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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요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쳐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1 조회수3,607 추천수1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외쳐라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모두 나름대로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고유한 메시지를 선포하였지만, 그들 가운데서 요나 예언자는 여러 면에서 다른 이의 추종을 불허한다. 먼저 예언자로서 요나가 받은 소명이 매우 특이하다. 자기 백성이 아니라 그들의 원수인 이방인들에게 그것도 직접 그 수도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둘째, 예언자의 소명을 받았을 때 요나는 주저하는 정도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아예 주님에게서 도망쳐버렸다. 셋째, 우여곡절 끝에 소명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방인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는데, 뜻밖에 이방인들이 그의 말을 듣고 회개하였다. 이는 회개를 외치는 예언자들의 설교를 거부한 이스라엘인들의 완고한 태도와 대조를 이룬다. 마지막으로, 요나는 자신의 회개 설교가 성공한 것을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못마땅해 한다.

 

(구약성서 새번역) 요나 1. 1 주님의 말음이 아미때의 아들 요나에게 내렸다. 2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을 거슬러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나에게까지 치솟아 올랐다.” 3 그러나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다르싯으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요빠로 내려갔다. 마침 다르싯으로 가는 배를 만나 뱃삯을 치르고 배에 올랐다. 주님을 피하며 사람들과 함께 다르싯으로 갈 셈이었다.

 

요나는 히브리말로 비둘기라는 뜻이다. 비둘기는 가쁜 소식을 전해주고 번제물로도 사용되는 새로, 성서 저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동물 이름을 인명에 적용하는 일은 고대 근동의 문헌에서 흔하다.

 

2열왕 14,25에 보면 요나는 갓헤벨 출신 아미때의 아들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그는 즈불룬 지파에 속한다(여호 19,13 참조). 그러나 어떤 유다교 전승에서는 요나를 사렙다 과부의 되살아난 아들과 같은 인물로 보는데, 이 경우 그는 사렙다를 자기네 영토 안에 포함시킨 아셀 지파에 속하게 된다.

 

니느웨는 기원전 9-7세기에 전성기를 누리며 고대 근동을 호령하던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이다. 성서에서 니느웨는 홍수가 끝난 다음 노아의 손자 구스가 건설한 도시로 처음 소개된다(창세 10,11). 이 도시는 예언자들 사이에서 거친 폭력의 도시로 통했다. 기원전 734년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의 속주가 되었으나 722년 반기를 들었다가 패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아시리아에 포로로 끌려갔다. 요나서의 무대는 이 아시리아 유배 이전이다.

 

니느웨에 가서 그들의 죄악을 고발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요나는 겁이 나서 도망치기로 작정하였다. 아시리아 대제국의 수도에 들어가 그곳 임금과 고관들과 주민들을 거슬러 이런 고발을 하였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는 가능한 이스라엘의 신 야훼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가장 먼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 사람들은, 신들이 그들을 섬기는 백성들의 땅 안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나는 하느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지만 당시에 땅 극변의 도시로 알려진 다르싯으로 가려 했던 것이다. 그는 다르싯 행 배를 타려고 팔레스티나 북서쪽 항구 요빠로 갔다. 요빠는 5천 년의 역사를 지녔는데, 늘 히브리인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요나는 다르싯으로 가기 전에 이미 하느님의 통제에서 자유롭고자 요빠를 택한 셈이다. 때마침 다르싯으로 가는 배가 항구에서 요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르싯으로 가는 배를 곧바로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지중해의 항해는 연중 넉 달로 제한되어 있었고 그나마 폭풍우 때문에 출항이 자주 금지되었다. 더구나 장거리를 항해하는 배는 아주 드물게 있었다. 솔로몬의 다르싯 행 배들은 3년에 한 번꼴로 돌아왔다(2역대 9,21).

