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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마태오 복음11: 비유를 통해 암시하는 예수님(마태 21,33-46)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3-24 조회수4,710 추천수1
[도란도란 성경이야기] 마태오 복음 (11)


마태오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들 - 비유를 통해 자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구원 역사의 핵심을 이룰 것임을 암시하는 예수님(마태 21,33-46)

복음서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비유를 사용하는 목적은 보통 교육을 위한 것입니다. 유다의 랍비들도 비유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교육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나아가서 선포를 위한 방법으로도 사용하십니다. 즉 예수님에게 비유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비유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을까요? 인간의 지성으로는 하느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므로 하느님의 나라도 명확하고 확실하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담고 있는 예수님의 비유는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3,9.43)라는 말씀이 암시하듯이, 믿는 사람들만이 그 안에 숨어 있는 가르침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믿음을 품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비유를 알아듣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비유란 수수께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유가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는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21,33-46)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부서지고, 그 돌에 맞는 자는 누구나 으스러질 것이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는 그 안에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이나 세부적인 요소들이 제각기 중요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각각의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해야 전체적인 뜻을 잘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포도밭의 노래’(이사5,1-7 참조)에서 착안한 이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는 하느님 구원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먼저 등장인물과 세부적 요소들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밭 임자’는 하느님이고 ‘포도밭’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을 나타냅니다. ‘소작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잘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계속 파견된 ‘종들’은 예언자들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들인데 종교 지도자들에게 배척당하고 살해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밭 임자가 마지막으로 보낸 ‘상속자’, 곧 ‘내 아들’로 표현된 이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다른 소작인들’은 교회를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돌’ 역시 예수님을 나타냅니다.

이런 의미들을 토대로 이 비유를 설명해보면 이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당신 뜻에 맞게 잘 돌보고 이끌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욕심에 따라 백성을 가르치고 이끎으로써 이 백성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파견하시어 당신 뜻대로 돌아오기를 권고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보내셨지만 그들은 예수님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뜻에서 멀어진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에게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특권을 빼앗아 새로운 하느님 백성, 즉 그리스도 공동체인 교회에 그 특권을 돌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구원 계획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실 것이며 하느님의 원수들을 쳐부수는 심판자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이 비유의 내용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이 비유 안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소개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책임감이 없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서 하느님 나라를 빼앗아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제부터 하느님 나라는 이 거룩한 새 민족, 즉 교회에 맡겨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의 욕심대로 살아감으로써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진 이스라엘을 교훈 삼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참고문헌 : 성서못자리 그룹공부교재 「마태오 복음」, 2010, 기쁜소식, 269-290쪽.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4월호, 사목국 성서사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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