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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유대인 이야기35: 뒤바뀐 세계 판도 - 급변하는 정세에 흔들리는 유대 민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8 조회수4,514 추천수2

[유대인 이야기] (35) 뒤바뀐 세계 판도


급변하는 정세에 흔들리는 유대 민족

 

 

유대인들의 든든한 방패막이었던 페르시아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무너진다. 알렉산더 대왕 이후 동서양은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흐름 속에서 하나로 묶이게 된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사진은 그리스 테살로니키에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

 

 

미국이 멸망했다. 중국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패권자로 우뚝섰다. 든든한 울타리였던 미국은 이제 사라졌다. 세계의 경제, 정치, 문화는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그동안 미국에 의지하던 이스라엘은 당황해 한다. 이스라엘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상상? 아니다. 기원전 300년경, 유대인들이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페르시아는 오늘날 미국과 같은 존재였다. 페르시아의 종교관용 정책 아래에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다시 세웠으며, 율법 공동체를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 많은 유대인들이 부(富)를 쌓을 수 있었으며 능력있는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중앙 정계까지 진출했다. 자연히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높았다. 유대인들은 아마도 “이대로 쭈~욱”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던 페르시아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ros the Great, BC 356~BC 323)에 의해 무너진다. 유대인들은 오늘날 미국이 멸망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그러한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 알렉산더 대왕에 대해 성경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마케도니아 사람으로, 필리포스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인들과 메디아인들의 임금 다리우스를 쳐부순 다음, 그 대신 왕위에 올랐다. 그 이전에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많은 전쟁을 치르고 요새들을 점령하고 세상의 임금들을 죽였다.”(1마카 1,1-2)

 

여기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패권 다툼에 대해 잠깐 짚어보고 넘어가자.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불과 300~400년 전, 당시 세계정세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기원전 500년경 근동의 최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한 페르시아는 세계 통일의 야망을 불태운다. 소아시아 지방(현재의 터키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한 페르시아는 곧바로 그리스 본토 침공을 시도했다. 첫 번째 침공(기원전 492년)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한 페르시아는 2년 후 다시 1만5000여 명의 대군을 동원, 그리스 공략에 나선다. 이때 페르시아는 상륙작전을 선택했다. 그 상륙지점이 유명한 ‘마라톤’이다. 페르시아는 이 전투에서 밀티아데스가 지휘하는 아테네군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한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페르시아군 전사자는 6400명에 이르렀으나 그리스군은 192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이 마라톤 전투는 전쟁사에서, 소수의 병력으로도 전술이 뛰어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최초의 전투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한 병사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약 40km를 달린 사실은 유명하다. 오늘날 마라톤 대회도 여기서 유래한다.

 

페르시아는 마라톤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정복을 단념하지 않았다. 그래서 10년 후 다시 그리스를 침공한다. 지난번 마라톤 상륙 작전 실패를 경험한 탓인지, 이번에는 육로를 통해 그리스로 진격했다. 처음은 화려했다. 스파르타군을 무찌르는 등 파죽지세로 그리스 본토의 도시들을 점령했지만 결국 살라미스 해협에서 아테네군에게 무릎을 꿇는다. 이 전쟁이 오늘날 전세계 해군사관학교 교과목에 빠지지 않는 ‘살라미스 해전’이다. 이후 페르시아는 다시는 그리스를 넘보지 못했다.

 

전쟁에서 이긴 그리스도 평온하지 못했다. 그리스 전체가 아테네 동맹과 스파르타 동맹으로 갈라지는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약 30여 년간(기원전 431~404년) 이어진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결국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의 모든 도시국가들의 급격한 쇠퇴를 가져왔다. 힘 빠진 그리스는 이후 북쪽에서 침공한 마케도니아에 의해 어이없이 무너지게 된다. 그리스 침공이라는 대업을 달성한 마케도니아 왕이 필리포스 2세이며, 그의 아들이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다.

 

알렉산더에게 그리스는 좁았다. 알렉산더는 ‘세계의 왕’을 꿈꿨고 결국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3세와 격돌하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의 4만~5만 정예 병력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는 입구인 ‘이수스’에서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의 15만 대군을 대파한 것이 기원전 333년이다. 이후 가나안 땅과 이집트가 모두 마케도니아의 지배 아래 들어갔으며, 뒤이어 메소포타미아 전역이 알렉산더 수중에 떨어졌다. 동쪽으로 패주하던 페르시아의 왕은 알렉산더 군대에 쫓기다 결국에는 부하들에게 살해당했다. 이로써 페르시아는 멸망했다.

 

유대인들에게 알렉산더 대왕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지금까지 동양과 서양은 따로따로 살았다. 하지만 알렉산더로 인해 이후 동서양은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흐름 속에서 하나로 묶이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이 오래 생존했다면 상황은 좀 더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더가 뜻밖에도 323년 6월 32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한다. 이후 알렉산더가 건설한 왕국은 네 조각, 세 조각으로 갈라진다.

 

유대인들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보호를 받다가 갑자기 중국의 통치권 안으로 흡수되는 충격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국이 다시 네 조각 세 조각으로 갈라진다. 기원전 300년경 유대인들은 국제 정세의 혼란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술잔이 흔들리면 술잔 안에 들어있는 술도 함께 흔들리기 마련이다. 흔들리는 술잔이 기원전 300년경 당시 급박하게 돌아가던 국제 정세라면, 그 안에 들어있는 술은 유대인 사회였다.

 

[가톨릭신문, 2009년 11월 8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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