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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바오로 서간 해설27: 관례는 문화적 산물, 오늘날 적용 어려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4 조회수2,594 추천수1

[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27) 관례는 문화적 산물, 오늘날 적용 어려워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으려면 아예 머리를 밀어 버리십시오. 머리를 밀거나 깎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면 머리를 가리십시오.”(6절)

 

“사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습니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8~9절)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생각하여, 그 머리에 권한의 표지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10절)

 

이 말씀들은 한결같이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들인데, 아마도 바오로는 유다인으로서 남성우월감에 젖어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바오로는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전례에 참석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니 차라리 머리를 깎아 버리라고 하였으며, 남자가 머리에 아무것도 쓸 필요가 없는 것은 남자는 하느님의 모상이며 영광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바오로는 13, 14절에서는 두 번씩이나 수사학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바오로는 당시 코린토 교회 일부 여자 교우들의 반발을 의식해서 “누가 논쟁을 벌이고 싶어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러한 관습이 없고 하느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16절)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다만 여자가 전례 때 머리를 가리는 것은 당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지방의 유다계 그리스도교 교회의 관습이었기 때문에 코린토 교회 여자 교우들 역시 그러한 관습을 존중하라는 것이었다. 바오로는 유다인으로서는 남존여비 사상을 내세웠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남녀평등을 주창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 26~28)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코린 12, 12~13)

 

바오로는 전례 때 여자가 지녀야 할 자세를 언급하는 단락(11, 2~16)에서조차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자 교우들이 전례 때에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허용했고(5절) 아울러 남녀평등을 피력했다(11. 12절). 이렇듯 바오로는 유다인으로서는 남존여비사상을,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남녀평등 사상을 피력했던 것이다. 바오로가 활동하던 시대에 여자가 너울을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관례였다.

 

하지만 그러한 관례는 오늘날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따라서 여자가 머리를 가리고 전례에 참석하라는 바오로의 지침은 당시의 문화적 산물로서 이러한 관례를 오늘날 여자 교우들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바오로는 여자가 전례 때 머리를 가리는 것이 당시 사회의 종교적 관습과 일치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덕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바오로의 생각은 문화적. 사회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가르침이라 하겠다.

 

사실 여자들이 머리나 얼굴을 가리는 관습은 이슬람 종교 문화권에서는 아직도 중요시되고 있지만, 그리스도교 모든 종파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주님의 만찬 : 1코린 11, 17~34

 

성만찬 전승에 관한 기록들이 신약성경 여러 곳에 나타나 있으나 그 가운데서 코린토 전서 11장에 들어 있는 성만찬 전승이 가장 구체적이다. 특히 11장 25~26절의 성만찬기를 살펴보면 코린토 교회 교우들은 초창기에는 예수님의 최후만찬을 고스란히 본따서 성만찬례를 거행했음을 알 수 있다.

 

11장 17~22. 31~34절을 보면 코린토 교우들은 어느 가정집에 모여서 먼저 애찬(공동체 회식 : Agape)을 먹고 이어서 성만찬을 거행했다. 그런데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우들은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여 일찌감치 모여서는 자기네끼리 미리 먹고 마시곤 했다.

 

그러나 노예나 가난한 교우들은 온종일 일하고 저녁 늦게 빈손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저녁 늦게 왔을 때는 음식이 남아있지 않아 굶주렸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업신여김 때문에 서러웠던 것이다(11, 20~22). 사도 바오로는 이런 비행을 전해 듣고 교우들을 나무랐던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8년 8월 24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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