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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다니엘: 하느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1 조회수3,541 추천수1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하느님의 이름은 영원히 찬미 받으소서

 

 

죽음 묵상에 관한 저서와 강연으로 우리 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성심회 수녀 스즈키 히데꼬는 낡은 수도원 건물 이층에서 떨어져 죽음을 체험하고 난 뒤 이런 확신을 얻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이다.” 삶에서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누구나 쉽게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 앞서 앎이 중요하다는 말은 다소 생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앎은 하느님에 관한 지식을 말한다.

 

성서를 비롯하여 유다교의 묵시문학은 하느님과 그분의 섭리에 관한 지식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유다 묵시문학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우리는 다니엘서를 꼽는다. 다니엘서는 마카베오 항쟁을 불러일으킨 안티오쿠스 4세(기원전 l75-164년)의 박해 때에 쓰여졌다.

 

그 당시 팔레스티나는 그리스인들이 다스렸고 안티오키아를 수도로 정한 셀레우코스 제국에 예속되었다. 식민지의 민족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어느 정도 허용했던 안티오쿠스 대왕과는 달리 그의 아들 안티오쿠스 4세는 유다 종교를 뿌리째 뽑으려고 작정하였다. 성서 사본들을 모두 불태우고 어린이 할례를 금지시켰으며, 이교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고 돼지고기를 먹도록 유다인에게 강요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교 신전으로 둔갑하고 제우스 신상이 그곳에 세워졌다.

 

많은 유다인이 황제의 명령에 따랐지만, 다른 많은 유다인은 저항하였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광야로 도망하여 굴속에서 지내면서 꽤 성공적인 게릴라전을 펼쳤다. 다른 이들은 잡혀서 명령을 계속해서 거부하다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처형되었다.

 

이런 박해 시절에 유다인들은 두 가지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였다. 첫째, 극심한 박해가 일어나기 전에 그들을 지배하는 이교도 통치자들, 군인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들어와 사는 이교도 주민들의 종교적 관습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둘째, 일단 박해가 일어난 다음에는 살아남으면서도 어떻게 자신들의 신앙과 유다교 전통을 지킬 수 있을까? 다니엘서 저자는 박해에도 굽히지 않고 유다교와 그 전통에 충실한 유다인들을 격려하며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안티오쿠스의 박해를 직접 겨냥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다니엘서 저자는 이야기의 상황을 400년 전 바빌론 유배 시대로 끌어올렸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다니엘과 그의 세 동료, 하나니야와 미사엘과 아자리야이다. 이 네 젊은이는 기원전 6세기 유다인들의 지배자로 군림하던 이방 임금들의 왕궁에서 현자로, 지방장관으로, 또는 다니엘의 경우 정승의 자리에까지 올라 크게 활약한다. 그들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방 임금들에게 감추어진 역사의 진행 과정을 꿈이나 환시를 통하여 그들에게 직접 알려주신 하느님의 도우심 덕분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다니엘은 바빌론 임금 느부갓네살이 꾼 꿈의 뜻을 밝혀주신 하늘의 주님께 찬미를 드린다.

 

(구약성서 새번역) 다니 2. 17 다니엘은 집으로 가서 자기의 동료 하나니야와 미사엘과 아자리야에게 사정을 알렸다. 18 또 자기와 동료들이 바빌론의 나머지 현인들과 함께 죽지 않도록 그 신비와 관련하여 하늘의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자고 하였다. 19 그러자 다니엘에게 그 신비가 밤의 환시 중에 드러났다. 다니엘은 하늘의 하느님을 찬미하며 20 이렇게 말하였다.

“지혜와 힘이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의 이름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 받으실지어다.

21 그분께서는 시간과 절기를 바꾸시는 분 임금들을 내치기도 하시고

임금들을 세우기도 하시며

현인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예지를 아는 이들에게 지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22 그분께서는 심오한 것과 감추인 것을 드러내시고

어둠 속에 있는 것을 알고 계시며

빛이 함께 머무르는 분이시다.

