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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역대기계 역사서: 에즈라와 느헤미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1 조회수3,866 추천수1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역대기계 역사서 (2-3) : 에즈라와 느헤미야 (1-2)

 

 

이스라엘이 바라던 주님 나라 실체는 공동체원 모두가 가치를 인정받는 것

 

선물을 받았다. 화장품이었다. 주는 건 무조건 받고 본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번엔 좀 낭패감이 앞섰다. 또 얼굴에 버짐 폈나? 방문자들이 돌아간 후 급히 거울을 보았다. …폈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것은 선물을 쌌던 포장지. 상품명이 ‘나 이니스프리로 돌아가리라’고 노래하던 예이츠의 시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요즘 화장품은 제목도 꽤 시적이군… 만감이 엇갈렸지만 종합적으로는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나를 누군가가 챙겨주는 곳, 그 곳이 곧 예이츠가 말하는 이니스프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 살펴볼 에즈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협공으로 어떻게 해서 하느님의 공동체를 훌륭히 구성해나가는지 그 역동성을 보여준다. 서로의 소통과 이해를 통해 공동체원 모두가 소중한 가치를 인정받는 곳, 그곳이 바로 이스라엘의 귀환 공동체가 이룩하고자 했던 진정한 하느님 나라의 실체였던 것이다.

 

 

개관

 

히브리 경전 목록에서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한권의 책으로 묶여 있었다.

 

원 이름은 ‘에즈라’로서, 각기 다른 책이었으나 최종 편집자에 의해 한권의 책으로 엮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1) 사건 당시에 기록된 여러 자료들, 2)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회고록, 3) 에즈라 1~6장의 덧붙임 등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이를 통해 편집자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사제 에즈라와 평신도 느헤미야의 공동 노력과 그를 통한 하느님 공동체 형성이었다.

 

실제적으로는 느헤미야(아르닥사싸 1세, 기원전 465~423년)는 에즈라(아르닥사싸 2세, 405~358년)보다 먼저 활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에즈라가 경전에 먼저 배치된 이유는 아마도 종교적 입장이 강조된 결과인 듯하다.

 

즉 역사적으로 실제 사회 개혁의 주도적 역할은 느헤미야의 몫이었지만, 그 뒤에 에즈라가 이를 종교적으로 정리하지 않았을까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개혁의 정도를 볼 때 에즈라가 전반적인 면을, 느헤미야가 특정한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에즈라의 개혁이 선행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것이 이러한 입장이다. 이 입장에 의하면 에즈라는 느헤미야보다 먼저 귀환했고 개혁도 먼저 단행되었다고 본다.

 

 

역대기 상하와의 관계

 

1932년 레오폴드 춘쯔(Leopold Zunz)이후, 역대기 상하는 역대기계 역사서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였고, 오늘날 학자들은 이 책들(역대기-에즈라-느헤미야)이 ‘역대기계 역사학자’라고 불리는 동일 저자(혹은 저자 그룹)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서로 다른 저자의 작품임을 주장하는 논의도 존재하고 있다.

 

 

저작 시기

 

에즈라 1~6장은 헬레니즘 시대 초기(기원전 30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최종적인 형태로 완성된 것도 이때쯤으로 여겨짐). 그런데 히브리 성경에 배치된 대로, 에즈라서의 형성이 느헤미야서에 앞서는 것으로 보여 지고, 또한 느헤미야에 관련된 마지막 날짜는 기원전 430~424년 사이가 되므로, 결론적으로 이 두 책은 기원전 400년~300년대에, 가장 중요한 두 번의 편집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숙제를 푸는 과정

 

위령성월이라서 그런가. 요즘은 왠지 ‘인생은 40부터’ 라는 말이 자주 떠오른다. 어릴 때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던, 그저 나이든 분들 스스로가 무료하고 힘없는 현실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왠지 서글프고 맥 빠지는 담론 정도로만 생각되던 그 말….

 

그런데, 역사서 원고를 준비하고 대학원의 지혜문학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 말의 의미를 나도 이제는 조금씩 깨닫게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를 풀어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인생의 본질이라면, 그 숙제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파악하게 되는 때가 40이라는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 이전에는 자기 숙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 시간들일 수도 있다는 것….

