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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바오로의 선교여정: 선교여행의 배경 (1)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7-16 조회수3,707 추천수1

[바오로의 선교여정] 선교여행의 배경 (1)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



사도 바오로를 생각할 때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매부리코에 키 작고 볼품없는 남자의 모습일까? 아니면 다마스쿠스 근처에서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 지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가 선교여행을 하면서 다녔던 오늘날의 시리아, 터키, 그리고 그리스 땅에 대한 지도를 떠올리게 된다.

바오로의 세 번에 걸친 선교여행을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선교여행의 배경이 되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를 살펴보자. 안티오키아 신자들은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영예를 받은 이들이다. 그들은 이러한 명예에 걸맞게 최초로 이방인 선교사업을 시작한다.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3,1?2)


모범적인 공동체, 안티오키아 교회

위 성경 본문은 안티오키아 교회가 참으로 모범적인 공동체였음을 세 가지 특징과 함께 알려주고 있다.

첫째, 안티오키아 교회는 다섯 명의 지도자가 팀이 되어 공동체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바로 바르나바, 시메온, 루키오스, 마나엔, 그리고 사울(바오로)이다.

둘째, 안티오키아 교회는 신자 재교육을 중시한 교회였다. 안티오키아 교회를 이끌어 간 이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었고 그들이 수행해야 될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성경을 가지고 신자들을 교육하는 것이었다.

셋째, 안티오키아 교회는 모두가 기도에 전념하는 교회였다. 다섯 명의 지도자는 예배와 단식 기도에 열중하던 중에 성령의 지시를 받는다. 곧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선교사로 파견하면서 선교 사업을 시작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예배는 복음전도의 출발점

다섯 명의 지도자가 함께 모여 예배드리고 있을 때 성령께서 바르나바와 바오로에게 임무를 부여했다는 것은, 예배가 모든 선교의 출발점임을 드러낸다. 이 점은 미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사제가 신자들을 강복한 다음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말을 한다. 이는 주님께서 사제를 통해 신자들에게 파견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가시오. 당신에게 복음선교의 사명을 부여합니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부여받는 것은 커다란 영예다. 그래서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한다.

예배가 선교의 출발점이기에 예배 없는 선교는 자칫 속 빈 강정이 되기 쉽다. 근래에 한국 교회는 적극적인 선교를 통해서 많은 사람을 신자로 만들고 있다. ‘신자 배가 운동’, ‘총력적인 선교활동’, ‘본당 신자 만 명 만들기 운동’ 등의 슬로건과 함께 전교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런데 예비자들이 세례를 받은 다음 어떻게 되는가? 2012년 주교단 통계에 따르면 78퍼센트에 해당되는 신자들이 주일미사에 참석하지 않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세례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이들이라고 한다.

예배가 복음선교의 출발점이란 말은 신앙생활의 다른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배는 모든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다. 예배가 있어야 봉사도 바르게 이루어지고, 모임도, 교육도 바르게 이루어진다. 예배는 최우선에 두어야 하는 사도직이고 나머지는 이 사도직에서 비롯된다.


왜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안티오키아 교회인가?

만방에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이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신자들이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는 다른 곳에 있는 모든 교회의 모교회(母敎會)였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왜 예루살렘 교회에 복음선교 사명을 부여하지 않았는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예배드리지 않고 단식하지 않았기에 선교사들을 따로 세우라고 명할 수 없었던 것일까? 물론 아니다.

성령께서 예루살렘 교회에 선교 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은, 그곳의 신자들이 강하게 집착하고 있던 유다주의적 경향 때문이었다. 예루살렘 신자들 안에는 할례당원들이 있었다.(사도 11,2) 그들은 이방인들이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15,1.5)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킴으로써, 다시 말해 유다인이 되어야만 신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 할례당원들은 베드로 사도가 최초로 이방인을 교회 안에 받아들였을 때 마음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11,18) 주님께서 로마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식솔들에게 성령을 쏟아부으셨는데, 어찌 대놓고 주님을 거슬러 반대할 수 있으랴. 하지만 나중에 보면 이들 할례당원들은 바오로 사도가 세운 터키와 그리스 땅의 교회를 찾아와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에게 할례와 율법준수를 요구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할례당원들이 아니라 해도 율법을 중시하는 신자들이 대다수였기에, 이방인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기에는 한계가 컸다. 이런 맥락에서 성령께서는 그들이 아닌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신자들에게 선교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보편교회의 통치 권한 중심이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다면, 선교의 중심은 안티오키아 교회에 있었다. 예루살렘 교회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교회에 해당된다면, 안티오키아 교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모교회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단식기도를 드린 이유

선교 사명을 위해 성령이 지목한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이끌어 가던 최고의 지도자요 탁월한 사목자였다. 안티오키아 교우들의 입장에서 볼 때, 공동체 최고의 지도자두 사람을 긴 시간 동안 떠나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차 선교여행은 4년(45-49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만일 공동체가 자기네 사정만 생각했다면 ‘아니 어떻게 우리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두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라고 하는가?’ 하면서 성령의 뜻에 의아함을 품었을지 모른다.

안티오키아 신자들은 성령의 뜻을 거부할 이유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공동체가 신생교회로서 아직까지 뿌리를 내리기 못했기에 지도자 두 사람을 내놓을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었고, 안티오키아 도시 전체가 아직 복음화된 것이 아니기에 떠나보낼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

한편 선교사로 지목된 바르나바와 바오로도 그들에게 부여된 선교 사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성령의 명령을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은 소위 지금 말하는 대형교회의 지도자다. 수많은 신자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로서 그들이 누리고 있는 영적 권위가 인간적으로 매력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선교 사명에 뛰어든다면 고생길이 뻔한 것이다.

사도행전 13장 3절을 보면 안티오키아 교회가 성령의 지시를 받고 나서 즉시 했던 일은 다시금 단식하며 기도하는 일이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기도를 드렸음을 의미한다. 안티오키아 신자들은 자기들의 욕심이나 인간적 계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순종하고자 단식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몇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우선 교회가 하느님의 교회임을 깊이 깨닫는다. 그렇기에 교회 유지와 발전은 어떤 지도자들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다. 또 하느님의 교회는 온 세상에 세워져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래서 자기 교회 사정만을 생각해 지도자들을 붙들어 두기보다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서 그 지도자들을 기꺼이 내어놓을 생각을 한다.

이렇게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신적 지도자인 하느님께 의지하고 순종하였기에,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선교사업을 위해 그들을 떠나 있는 4년 동안에 계속해서 성장 발전할 수 있었다.

[야곱의 우물, 2014년 7월호, 송봉모 신부(예수회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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