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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유대인 이야기30: 유대인들, 나라를 잃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20 조회수4,619 추천수2

[유대인 이야기] (30) 유대인들, 나라를 잃다


왕국의 멸망에 민족은 절망하고 …

 

 

기원전 586년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은 이후 2500년 가까이 자신들의 나라를 갖지 못한다. 그림은 바빌론에 함락당하는 예루살렘을 묘사한 프란체스코 하예즈(1791-1882)의 1867년 작품.

 

 

구약성경 열왕기 혹은 역대기, 예언서들을 읽다보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수없이 많은 왕들의 이름 때문이다. 아하즈, 히즈키야, 므나쎄, 아몬…. 솔로몬 이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에서 잇달아 등장하는 왕들의 이름은 발음하는 것조차 어렵다. 게다가 당시 고대 근동의 역사적 사전 지식이 없으면 성경의 맥락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관련 참고 서적들도 왜 그렇게 읽기 어려운지….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그냥 성경을 덮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남 유다 왕국 몰락 및 바빌론 유배와 관련한 내용은 구약성경의 핵심 중에서도 핵심이다. 큰 틀을 중심으로 그 맥락을 잡아 보자. 왕들의 이름을 모두 외울 필요는 없다. 4~5명만 알고 있어도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우선 히즈키야 왕(2열왕 18-19장)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심장이 2개였던 왕이 아니었나 싶다. 간이 부어도 심하게 부었던 왕이다. 고양이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아시리아에 정면으로 대적, 승리를 이끌어 냈다(1열왕 19,35 2역대 32,21). 이후 아시리아는 내부 혼란 및 바빌론 등장 등 악재가 겹치면서 쇠퇴한다. 유대인들은 아시리아의 약화 이후 비로소 ‘음메~ 기죽어’에서 ‘음메~ 기살어’의 시기를 맞게 된다.

 

요시아 왕(2열왕 22-23장)이 그랬다. 대대적인 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점쟁이와 영매와 수호신들과 우상들과 온갖 혐오스러운 것들을 치워 버렸다.”(2열왕 23,24) 수많은 이방 신전을 폐쇄했으며, 우상 숭배 사제들을 추방했다. 잡신들을 위한 모든 전례들이 중단됐다. 남창들의 집들을 허물었고, 파스카 축제를 지냈다. 유다 왕국에도 오랜만에 평화가 찾아오나 싶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이집트가 다시 유다 왕국을 넘보기 시작했다. 호랑이 굴(아시리아)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왔는데, 여우(이집트)를 만난 격이다. 요시아 왕이 침공한 이집트에 맞서기 위해 전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요시아는 정치 종교적 차원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보였지만, 전투적 능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요시아는 이집트의 파라오 느코과 맞선 므기또 전투에서 사망하고 만다(2열왕 23,29). 이로써 남 유다 왕국에 모처럼 일던 희망의 불씨는 제대로 피워 보지도 못하고 한순간에 꺼지고 말았다.

 

유다 왕국을 무릎 꿇게 만든 이집트는 요시아의 아들 여호야킴을 왕으로 세운다. 이제 유다 왕국은 이집트의 속국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때 이집트로 볼 때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제 막 먹이를 사냥해서 맛있게 먹으려하고 하는 그 순간, 사자(바빌론)가 나타나서 먹이를 내놓으라고 한다. 바빌론이 아시리아를 제압하는 등 그 세력이 급부상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래저래 동네 북 신세다. 이집트에 보낼 조공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며 뻘뻘 땀 흘리던 여호야킴 왕은 이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게 조공을 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여우 이집트는 사자 바빌론의 기세에 눌려, 자기네 땅에서 꿈쩍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기저기 눈치 보기 바빴던 불쌍한 왕 여호야킴이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야킨이 임금이 됐다.

 

그런데 이 임금이 사고를 친다. 바빌론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자존심이 강했거나, 세상 물정을 몰랐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무리였다. 먼저 국가의 내실을 다지고, 국제 정세를 면밀히 살폈어야 했다. 반역의 기미를 눈치챈 바빌론은 여호야킨 왕 등극 3개월 만에 다시 예루살렘을 침공, 점령한다.

 

여호야킨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사람이 치드키야(1열왕 24,8-17,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다. 이 왕이 또다시 바빌론에 항거한다. ‘살기 위한’‘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유대인들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바빌론의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소멸시킨다. 분노한 바빌론은 “더 이상 유대인들을 봐줘선 안 되겠다”며 다시 예루살렘으로 진군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대인들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철저히 예루살렘을 파괴한다. 왕은 인질로 끌려갔으며 성전과 예루살렘은 페허가 됐다(2열왕 24,20-25,7). 기원전 586년, 400년을 이어오던 유대인들의 나라는 이렇게 무너졌다.

 

대부분 신앙인들은 성경을 읽다가 이 부분에서 가슴이 아련해진다.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됐다. 남 유다 왕국 멸망은 그동안 쌓아올린 유대인들의 모든 것이 사라짐을 의미했다. 선민의식, 하느님과의 계약, 율법, 예루살렘 성전, 땅에 대한 약속…. 무엇보다도 희망이 사라졌다. 이후 유대인들은 2500년 가까이 자신들의 나라를 갖지 못한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유다 왕국이 무너진 이 시기를 즈음해, 인류가 동시에 엄청난 영적·정신적 진보를 이뤄낸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에 인도에서는 석가모니가, 중국에서 공자가, 그리스에서는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가 활동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유대인들도 나라를 잃은 후 바빌론 유배시기를 거치면서 엄청난 영적 도약을 이뤄낸다. 유대인들의 몰락이 역설적으로 인류가 새로운 빛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중동, 중국, 인도, 그리스를 오가며 인류에게 영적·정신적 빛을 제시하고 계시하셨다. 기원전 6세기, 하느님은 참으로 바쁘셨다는 생각이 든다.

 

[가톨릭신문, 2009년 9월 20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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