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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단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01 조회수2,959 추천수1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 단


칼럼을 시작하면서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는 ‘이스라엘 온 땅’이라는 의미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판관 20,1; 1사무 3,20; 2사무 3,10; 17,11; 24,2.15; 1열왕 5,5) 성경 속의 시 · 공간적 차원이 내 삶과 만나는 관계적 차원으로 옮겨질 때 성경 이야기는 생명을 얻는다. 북쪽 지역에서 남쪽 지역으로 성경 이야기의 자리를 찾아가며, 하느님을 섬겼던 이들의 삶이 건네는 말없는 소리에서 오늘 내가 걷는 신앙의 길을 비추어 보았으면 한다. 그때 그 자리에 머물다 간 하느님 백성의 이야기는 오늘 내 삶 안에서 새롭게 쓰여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 그때 그 자리 - 분열의 상징 ‘단’

이스라엘 땅을 다니다 보면 ‘텔(Tel)’이라는 단어가 적힌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한때 주거지였다가 전쟁, 자연재해 등을 거치면서 폐허가 된 자리에 집과 건물을 거듭 세우다 보니 언덕처럼 높아진 곳을 말한다. 텔 단은 헤르몬 산 남쪽에 위치한 고대 성읍으로 가나안 민족이 살던 이곳의 원래 이름은 ‘레셈’(여호 19,47) 또는 ‘라이스’(판관 18,27-29)였다.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밀려난 단 지파가 이 지역을 점령하고 이름을 ‘단’으로 바꾼다.(여호 19,40-47) 이곳에 예루살렘과 분리된 성소가 세워진 것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임금 예로보암 때의 일이다.

“예로보암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나라가 다윗 집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나를 죽이고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임금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1열왕 12,26-29)

단과 베텔은 북왕국의 북방과 남방 경계선에 있는데, 오래전부터 가나안 토착 신앙이 자리잡아 경신례가 행해지던 곳이다. ‘금송아지’라고 하면,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나이 산에 머무는 동안 사제 아론이 백성들의 청에 따라 만든 신상(탈출 32,1-6)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향해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탈출 32,4)라고 외쳤는데, 똑같은 소리를 이제 임금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로보암의 선포에 백성들이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백성들 편에서도 반길만했다는 것일까?

황소는 고대에 신을 상징하는 동물이었기에 가나안 땅 뿐만 아니라,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숭배되었다. 오랜 세월 이집트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쉽사리 이 신상을 따르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친숙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로보암은 아히야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리라는 말을 들은 후, 솔로몬 왕을 피해 이집트로 달아나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파라오 시삭 곁에 머물렀다.(1열왕 11,26-40) 레위의 자손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를 임명한다든지, 율법이 정한 축제에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도록 축제일까지 바꾸는 예로보암의 모습은 그가 신격화된 파라오처럼 경신례의 주관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단과 베텔 - 왕국과 경신례의 분열

왕국의 분열이 낳은 첫째 비극은 남북 임금들의 적대 관계에서 비롯된 전쟁 상황이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권을 되찾으려는 남왕국 유다의 왕 르하브암은 유다와 벤야민 지파에 총동원령을 내림으로써 동족상잔의 위기를 만드는가 하면(1열왕 12,21) 예로보암이 북왕국의 왕으로 있는 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1열왕 14,30) 둘째는 하느님을 섬기는 경신례의 분열인데, 사실 어디서 경배를 드리느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계약궤를 모신 예루살렘에서 정해진 축제일에 백성이 모이는 것은 한 분 하느님께 속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는데 있다. 왕국의 분열과 경배 장소의 갈라짐이 외적인 현실이었다면,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백성이 나뉘어진 경신례 장소에 따라 흩어지는데 있다고 하겠다.

이 분열의 씨앗은 예로보암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마음 속으로 생각하다’(1열왕 12,26)라는 표현은 이익을 저울질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의 마음이 나뉘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나뉘어진 마음에서 나뉜 행동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그 끝이 좋을 리 없다. 열왕기 상권 12장에서 14장의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분열’이 낳은 것은 ‘멸망’임을 볼 수 있다. 왕국의 분열은 성소의 분열로 그리고 예로보암 집안은 물론 왕국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그 때문에 ‘예로보암의 죄’라는 말이 후대의 다른 왕들의 빗나감을 이야기할 때 거듭 나오는 것이다.


2. 오늘 이 자리 - 하나됨을 향하여

갈라진 마음은 갈라놓는 일을 초래한다는 것을 되새기며 단을 내려오면 꼭 들러볼 자리가 그 근처에 하나 있다. 지금은 바니야스로 불리지만, 베드로가 예수님께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했다고 전해지는 카이사리아 필리피다.(마르 8,27-29) 판 신전과 제우스 신전, 신격화된 로마 황제의 신전이 가득 세워진 힘과 화려한 번영의 도시 그 한복판에서 늘어선 신상들을 향하지 않고 나자렛이라는 작은 고을의 한 예언자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은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스도’는 히브리말로 ‘메시아’ 곧 ‘기름부음받은이’로서 임금에게 사용되던 표현이다.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이 지역은 더 이상 분열을 기억하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을 하나로 모아 들이는 참된 임금, 하나의 성소가 되어주실 하느님 아들을 맞아들이는 자리가 된다. 그 옛날 마음이 갈라진 자리에서 한 분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하나됨의 회복이라고 하겠다.

새로운 한 해가 열린다. 헤르몬 산을 하얗게 덮은 눈이 녹아 단의 강을 이루고 카이사리아 필리피의 풍성한 샘을 이룬다. 하느님을 모셔 들인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도 하나의 큰 수원지가 되고, 거기 주님의 축복이 샘물처럼 가득 넘쳐 흘러 온 세상을 적셔주는 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야곱의 우물, 2014년 1월호, 송미경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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