 

이제 살펴보게 될 역대기계 역사서에 대한 내용들이 자기 인생의 역사를 하느님 안에서 풀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가톨릭신문, 2005년 11월 20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패배에 대한 두려움 떨쳐버리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폭풍우로 집이 날아가니 전망이 좋아졌다.’ 오래전 본 ‘쉬핑뉴스’라는 영화의 마지막 자막에 올랐던 구절이다. 긴 고난과 폭풍의 여정 속에, 주인공 가족이 연연해하던 낡은 가옥이 날아가 버리자, 오히려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광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인간은 부여잡고 있는 것을 결국 놓치고야 말았을 때, 어쩌면 그렇게 가장 비극적인 처지에 놓였을 때에, 표현할 수 없는 담담함과 의외의 평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놓칠까봐 연연하는 마음이 사실은 우리를 시달리게 하는 지옥이며, 공포의 원상이기 때문이다.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성전’(temple)이라는 특별한 ‘집’의 붕괴와 그와 함께 무너진 이스라엘의 자의식을, 그리고 그 무너짐 속에 새롭게 시작되는 이스라엘을 전해 준다. 사실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새 이스라엘을 꿈꾸며 개혁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독한 패배를 통해 모든 것이 무너졌기에 가능했던 시작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에즈라서

 

에즈라서는 부분적으로 아람어로 서술되어 있다(4, 8~6, 18; 7, 12~26). 아람어는 페르시아의 공식 언어로서 왕실의 공문들은 대부분은 아람어로 기록되어 전달되었고, 편집자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아람어 문헌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유배 이후 파급되기 시작한 아람어는 이스라엘의 언어로 정착되고 예수님도 아람어를 쓰셨다고 알려져 있다.

 

 

명칭

 

에즈라는 ‘야훼께서 도와주신다’라는 뜻의 히브리말이며, 페르시아의 사신 격으로 유다 지방에 파견된 사제 출신 율법학자의 이름이다.

 

 

구조와 내용

 

에즈라서는 모두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1~6장)는 이스라엘의 귀환과 성전 재건, 후반부(7~10장)는 에즈라의 개혁을 다루고 있다. 간추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귀환한 이스라엘은 스알디엘의 아들 즈루빠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의 지도 아래 성전재건에 착수하지만 이내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나 우여곡절 속에서 성전 건축은 재개되고, 결국 기원전 515년 성전을 봉헌하여 그곳에서 과월절 축제를 지낸다.

 

이후 아르닥사싸 임금에게 공적 임무를 부여받은 사제 에즈라가 도착하는데, 그는 혼종혼을 우선적으로 정리한다. 바빌론의 지배 아래 살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그곳의 이방인 여인들과 결혼하여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을 유다 지방에서 추방(10장)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느헤미야서의 명칭

 

느헤미야라는 이름은 ‘야훼께서는 위로이시다’라는 뜻이다. 에즈라가 종교적인 측면에서 활동했다면, 느헤미야는 정치적-사회적 측면에서 공헌한 인물이었다.

 

수사의 페르시아 궁정의 음료 담당관이었던 느헤미야는 기원전 455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라는 전권을 부여받는다. 후에 그는 유다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되고(느헤 5, 1) 귀국하여 성벽을 개축하고 여러 사회적인 개혁을 도모한다.

 

 

구조와 내용

 

느헤미야서는 모두 세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부분에서는 느헤미야가 아르닥사싸로부터 성벽을 재건하라는 허락을 받고 52일 만에 성벽을 완성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이후 그는 주민들끼리의 채무 관계를 해결(5장)해주며, 두 번째 부분에서는(8~10장) 에즈라에 의한 율법(모세오경) 선포와 초막절 축제 내용이 등장한다. 마지막부분(11~13장)에서는 예루살렘 성벽 봉헌과 느헤미야의 두 번째 사회 개혁(성전 정화, 레위인에 대한 대우, 안식일, 혼종혼 금지 등)이 제시된다.

 

 

무너짐은 끝이 아니다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개혁은 모든 것이 무너졌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무너짐이 고통이 되는 이유는 그것을 새로 시작할 절호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그저 상처로만 묶어둔 채 슬픈 마음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 내부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기 어려운 까닭은 상처를 고집스레 묶어두고 있는 스스로의 집착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빠, 뭐가 그리 두려운가요…” 앞에서 언급했던 영화에 나오는 어린 딸이, 늘 불안과 열등의식에 시달리던 아빠에게 물었던 내용이다. 혹시 무너짐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분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정식으로 물어야할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운명을 걸고 물어야할 이 질문에서 나 자신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가톨릭신문, 2005년 11월 27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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