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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마태오 복음8: 위선자들에게 불행을 선언(마태 23)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02 조회수5,072 추천수1
[도란도란 성경이야기] 마태오 복음 (8)


마태오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들 - 위선자들에게 불행을 선언하고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예언자, 예수님(마태 23)

복음서 곳곳에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며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도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단죄하고 꾸짖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율법에 대한 그들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유다교에서 하느님의 뜻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곳은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생각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당신 백성에게 바른 길을 알려주시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처럼 유다교의 경건한 이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죄인으로 여겼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외면하는 행위이며 스스로 하느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행위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이 경건한 이들은 율법을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규칙에만 집착하다 보니 사람들을 질식시키는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율법의 참된 정신이나 본래 의미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은, 죄인이 다시 하느님과 친교를 맺고 의인들과 친교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율법에 따라 회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지키고 따르려는 노력과 회개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한 인간의 죄나 잘못이 그를 멀리할 이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교의 지도자들이 멀리하던 죄인들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처신이 죄인들과 소외받던 이들에게는 아주 새로운 희망의 기틀이 되어 주었지만, 유다교의 지도자들에게는 종래의 신앙과 기존 질서를 해체시켜 버리는 일로 보였던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기 위해 자신들의 공로에 의지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하느님의 은총을 거저 받는 선물로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자신들이 기대해 온 바와는 너무나도 다른 하느님의 메시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서 23장에서는 이처럼 완고한 유다교 지도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꾸짖음과 불행 선언이 나타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마태 23,1-7).”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마음의 태도를 고발하십니다. 이 대목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신앙생활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리와 신학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고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거짓된 행위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허영으로 가득 찬 종교 지도자들은 빨리 위선을 벗어 버리고 누구보다 자신을 낮추는 봉사자로서의 모습을 갖추어야 합니다.

“…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 23,8-12).”

뒤이어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인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의 거짓 의로움, 즉 위선에 대하여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은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마태23,23).”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겉보기에, 또는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하느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자선, 기도, 단식 등과 같은 열정적인 신앙행위도 자신들의 공적을 드러내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행했기 때문에 비뚤어진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 종교 지도자였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율법을 인간의 인습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이로써 사람들을 하느님께 순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에게 예속시켜 하느님의 권위를 빼앗는 꼴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올바른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주고 회개를 촉구하던 예언자의 모습처럼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시며 하느님의 뜻을 알려주고 깨닫게 하십니다.

이 복음 말씀을 들은 우리들도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나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입니까? 아니면 내 욕심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합리화시키며 살아가는 신앙인입니까? 바쁜 일상생활 중에 신앙생활은 이정도만 하면 된다고 내 맘대로 판단하고 하느님의 뜻을 왜곡시키지는 않았습니까? 매사에 내 욕심을 자제하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 참고문헌 : 성서못자리 그룹공부교재 「마태오 복음」, 2010, 기쁜소식, 199-222쪽.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1월호, 사목국 성서사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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