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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3: 성경의 탄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03 조회수2,015 추천수1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

성경의 탄생


성경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졌을까요?

누구에게나 명백한 것은 신구약 합본 성경이 한 번에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있었으니까 구약이지요. 그렇다면 어느 시대엔가는, 구약성경을 이미 가지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신약성경이 생겨났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이었습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에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좀 더 가까이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가장 먼저 작성된 부분과 가장 늦게 작성된 부분 사이에는 50년 정도까지 차이가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실타래를 풀듯이 생각을 풀어보면, 구약성경도 신약성경도 서서히 이루어졌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은 전승을 모태로 하여 형성되었습니다.


전승과 성경 - 유다교의 경우

유다교의 성경은 대략 말해서 우리의 구약성경이지요. 정확히 말하면 제2경전의 책들은 제외됩니다. 이 책들은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 말하기 어려운 긴 기간에 걸쳐 경전이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창세기의 여러 설화들과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인물들에 대한 기억들은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졌을 것입니다.

신학 용어로서 ‘전승’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렵다는 느낌이 먼저 떠오르는데, 방금 말씀드린 ‘구전’은 바로 구두전승에 속합니다. 이러한 전승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구약성경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성경이 완성되고 경전으로서 권위를 지니게 된 다음에는, 그 성경의 뜻을 풀이해 주고 삶에 적용시켜 주는 역할을 전승이 하게 됩니다. 바리사이들이 전통을 중시하고 많은 규정들을 지켰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유다교에서는 예를 들어 모세의 율법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전승들이 있었고, 이 전승들은 점차로 문서화되었습니다. 미쉬나, 토세프타, 탈무드 등은 모두 유다교 안에서 성경을 풀어주는 책들이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성경을 설명하고 삶에 적용시키는 전승들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권위에 종속됩니다. 유다교의 경우 성경 중에서도 가장 큰 권위를 갖는 것이 토라이고, 그다음으로 예언서, 성문서, 그러고는 미쉬나와 같은 전승들, 그리고 그다음에 라삐들의 해설이 따라오게 됩니다.


전승과 성경 - 그리스도교의 경우

그리스도교의 성경 역시 전승 안에서 태어났지만,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전승이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유다교의 경전을 그리스도인들도 처음부터 경전으로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성경’이라고 말씀하실 때,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가 ‘성경’이라고 말할 때 그 성경은 구약성경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유다교에서 구약성경 이후에 전승들이 생겼듯이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고유한 전승들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이 기록되고 교회에서 봉독되었고, 바야흐로 그 책들이 구약성경과 나란히 경전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성경은 유다교의 성경보다 더 많은 책들을 포함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성경이 언제나 전승 안에서 생겨났고 또 성경이 이미 모두 기록된 다음에도 교회 내의 전승들이 성경을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비추시어 그들이 신앙을 점점 더 깊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이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안에서 각각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두 이해는 분명 서로 다르지만, 큰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성경과 전승의 관계에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성경과 전승을 서로 분리시켜 ‘계시의 두 원천’이라고 일컬었습니다. 계시헌장 이래로 이제 그러한 표현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 둘이 깊이 서로 얽혀있기 때문입니다(「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10항 참조).

구약성경 이후에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는 서로 다른 전승들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그 전승에서 다시 신약성경이 형성되었습니다.

유다교의 기본 틀이 가장 큰 권위를 갖는 책들인 토라를 여러 단계에 걸쳐 설명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교의 기본 틀은 구약의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고 신약성경이 이를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전승 안에서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있지요. 어느 시대 어느 곳의 이야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노인이 말 한 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러니, 말을 얻은 것이 나쁜 일이었다고 생각했지요.

얼마 뒤에 전쟁이 나서 고을의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을 얻은 일은 좋은 일이었다고 여기게 되었지요…. 이런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노인에게 말 한 마리를 얻었다는 사건의 의미는, 어느 시점에서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느 범위까지를 고려하면서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건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해석학적 지평’의 문제를 여기에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구약성경이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안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그 구약성경이 들어있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성경’의 범위가 다릅니다.

유다교 자체 안에서도 경전의 범위는 서서히 확정된 것이지만, 1세기 말에는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구약성경에서 제2경전을 제외한 부분이 유다교의 경전으로 확정되었습니다(「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9항 참조).

그리스도교의 성경은, 가톨릭과 정교회와 개신교의 경전 목록 문제들은 잠시 덮어두고 유다교와의 차이만을 본다면, 신약과 구약이 함께 성경을 이룹니다. 그러다 보니 특히 예언서를 읽을 때에 그 전망이 달라집니다.

유다교에서 예언서들은 토라의 가르침을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적용시키고 이스라엘이 토라의 가르침에 따라 살도록 일깨우는 것으로 이해되는데(다시 말하면 모세의 권위에 종속되는데), 그리스도교에서 구약의 예언서들은 신약을 향하여 열려있는 책들이 됩니다(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종속됩니다.).

지난달에도 인용했던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구약성경 전체에 대한 이해를 바꾸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범위가 다를 뿐만 아니라, 유다교의 전승과 그리스도교의 전승도 서로 다릅니다. 사실 이 문장은 부정확한 표현입니다. 적어도 저의 설명 순서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이 다르다는 것이 더 알기 쉬우니까 그렇게 말을 풀어간 것이지, 본래는 먼저 전승이 서로 달랐고 그런 가운데에서 그리스도교의 신약성경이 형성된 것이지요.

어떻든, 새옹지마의 고사에서 말 한 마리에 대한 해석이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구약성경의 본문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서로 다른 성경과 전승 안에서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 계시가 완성되고 성취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구약 해석이 달라집니다.

같은 말을 이렇게 자꾸 반복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인데, 주의하실 부분입니다. 구약을 서로 다르게 해석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못 알아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느냐 여부에 따라 구약 해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헤로데의 궁전에 가서 유다인의 임금이 태어나신 곳이 어딘지 물었을 때 율법학자들은 미카서를 읽고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베들레헴의 아기가 예언서에 약속된 그 메시아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미카서의 예언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해석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유다교 구약 해석의 정당성 문제입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구약성경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해석 방법을 다루고, 그 끝에 유다교의 성경 해석 문제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3년 3월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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