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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유대인 이야기29: 순망치한(脣亡齒寒)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9 조회수4,082 추천수2

[유대인 이야기] (29) 순망치한(脣亡齒寒)


유일신 신앙, 아시리아를 막아내다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는 곧 남 유다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 유다 왕국은 그야말로 입술 없는 이 신세가 됐다. 사진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실로암 연못. 히즈키야는 포위 공격에 대비해 성 내부로 물을 끌어와 이 연못을 만들었다.

 

 

영웅들이 패권을 다투던 춘추시대 말엽(기원전 655년)의 일이다. 당시 5대 강대국 중 하나였던 진(晉)나라가 우나라 임금에게 사신을 보냈다. “괵나라를 공격하려 하니 길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해 달라.” 우나라 임금이 어전 회의를 열었다. 한 신하가 임금에게 충언한다. “길을 빌려 주면 안 됩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립니다(순망치한). 괵나라와 우나라는 입술과 이의 관계입니다. 진나라가 괵나라를 멸망시키면 그 다음에는 반드시 우리나라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우나라 임금은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진나라에게 길을 빌려 준다. 결국 진나라는 쉽게 괵나라를 정벌했으며, 돌아가는 길에 우나라까지 함께 멸망시켰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이다. 진나라가 괵나라와 우나라를 멸망시키던 그 시기, 가나안 땅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 후, 홀로 남게 된 남 유다 왕국이 바람 앞 등불의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 성벽 위에 선 히즈키야 왕은 밀려오는 아시리아 대군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죽을 각오로 싸울 작정이었다. 그 순간 히즈키야는 아버지 아하즈를 떠올려 본다. 만감이 교차했다. 아버지는 참으로 못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북 이스라엘이 함께 손잡고 아시리아에 대항하자고 했을 때, “NO”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몰락을 팔짱끼고 지켜본 사람이다. 심지어는 아시리아에 예물과 함께 사신을 보내, “저희 나라를 보호해 주십시오.”(2열왕 16,7 참조)라고 애걸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는 곧 남 유다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남 유다는 그야말로 입술 없는 이 신세가 됐다. 다급해진 아버지는 아시리아 왕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예루살렘 성안에 아시리아 신들을 위한 제단을 세우기까지 했다(2열왕 16 참조).

 

히즈키야가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은 때 쯤 유다 왕국은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영토는 줄어들었고, 경제는 붕괴됐으며, 하느님 신앙은 사라져가고, 민심은 흉흉했다. 죽어가는 왕국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개혁을 선언했다. 개혁의 골자는 두 가지다. 아시리아로부터의 독립과 유일신 하느님 신앙으로의 복귀가 그것이다. 히즈키야는 아시리아 임금에게 대항하여 그를 섬기지 않았다(2열왕 18,7). 성전을 정화하고(2역대 29,3-36), 파스카 축제를 열었으며(2역대 30장), 종교개혁을 단행했다(2역대 31장). 예루살렘에 있던 아시리아 신들을 위한 제단이 파괴됐고, 정기적으로 아시리아에 바쳐야 했던 공물 상납도 중단됐다. 아시리아의 예루살렘 포위 공격에 대비해 성 밖 기혼샘에서 성 내부로 물을 끌어들이는 지하수로(525m)도 만들었다. 이렇게 생겨난 연못이 유명한 실로암 연못이다.

 

자주국방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허물어진 성벽들을 모두 쌓고 탑들을 높였으며, 성 밖에 또 다른 성벽을 쌓았다. 그는 다윗 성 안에 있는 밀로 궁을 보수하고 표창과 작은 방패도 넉넉하게 만들었다.”(2역대 32,5)이러한 일련의 개혁은 점진적으로가 아니라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그 일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2역대 29,36) 히즈키야의 이러한 급진적 개혁은 제사장 계급에서부터 하층 민중들에 이르기까지 큰 호응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공을 거두었다.”(2역대 31,21)

 

하지만 유다 왕국의 개혁 움직임을 간과할 아시리아가 아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쳐들어왔다.”(2역대 32,1)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 사르곤 2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아시리아 왕 산헤립은 뛰어난 전략과 용병술로 고대 근동 지방을 초토화시킨다. 히즈키야가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남 유다 왕국의 수많은 성읍들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동맹을 약속한 바빌론도 이미 무너졌고, 이집트는 국경선 방어조차 힘겨워하는 상황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아시리아 대군이 이제 예루살렘으로 밀려들고 있다. 유다 왕국을 도와줄 지원군은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다. 히즈키야 왕이 백성과 군사들 앞에 서서 외친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아시리아 임금과 그가 거느린 모든 무리 앞에서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마라. 그보다 더 크신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2역대 32,7)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아시리아 병사들이 저절로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들이 모두 죽어 주검뿐이었다.”(1열왕 19,35 2역대 32,21)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집트, 바빌론도 벌벌 떨게 했던 아시리아가 유다 왕국에게 어이없는 패배를 당한다. 어떻게 된 것일까. 이와 관련해 마이클 비디스 등 의학자들은 「질병의 역사」에서 “아시리아 진영에 페스트가 유행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페스트는 고대 사회에서 가장 전염속도가 빠르고 치사율이 높았던 전염병 가운데 하나였다.

 

어쨌든 예루살렘은 살아남았다. 이사야의 예언은 정확했다. “만군의 주님이 시온 산과 그 언덕에 내려와 싸워 주리라. 둥지 위를 맴도는 새들처럼 만군의 주님이 예루살렘을 지켜 주리라. 지키고 건져 주며 감싸고 구원해 주리라.”(이사 31,4-5)

 

유다 왕국은 일단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가톨릭신문, 2009년 9월 13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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