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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전도서(코헬렛) 신학적 정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6 조회수3,958 추천수1

[김혜윤 수녀의 성서말씀나누기] 전도서 (9) : 신학적 정리

 

 

진정한 나로 사는 것 가장 중요한 삶의 과제

 

전도서는 「메길롯」이라고 불리던 축제 두루마리(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의 하나로, 주로 「장막절」 셋째날에 읽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막절은 농경 사회 안에서 모든 추수가 끝난 후에 오는 그 평온한 「종말론적 쉼」을 기념하는 축제였고, 전도서를 이 축제의 텍스트로 설정하였다는 것은, 인생이 광야의 방랑생활 같이 힘겹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모든 사건에는 종말론적 끝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이제 우리는 전도서 고찰을 마무리하면서, 이 책이 구체적으로 의도했던 신학적 메시지를 정리해보기로 한다.

 

1) 인간존재의 한계와 이에 대한 긍정

 

인간 「각자의 숙명은 피할 수 없다」. 각자의 운명과 계획은 인간보다 훨씬 더 강한 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3, 14; 5, 2; 7, 14; 9, 1).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이 세상의 모든 사물 역시 인간의 것이 아니다. 결국 궁극적 자유와 구원, 행복을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자신을 겸허하게 개방하는 것뿐이다. 이 진리를 무시하거나 방관하고 하느님의 권위에 도전할 때, 모든 노력은 「헛되고 헛된」 것이 될 뿐이다.

 

2) 모든 것은 때가 있다

 

위 1)의 관점은 내 인생(시간)의 주인 역시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명시해준다. 하느님은 시간을 창조하셨고, 시간의 절대적 주인이시므로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때」(시간)에 순명할 수밖에 없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 전체가 스스로에 의해 조정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면, 그리고 모든 이의 공통적 운명인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음을 인식한다면, 우리가 주력해야할 노력은 자명해 진다. 「현실에의 충실」만이 해결인 셈이다.

 

결국 자신의 현재에 적응하고, 그것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며(2, 24; 3, 13; 5, 19; 8, 15; 9, 7.9), 지금을 가장 좋은 때로 인식하고 살아갈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모든 미래적 계획과 과거에 대한 추억은 모두 「헛된 일」일 뿐이다.

 

3) 하느님께 대한 경외

 

인간의 한계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경외라는 신학적 주제와 연결된다(3, 14; 5, 7; 7, 18; 8, 12~13; 12, 13). 코헬렛은 인생의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던 인물이었다. 완벽한 지식을 얻으려 노력해 보았고, 부귀 영화를 얻기 위해 힘썼으며, 최고 권력의 자리까지 올랐던 사람이었다.

 

하늘아래 이루어지는 온갖 일을 살펴서 생의 궁극적 진리를 알아내려고 지혜를 짜보기도 했지만, 그가 다다른 곳은 「인간의 지혜는 한계가 있다」는 진실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다 알 수 없다」는 결론으로 수렴되고,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경외라는 신학적 주제를 완성시켰다. 결국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인식(2, 24~25; 3, 12~13. 22; 5, 18~20; 8, 15; 9, 7~9; 11, 8~9)은 그분께서 나에게 선물하신 이 생을 감사히 받고 그분이 정하신 날까지 성실히,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는 지혜를 산출시켰다. 코헬렛의 저자는 인간의 한계성이라는 부정적 요인을 통해, 오히려 강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유도하였던 것이다.

 

 

한번도 나 자신이었던 적이 없는 삶

 

인간은 모두 누구의 딸 혹은 아들로 태어나, 누구의 누나로, 혹은 엄마로, 아빠로 살아간다. 그러나 자세히 성찰해보면, 우리는 단 한번도 누구의 진정한 딸이었던 적이 없고, 누구의 완벽한 누이였던 적이 없었으며, 누구의 진실한 엄마이지 못했음을 발견하게된다. 지금 분명히 그들 옆에서 「그들의 누구」로 살아가고 있어서, 몸은 그렇게 내 신분에 길들여져 있지만, 진정한 그 혹은 그녀는 실종된 채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삶을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그런 「정체성의 균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전도서가 제시하는 메시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진정한 나를 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없던 이들, 오직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며 시간과 생명을 소진해온 불행한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내 안의 질서에서 발견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생소하고 낯선 고통이 될지라도,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선물하신 그 진정한 얼굴을 만나고, 여태껏 그 본래의 얼굴을 외면하거나 방관해온 자신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어야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삶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빗겨갈 수 없는….

 

[가톨릭신문, 2004년 8월 22일,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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