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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역사서 해설과 묵상: 역사서가 쓰인 배경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2 조회수3,400 추천수1
[말씀의 자리] 역사서 해설과 묵상 1 : 역사서가 쓰인 배경 (1)


이번 주부터 구약성경 역사서를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하권, 열왕기 상하권을 역사서로 분류합니다. 역사서를 전체적으로 살펴본 다음, 역사서 각 권을 개관하고 이어서 중요대목을 해설하고 묵상하는 순서로 집필하겠습니다.


여호수아기부터 열왕기에 이르는 네 권의 거대한 역사서는 기원전 1200년경 가나안에 정착하는 시대부터 왕정이 끝나는 기원전 587년까지 600여 년 간의 이스라엘 역사에 예언적인 해석을 제시한다. 이런 예언적인 해석은 이들 책의 역사적인 가치와 모순되지 않는다.

이 책들의 예언적인 면모는 두 군데에 근원을 두고 있다. 첫째 근원은 바로 뒤에 있는 ‘예언서다’.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과 삶에 주어지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본래적 의미의 예언서는 앞에 있는 네 권의 역사서가 예언적인 면모를 갖는 데 영감을 던져주었다. 또 하나의 근원은 바로 앞에 있는 ‘신명기’다. 신명기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곧 모세오경의 결론적인 면모와 역사서의 서론적인 면모다. 신명기가 형성된 배경이 어떠하든 신명기와 예언자들의 관련성은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 히브리 성경에서 예언서 목록 바로 앞에 있는 신명기는 이스라엘에서 예언운동이 모세와 연관되어 있음을 무언으로 증거한다. 물론 어떤 예언자도 모세와 맺는 직접적인 연관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마찬가지로 어떤 예언자도 모세와 맺는 관련성을 직접적으로 부인하지도 않았다.

역사서의 저자는 모세 또는 신명기와 맺는 직접적인 관련성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역사서를 ‘신명기 학파의 역사서’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신명기적인 관점에서 지난 600여 년 동안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역사서가 쓰인 시대는 바빌론 유배 중(기원전 587-538년)이다. 바빌론 제국에 의해 나라가 완전히 멸망하고 이국땅에서 참담한 귀양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라고 물었다. ‘왜 우리가 이런 처지에 빠지게 되었는가? 사무엘기 하권 7장에서 다윗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셨는데, 하느님의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느님께서 거짓말을 하신 것일까? 만일 하느님께서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면, 나라가 완전히 멸망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 해답을 찾으려고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가나안 정착부터 나라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냈다.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깨트려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면 생명과 구원을 받지만,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하느님을 저버리면 멸망과 죽음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역사서 저자의 기본공식을 발견한다. ‘하느님의 계명을 성실히 실천하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저주를 받는다.’ 이런 공식은 역사서 저자가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신명기에 제시된 것이다. 신명기 11장과 30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주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축복과 생명의 길이고, 그분을 거역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가는 것이 저주와 죽음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역사서는 이런 관점에서 지난 역사를 기록했기 때문에 ‘신명기 학파의 역사서’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러므로 역사서의 저자는 개인이 아니라 단체나 학파로 보아야 한다. 이 학파의 동일한 사상적 기반은 신명기였다.

묵상 주제

모세는 신명기에서 두 가지 길을 제시했다. 나는 지금 어느 길을 가는가? [2012년 7월 8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이동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역사서 해설과 묵상 2 : 역사서가 쓰인 배경 (2)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책의 마지막에 고유한 서명을 해놓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신명기 학파 역사가의 시대와 신학을 짐작할 수 있다. 열왕기 하권 25장 27-30절을 보면 바빌론 임금이 포로로 잡혀온 유다 임금 여호야킨에게 호의를 베풀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호야킨이 귀양간지 37년째 되던 해, 기원전 561년의 일이었다. 이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한 세대 이상 바빌론에서 귀양을 살던 중이었고, 이 귀양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절망의 때였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야킨이 입은 호의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함축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를 이끌어온 하느님의 약속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으며 앞으로도 하느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현재 당하는 불행이 이스라엘 백성의 기나긴 불충실의 논리적 귀결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특히 신명기 12장에 규정된 유일한 예배장소를 예루살렘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 외에서 거행되던 모든 경신행위를 우상숭배로 단죄했다. 그리고 나라 안에서 우상숭배를 몰아낸 임금이야말로 훌륭한 임금이라고 칭찬하며, 그렇지 못했던 임금은 무능하고 악한 임금이라고 혹평한다. 이런 평가기준은 열왕기 하권에서 히즈키야와 요시아 임금, 므나쎄 임금을 판단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따라서 역사서 저자의 의도와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과 임금들의 역사를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스라엘이 멸망했는지 설명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현재 당하는 불행과 고통이 백성의 불충실와 우상숭배 때문이지만 하느님의 약속은 헛되지 않다는 것을 여호야킨이 은덕을 입는 사건을 통해 상기시키며 하느님의 충실성을 강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해서 하느님을 배반했지만 하느님은 계속해서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충실하시다는 것을 애써 부각시킨다. 역사서는 모세오경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자손과 땅에 대한 약속. 창세 17,1-8 참조)을 계속해서 충실히 실현하시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가나안 정착, 판관들을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예언자들을 통한 개입은 하느님 약속의 실현이다. 역사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충실성과는 정반대로 하느님께 배은망덕했음을 드러낸다. 이런 불충의 결과가 바빌론 유배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하느님의 은총을 입게 되리라는 희망이 신명기 학파 역사가의 결론이다. 그 결론은 열왕기 하권 25장 여호야킨의 은덕사건에 나타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을 ‘신명기 학파 역사가의 고유한 서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명기 학파의 역사가는 아주 정확하게 예언자적 관점을 견지한다. 그 관점이란 역사 안에 계속되는 ‘하느님의 심판, 그리고 은총으로 회귀’라는 관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히브리 성경이 신명기 학파의 역사서를 예언서 목록에 넣은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묵상 주제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를 통해 하느님의 충실성을 체험했음에도 하느님께 배은망덕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의 과오가 오늘날 내 삶에서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2012년 7월 15일 연중 제15주일(농민 주일) 청주주보 2면, 이중섭 마태오 신부(오송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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