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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상징] 성경 속의 인물: 익투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14 조회수7,477 추천수1
[성경 속의 인물] 익투스


초대교회는 로마의 박해를 받았고 4세기 초까지 지하교회로 연명했다. 박해가 공적으로 끝난 것은 ‘밀라노 칙령’ 이후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두 명의 황제가 있었다. 제국의 서쪽을 장악한 콘스탄티누스와 동쪽을 차지한 리치니우스였다. 두 사람은 313년 2월 수행원을 이끌고 북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만났다. 산적한 정치문제를 풀기 위해서였다.

이 회담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자유를 허용하며 몰수했던 교회재산은 돌려주자는 합의가 나왔다. 그리고 6월에는 리치니우스가 두 황제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이것이 밀라노 칙령이다. 10년 뒤 콘스탄티누스는 리치니우스를 제거하고 단독 황제가 되었으며 325년에는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해 아리우스 이단을 몰아냈다. 국가종교로 등장시킨 것이다.

밀라노 칙령 이전에는 신자들이 모임을 가질 수 없었다. 전례집전은 비밀장소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서로를 알아보는 암호가 등장했다. 그중 하나가 물고기 그림이었다. 한 사람이 발로 물고기 윗부분을 그리면 다른 사람이 다가와 나머지 부분을 그렸다. 이렇게 해서 교우임을 서로가 확인했다. 물고기는 희랍말로 익투스(ΙXθΥΣ ΙXTHUS)다. 그런데 단어의 스펠링을 이용하면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말을 만들어낼 수 있다.

Ι - 예수, X - 크리스투스, TH - 테오스(하느님), U - 휘오스(아들), S - 소조메테(구원자). 이렇듯 물고기 그림에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로마의 지하묘지 카타콤(Catacomb)에는 프레스코 벽화로 그려진 물고기 그림들이 남아 있다. 대부분 1세기경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들이다.

로마의 박해는 네로 황제 때 시작되었다. 64년 여름 로마변두리에서 일어난 화재는 9일간 로마시의 절반 이상을 태우며 엄청난 재산손실을 가져왔다. 민심이 사나워지자 혼란을 수습하려 기독교에 책임을 전가했다. 이것이 박해의 원인이다. 사도 베드로는 즉시 잡혀와 십자가형을 받았고 수많은 교인들이 재산을 빼앗기며 순교의 길을 갔다.

그런데 당시 순교자들이 콜로세움에서 처형된 것은 아니었다. 네로 때는 콜로세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원형 경기장은 네로가 죽고 12년 뒤 티투스 황제 때 완성되었다. 64년 시작된 박해는 313년까지 250년간 산발적으로 지속되었다. 물론 기독교를 묵인한 황제들도 있었다.

[2012년 1월 1일 · 8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 주님 공현 대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미국 덴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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