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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인물: 다윗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3 조회수3,140 추천수1
[성경 속의 인물] 다윗 (1)


사무엘은 사울이 살아 있을 때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공인했다. 그런 다윗을 사울은 몇 번이나 죽이려 했다. 그때마다 다윗은 도망쳤다. 나중엔 피할 곳이 모두 차단되어 적국(敵國) ‘블레셋 족’에게 몸을 맡기기도 했다. 도피생활은 10년간 계속되었다. 인생의 황금시기를 도망병으로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시련과 번민은 다윗에게 삶의 원숙함을 안겨주었다. 하느님께만 의지하는 철저한 믿음을 선물했다. 훗날 다윗은 이해타산에 얽힌 ‘12지파’를 규합하여 통일왕국을 이룩한다.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인내와 협상력은 이때 다듬어진 것이었다.

사무엘기 상권 16장에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임금으로 선택되는 장면이 나온다. 사무엘은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족장 ‘이사이’를 방문한다. 그리고 막내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다.’ 당시 다윗은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1사무 16,13)

유다인들은 특별한 신분의 사람에겐 기름을 부어 성별(聖別)했다. 하느님의 힘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오늘날도 이 전통은 교회 안에 남아있다. 세례와 견진 그리고 신품과 병자성사 때 받는 ‘기름 바르는 의식’이다. 원래의 취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전쟁에 나가는 군인이나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간혹 기름을 부었다. 때로는 ‘기름부음’의 대상이 물체인 경우도 있었다. 제사 드리는 제단이나 제기(祭器) 혹은 싸움터의 무기나 옷가지에도 기름을 부었다. 오늘날에도 성당과 제단에는 기름을 바르는 예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구약시대에 ‘기름부음’을 받았던 전형적인 세 직분은 다음과 같다. 대제사장과 예언자와 임금이다. 대제사장은 사제단의 으뜸으로 1년에 1번 지성소에 홀로 들어가 백성들을 위한 ‘속죄제’를 바쳐야했다. 그러한 봉사를 위해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대제사장직은 세습되었고 종신직이었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받아’ 전달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성들 앞에서 공적으로 인정을 받아야 했다. 그 의식이 ‘기름부음’을 받은 예절이었다. 임금 역시 하느님의 사람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야 왕으로 공인되었다. 이렇듯 세 직분은 ‘백성을 위한 봉사’가 목적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평신도의 세 가지 직분을 ‘사제직, 예언직, 왕직’이라 했다. 기름부음을 받았던 구약의 세 직분을 오늘에 되살린 것이다. [2008년 12월 28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 2009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성경 속의 인물] 다윗 (2)


다윗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죽음의 위협이 늘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를 견디게 했던 것은 믿음이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였다. 사무엘은 기름을 부어 왕으로 공인하면서 임금이 될 것을 예언했다. 절망 속에서도 다윗은 이 말을 기억하며 인내했던 것이다.

다윗은 자기를 없애려 했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참는다. 사울 역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선택하신 자’를 사람이 제거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의 믿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다윗은 자신의 측근과 함께 ‘엔 게디’ 산에 숨어 있었다. 정보를 입수한 사울은 군사를 이끌고 직접 토벌하러 갔다. 그런데 뒤가 마려워 어떤 동굴로 가서 뒤를 봤다. 그런데 그 동굴 깊숙한 곳에 다윗의 일행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절호의 기회였다. 다윗의 부하들은 죽이자고 했지만 다윗은 꾸짖는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분이 아니시냐?” 하며 제지했던 것이다.(1사무 24,1-8)

다윗이란 이름은 구약성경에 800번 이상 등장한다. 그만큼 유다인들의 심층 깊숙이 뿌리내린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임금이며, 38년간 다스렸다.(B.C 1000-962) 인간적 계보로도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유대교는 물론이고 그리스도교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이 성경의 무대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사울이 ‘전투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에 사무엘의 질책을 듣는 장면이다. 사무엘은 왕위가 다른 사람에게 건너갔음을 예언한다.(1사무 15,23) 그리고 예언의 실현을 위해 그는 족장 ‘이사이’를 찾아가고 그의 막내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1사무 16,13)