 

하느님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날 다르싯 행 배를 손쉽게 얻어 타고 안심하는 요나에게 그분은 다른 일을 꾸미신다. 배가 항구에서 떠나기가 바쁘게 바다에 폭풍우를 일으키신 것이다. 배가 폭풍우에 시달릴 때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역경을 극복하려고 저마다 부지런히 일하고 자기가 믿는 신에게 열심히 비는데, 다른 이들보다 신앙심이 깊어야 할 요나는 오히려 배 뒷쪽 아래에 드러누워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선장이 요나를 깨우며 말하였다. “당신은 어찌 이렇게 깊이 잠들 수 있소? 일어나서 당신 신에게 부르짖으시오. 행여나 그 신이 우리를 생각해 주어, 우리가 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소?”(요나 1,6) 선장은 요나가 섬기는 신이 다른 선원들의 신들보다 더 높고 능력있는 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선원들은 갑자기 불어닥친 이 폭풍우가 누구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 제비를 뽑아 알아보기로 하였다. 고대의 선원들은 같은 배에 범법자를 태우면 그 때문에 배에 재앙이 닥친다고 믿었던 것이다. 제비는 요나에게 떨어졌다. 이렇게 되자 요나는 그들에게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나는 바다와 물을 만드신 주 하늘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오.”(요나 1,9) 하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다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요나는 이제 자기가 그 손을 피해 달아나려는 주 하느님이 팔레스티나라는 특정한 지역에 한정되신 분이 아니라 하늘과 바다와 땅 전체를 지배하시는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인정하고 고백한다. 그러나 인정과 고백만 가지고는 고집쟁이 요나가 진정으로 하느님께 돌아섰다고 말할 수 없다. 그에게 튼튼한 믿음이 생기려면 그분이 바다와 물도 통제하시는 분이심을 몸으로 체험할 필요가 있다.

 

요나는 성난 바다에 던져져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물고기 뱃속에서 지내며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을 뼈저리게 체험하였다. 그런 다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여 용감하게 니느웨로 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구약성서 새번역) 요나 3. 1 주님의 말음이 두번째로 요나에게 내렸다.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 3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느웨로 갔다. 니느웨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 4 요나는 그 성읍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하룻길을 걸은 다음 이렇게 외쳤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무너진다!”

 

그러자 니느웨 사람들은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모두 자루옷을 걸치고 금식하며 잿더미 위에 앉아 주님께 부르짖었다. 그리고 저마다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폭력에서 손을 떼었다. 이는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진정한 회개의 모습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셨다. 이렇게 되자 요나가 몹시 화를 내며 토라졌다. 그리고는 자기가 다르싯으로 서둘러 떠나려 한 이유를 엉뚱하게 둘러댄다. “당신께서 자비롭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4,2).

 

죽을 각오를 하고 호랑이 굴에 뛰어들어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망한다.”라고 주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분이 아무런 징표도 보이지 않으시고 재앙을 거두시겠다니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도 이렇게 손쉬운 용서를 내리신 적이 별로 없었는데, 어찌하여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원수들에게는 이토록 관대하시단 말인가! 자존심이 극도로 상하고 화가 잔뜩 난 요나는 주님께 차라리 자기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청하였다. 이런 요나의 불평에 주님께서는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라고만 대꾸하셨다.

 

요나는 하느님께 한바탕 퍼부었으니 무슨 조처가 있으시겠지 하고는 니느웨 성읍 동쪽에 자리잡았다. 그곳에서 주님께서 성읍을 징벌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끼까욘이라는, 잎이 무성하고 성장 속도가 빠른 열대 식물을 요나 위에 자라나게 하시어 그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어주셨다. 요나는 그 식물을 반기며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튿날 동틀 무렵 벌레 하나를 시켜 그 식물을 갉아먹게 하셨다. 한낮이 되자 사막의 뜨거운 동풍이 불어오고 따가운 햇볕이 요나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기절할 지경이 된 요나는 또다시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주님께 하소연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요나에게 그가 씨를 뿌리지도 키우지도 않은 식물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고 따져 물으셨다. 요나가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린 이 식물을 그토록 가엾이 여기거늘 수많은 가축과 어른들은 물론 오른쪽 왼쪽 가릴 줄 모르는 철부지 어린이들만 해도 십이만 명이나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느웨를 하느님께서 어찌 가엾이 여기지 않으실 수 있겠는가!

 

요나는 국수주의적 선민의식에 빠진 이스라엘인들의 전형이다. 하느님께서는 옹졸한 그를 예언직에 부르시고 그에게 당신의 관용과 자비를 가르치려고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신다. 이를 보고 이스라엘 백성이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구원의 보편주의에 눈을 뜨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다.

 

[경향잡지, 1999년 11월호, 정태현 갈리스도(익산 성 글라라 수도원 거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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