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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여호수아기 6장: 예리코를 점령하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1-01 조회수3,467 추천수1
역사서 해설과 묵상 (26)

“백성은 뿔 나팔 소리를 듣자마자 큰 함성을 질렀다. 그때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백성은 저마다 성읍을 향하여 곧장 앞으로 올라가 그 성읍을 함락하였다.”(여호 6,20)


여호수아기 6장은 예리코를 점령하는 이야기다. 이스라엘 백성이 행렬을 갖춰 계약 궤를 모시고 예리코 성읍을 6일 동안 돌고 이렛날 사제들의 뿔 나팔 소리에 맞춰 함성을 지르니 예리코 성벽이 무너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고학자들은 예리코에서 여호수아기 6장이 전하는 그런 점령과 성곽 파괴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고고학적 발굴결과들을 종합해보면, 기원전 1200년경 후기 청동기 시대에 예리코에 성곽이 없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고고학자들의 발굴 결과, 하초르는 기원전 1200년경 파괴된 흔적을 보인다. 여호수아기 11장 10-11절에 언급된 것처럼 이 도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예리코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다. 여호수아기 6장의 내용과 같은 고고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예리코는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도시다. 지금도 예리코 주변은 사막일 뿐이다. 기원전 1만 년 전부터 유목민들이 예리코에 정착해 도시를 건설했다. 한 부족이 살다가 다른 부족이 침입해 들어와 먼저 살던 도시와 성벽을 파괴하고 그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서 살고, 또 다른 부족이 침입해 들어와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이렇게 수천 년 동안 그전의 도시 위에 새로운 도시가 형성되어 도시가 있던 자리가 점점 높아져 돌출한 커다란 언덕을 형성했는데, 이것을 텔(Tell)이라고 한다. 여호수아의 영도로 이스라엘 백성이 점령한 예리코 성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이 아니라 이런 텔(Tell)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예리코를 점령한 때를 기점으로 그 이전 300년 동안 예리코에 성이 없었다는 것이 고고학 발굴 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당시 예리코에는 상대적으로 가난한 소규모 집단이 이주해 왔다는 증거가 발견된다. 그때는 이집트에 제19왕조가 세워져 힉소스들이 이집트에서 쫓겨났는데, 소규모 집단이 예리코에 이주한 것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기 6장이 전하는 예리코 성 점령은 여호수아의 시대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호수아기 저자의 의도는 예리코가 성벽도시였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예리코 점령은‘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 여호수아기 6장은 예리코 점령을 사실대로 전하는 상황 보고서가 아니라 경신례적인 전투를 말하는 것이다. “여호수아기의 저자가 볼 때, 가나안 정복은 단순한 세속적 사건이 아니라 신학적 사건이다”(R. de Vaux). 여기서 우리는 저자의 의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예리코를 점령했음을 말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일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점령했는지 사실대로 묘사하거나 그 당시에 예리코에 성곽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저자의 의도 밖에 일이다. 예리코 점령 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셨다는 증거가 여호수아기 6장에서 ‘계약 궤’로 표현되었다.

묵상주제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를 거슬러 군대가 진을 친다 하여도 내 마음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나를 거슬러 전쟁이 일어난다 하여도 그럴지라도 나는 안심하리라”(시편 27,1.3).

[2012년 12월 30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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