두 번째는 말년의 사울이 불안과 우울증에 빠졌을 때 그를 위한 궁중악사로 발탁되었다는 기록이다.(1사무 16,16-23) 다윗은 비파를 연주하며 사울을 위로했고 그의 총애를 받는다. 세 번째는 ‘필리스티아’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면서 등장하는 이야기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내용이다.(1사무 17장)

이것은 서로 다른 ‘세 가지 기록’이 전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다윗이 유명했다는 이야기다. 훗날 그는 12지파를 규합하여 통일왕국을 이룬다. 당시 지파들은 철저하게 독립되어 있었고 제사마저 따로 지냈다. 그런데 다윗이 예루살렘 중심으로 일치시킨 것이다. 당연히 그에 대한 기록은 넘쳐났고 사실이 아닌 것도 많았다. 바빌론 유배 이후 구약성경의 틀이 만들어지면서 오늘날의 세 가지 전승만 남게 된 것이다. [2009년 1월 11일 주님 세례 축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성경 속의 인물] 다윗 (3)


말년의 다윗에겐 파탄이 많았다. 가장 혹독했던 것이 ‘압살롬의 반란’이다. 그는 다윗이 총애하던 셋째 아들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나탄’은 이 사건을 예언한 적이 있다. 다윗이 ‘밧 세바’라는 여인에게 빠져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게 했을 때였다.

예언자 나탄은 다윗의 잘못을 지적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이다.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2사무 12,10) 다윗은 뉘우치며 ‘하느님께 죄를 지었음’을 고백했지만 왕자들의 암투는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사건의 출발은 첫 아들 ‘암논’의 어이없는 욕망이었다. 그는 이복 여동생 ‘타마르’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간계를 꾸며 그녀를 겁탈했다. 그리고는 적당히 얼버무리러했다. 하지만 타마르에겐 씻을 수없는 상처였다. 다윗은 화를 냈지만 제재를 가하진 않았다. 그런데 타마르의 친오빠 ‘압살롬’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기회를 엿보던 압살롬은 2년 뒤 결국 형 ‘암논’을 살해한다. 무서운 집념이었다. 다윗은 진노했고 압살롬은 외국으로 도망가 3년을 숨어 지냈다. 이후 아버지의 용서로 돌아오지만 결국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2사무 19,1) 다윗은 슬피 울었다. 자식을 잃은 아픔이었다. 예언은 무섭게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윗에겐 아내가 많았다. 인접국가의 공주도 있었다. 모두가 정략결혼이었다. 왕이 된 뒤 그는 북쪽 지파들과 내전을 벌여야했다. 그들은 사울의 아들을 왕으로 내세우며 저항했던 것이다.(2사무 2장) 진압에 성공한 다윗은 서서히 ‘사울의 후손’들을 숙청해 나갔다. 그리고는 북쪽지파의 견제를 위해 강력한 족장들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던 것이다.

이후 그의 자녀는 19남 1녀가 되었다.(1역대 3,1-9) 첫 아들 ‘암논’은 ‘이즈르엘’ 족장의 딸이 낳았다. 이즈르엘은 ‘북쪽의 상업도시’였다. 그곳 여자와 혼인한 것은 북쪽 세력권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둘째 ‘다니엘’의 어머니는 ‘카르멜’ 사람이었고 셋째 아들 압살롬의 어머니는 ‘그수르’ 왕국의 공주였다. ‘그수르’는 갈릴래아 북쪽의 작은 왕국으로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완충지대에 있었다. 다윗은 이 왕국과 인연을 맺음으로 북쪽 지파들을 견제하며 정보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들은 그가 죽은 뒤에 모두 살해된다. 왕위를 둘러싼 ‘왕자의 난’에서 솔로몬이 승리하자 어쩔 수 없이 제거된 것이다. ‘나탄의 예언’을 가져왔던 ‘밧 세바’는 다윗 사이에서 4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중의 하나가 ‘솔로몬’이었던 것이다. [2009년 1월 18일 연중 제2주간(일치 주간)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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