표현에서 공동체의 지도자나 어떤 학파의 지도자를 지칭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요한의 작품들은 모두 “요한 공동체”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한”의 작품들

그렇다면 요한의 작품들은 모두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지, 또 복음과 서간들 모두가 동일한 사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그 답은 ‘그렇다’입니다. 요한 복음과 서간들은 동일한 신학과 강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육화”에 대한 신학입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요한 1,14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짧은 표현은 예수님의 육화를 가장 잘 표현해주고, 이러한 사실은 복음서의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론적인 바탕을 이룹니다.

예수님이 신이면서 온전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육화에 대한 강조는 1요한 4,2과 2요한 7에서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요한 복음의 가장 중요한 믿음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하느님과 세상을 구분하는 요한 복음의 이원론적인 사상 역시 1요한 2,15-17이나 2요한 7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하느님과 아들은 하나라는 단일성에 대한 신학이나 하느님에 대한 앎을 중요시하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표현 역시 요한의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내용들은 요한의 작품들이 동일한 저자에 의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작품의 시기

요한 복음과 요한의 서간들이 언제쯤 쓰였는지에 명확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서간이 복음보다 앞선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요한의 작품들 중에 복음서가 가장 먼저 기록된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여러 학자들 사이에 명확한 통일성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견해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요한 복음은 요한의 서간들보다 앞선 것으로 생각합니다. 흔히 후대에 편집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요한 21장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지만, 일반적으로 요한의 서간들은 복음서보다 후대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복잡한 문제는 요한 서간들 사이의 선후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서간들 안에서 기록된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들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간들 안에서 공통적인 소재로 보이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일어났던 충돌과 분열입니다. 그렇기에 세 서간 모두 비슷한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지만, 어떤 서간이 가장 먼저이고, 가장 마지막인지 결론을 내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요한 복음이 100년경에 쓰였다면, 요한의 서간들은 100-110년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서간들이 쓰였고, 서간들 중에 요한 1서가 가장 먼저, 그리고 2서와 3서가 그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서간의 독자들

지금까지의 결과들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요한의 작품들은 모두 동일한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 복음에서 보이는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배려와 서간들에서 찾을 수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요한의 작품들은 모두 요한 공동체와 연관된 환경 안에 있는 신앙인들을 우선적인 독자로 삼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중의 다수는 이방인 출신의 신앙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서간의 전체적인 내용

요한의 서간들은 전체적으로 “형제적 사랑”에 대해 강조하면서, 그것을 실천하도록 요구합니다. 사랑의 시작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1요한 4,16). 그렇기에 하느님을 믿는 이들, 곧 하느님으로부터 온 이들은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형제자매들 안에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이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의 실천’은 요한의 서간들 안에서 가장 중요한 윤리적 기준이 됩니다.

사랑의 실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2요한 7).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을 하느님과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하고, 이 머묾을 통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머물고, 이것을 통해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이 모든 것들은 실천적으로 사랑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요한의 서간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1요한 4,7).

* 허규 베네딕토 -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사제로 수품,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고,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신약성서 교수로 요한 묵시록과 희랍어를 가르치고 있다.

[경향잡지, 2015년 1월호, 허규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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