23 저의 조상들의 하느님

제가 당신께 감사하며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지혜와 힘을 주셨습니다.

그러고 이제 저희가 당신께 청한 것을 저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임금이 원하는 것을 저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다니엘은 유다교 신앙을 지키기가 가장 어려운 상황, 곧 이방인 궁정 안에서도 어떻게 유다교 신자로서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방인 임금의 궁정에서 시종으로 지내기 위해서는 이방식 이름을 갖게 마련이다. 히브리말로 ‘하느님은 나의 판관이시다.’라는 뜻의 다니엘은 벨트사살,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는 이’라는 뜻의 아자리야는 아벳-느고라 불렸는데, 벨과 느고는 바빌론 신들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이 이름을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이름이 뜻하는 바가 뭐 그리 문제인가?

 

그러나 유다교의 음식 규정을 따르는 문제는 어떤가?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내시장에게 채소와 물만 먹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다니 1장). 이로써 다니엘서 저자는 유다인들이 이교도들 밑에서 살게 될 때, 이교도 주인이 내주는 음식을 어떻게 거부할 것인가에 답변한다. 그런 경우 유다인들은 다니엘처럼 채식 요리를 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교도들은 좀 이상하게 여기겠지만 그 청을 들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다 종교 자체에 반대되는 명령 앞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유다교의 일상 기도(다니 6장)와 정해진 규정대로의 예배를 막는다면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교도 통치자들이 유다인들에게 우상을, 특히 신격화된 임금(안티오쿠스는 자신을 ‘에피파네스’ 곧 ‘신의 현현<顯現>’이라고 하였다.)을 섬기라고 강요하면 온 힘을 다해 저항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불 가마 속에서도 함께 계실 것이다(다니 3장). 그러나 주님의 도움이 없으면 어찌 될 것인가? 주님의 도움이 없더라도 그들은 우상을 섬겨서는 안된다(다니 3,18). 기적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하느님의 구원이 있든 없든 율법의 처음 두 계명을 결코 어길 수 없다.

 

그런데 다니엘서는 박해 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유다교의 믿음과 전통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켜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뛰어넘어 모든 시대의 인류에게 해당하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첫째, 다른 묵시문학 저자들처럼 다니엘서 저자도 하느님 위업의 우주적 규모를 강조한다. 지혜와 힘은 하느님에게 속한다(다니 2,20). 따라서 세상은 임금이나 장군 또는 금력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혜와 권능으로 다스려진다.

 

둘째, 다니엘서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결정을 요구한다. 세상은 그 주인이신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할 장소이다.

 

셋째, 결정은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잠시 후에는 하느님에게 결정권이 돌아가고, 그때 가서 사람들이 마음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결정은 순간적이지만 영원한 운명이 거기에 달린 만큼 돌이킬 수 없다. 구약성서에서 죽음 이후의 생에 대한 생각은 다니엘서에 와서야 본격화된다(다니 12,2).

 

이처럼 중요한 메시지들이 담겨있는데도 다니엘서를 비롯하여 묵시문학은 처음에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다음에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점차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신 · 구약성서 정경에 묵시문학이 차지하는 분량과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그럼에도 초대 그리스도인들과 예수님 자신의 언어에는 묵시문학적 표현과 개념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이런 묵시문학적 표현과 개념들은 후대의 신학 용어인 ‘종말론’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느님에 관한 지식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에 앞선다. 다니엘서를 포함하여 유다교의 묵시문학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의 왕국은 인간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알려준다. 우주의 창조주이시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고 사랑하려면 먼저 그분이 누구신지 또 그분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알아야 한다. 다니엘서의 저자는 급변하는 박해와 격동의 한복판에서도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느님의 왕권을 찬미하였다. “그분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이고 그분의 나라는 대대로 이어지리라”(4,31).

 

* 그 동안 성서 이야기를 다달이 써주신 정태현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경향잡지, 1999년 12월호, 정태현 갈리스도(익산 성 글라라 수도원 거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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