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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열왕기 상권: 큰 평화가 꽃피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4 조회수3,761 추천수1
[구약의 세계 - 말씀과 함께 걷는다] 열왕기 상권 - 큰 평화가 꽃피게


눈부신 태양이 떠오릅니다. 희망에 찬 새해 첫날에 선포되는 사제의 축복을 듣습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세상 곳곳에 평화의 외침이 울려 퍼집니다. 참으로 간절히 염원하는 기도가 세세 대대에 이어집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은 평화와 번영의 왕국을 이루는 솔로몬을 향해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그의 시대에 정의가, 큰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시편 72,7).

2,12솔로몬이 자기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자, 그의 왕권이 튼튼해졌다.

열왕기는 무기력해진 다윗 임금의 왕좌를 계승하기 위해 벌어지는 극적 암투와 갈등의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열왕기 상권 1장은 누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게 될 것인가(1,20.27 참조)라는 핵심 질문을 제기한 뒤에 곧바로 중요한 대답을 제시합니다. “솔로몬 임금 만세!”(1열왕 1,34.39) 솔로몬의 즉위는 새롭고 상서로운 출발을 의미하며, 평화와 번영의 시기가 시작됨을 가리킵니다. 솔로몬은 다윗 임금이 불의하게 아내로 삼은 아름다운 밧 세바를 열렬히 사랑해서 태어난 아들입니다(2사무 11-12장 참조).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평화, 안녕, 번영’을 뜻하며, 두 번째 이름 ‘여디드야’는 ‘주님(야훼)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2사무 12,25 참조).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은 분명 지혜를 상징하는 최고의 표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동방 모든 이의 지혜와 이집트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났다”(1열왕 5,10)고 합니다. “그는 잠언을 삼천 개나 지었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나 되었다”(1열왕 5,12)고 칭송받습니다. 온갖 초목과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전해집니다(1열왕 5,13 참조).

솔로몬이 아버지의 왕좌를 물려받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다윗이 다른 아내 하낏에게서 얻은 아들 아도니야가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임금의 자리를 차지하고 난 뒤, 솔로몬은 나라의 우두머리로서 내외 정치, 종교와 관련하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통일 왕국에 행정 조직을 갖춘 임금도 그였고, 활발한 국제 정치를 개시한 임금도 그였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아시아, 아랍, 그리고 거대한 경제 규모를 지닌 페니키아 가운데에서도 티로의 히람 임금이 갖춘 효과적인 무역 관계망에 의존하여 국제 정치를 펼쳤습니다. 솔로몬의 국제 무역 사업에 힘입어 기술 지원이 강했기 때문에 그는 대규모 사업, 곧 7년에 걸쳐 완공된 예루살렘 성전과 13년이 걸려 완성된 궁전 건축 사업을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페니키아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아카바-엘랏(Aqaba-Eilat) 만에 해당하는 에돔 땅의 갈대 바닷가 에츠욘-게베르에 상선대를 만들어 오피르에 가서 금을 실어오기도 하였습니다(1열왕 9,26-28 참조). 이 일은 이스라엘이 물자 저장과 수비를 위한 성읍을 여러 곳에 두어 영토를 확장했음을 보여 줍니다. 다만 북쪽의 영토 경계선만 갈릴래아 땅의 성읍 스무 개를 인접한 페니키아 티로의 히람 임금에게 양보한 뒤 다시 확정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페니키아 사람들의 건축 자재, 곧 목재와 기술력이 필요했으므로 일부 영토를 양보하여 티로의 임금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솔로몬 임금의 위대함은 다음과 같이 칭송되기도 합니다. “솔로몬에게는 왕족 출신 아내가 칠백 명, 후궁이 삼백 명이나 있었다”(1열왕 11,3). 성경이 조금 부풀려 말하지만, 이는 솔로몬 임금이 정치와 외교와 경제면에서 수완과 역량이 뛰어났음을 확인해 주는 말입니다. 솔로몬 시대를 가리켜 ‘평화의 왕국’ 시대라고 합니다. 이렇듯 모든 영광에 둘러싸인 솔로몬의 모습이 하느님의 성실한 종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 앞에서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요?

10,4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모든 지혜를 지켜보고 그가 지은 집을 보았다.

당시 솔로몬은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의 대사가 자리한 예루살렘에는 국가 간의 방문으로 높은 직위에 있는 외국 인물들이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현재 예멘 공화국에 해당하는 스바의 국가 원수(여왕)가 예방한 일은 커다란 감동을 일으키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자주 인용되는(욥 1,15; 6,19 참조) 스바인들은 금이나 보석 등의 무역업에 종사하는 민족으로, 그들의 수도인 마렙에서 발견된 비문을 통해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스바 여왕이 자기 신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자 군중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습니다. “여왕은 많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향료와 엄청나게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왔다”(1열왕 10,2).

그리스도교 예술사는 이 엄청난 행렬에 순순히 압도당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은 피에트로 델라 프란체스카(Pietro della Francesca)가 1452년과 1459년에 아레조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그린 벽화입니다. 화가는 아담의 죽음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이르기까지 ‘성 십자가 이야기’에 대해 프레스코 연작을 그렸습니다.
 
[성서와함께, 2012년 1월호, 김연희 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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