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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엘리야: 주님, 저의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1열왕 19,1-8)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7 조회수3,162 추천수1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주님, 저의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1열왕 19,1-8)

 

 

엘리야 예언자의 이야기는 1열왕 17-19; 21; 2열왕 1-2장에 나오는데,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바알 숭배를 둘러싸고 일어난 엘리야와 이스라엘 오므리 왕조(기원전 9세기) 사이의 갈등이다. 엘리야는 특히 띠로 출신 이세벨 왕비의 조종을 받는 아합(오므리의 아들)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오므리 왕조 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안정과 평화를 이룬 이 시기에 왕실 안에서는 바알 숭배가 성행하였고, 이세벨 왕비의 주도 아래 야훼 선앙을 뿌리뽑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주님을 섬기는 수많은 예언자들이 살해되고 주님의 제단 대신 바알의 제단들이 세워졌다.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종교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이때 티스베 사람 엘리야가 나타나 아합에게 이스라엘에 몇 해 동안 가뭄이 닥치리라고 예언하였다. 아합은 엘리야가 폭풍우의 신 바알을 반대하기 때문에 가뭄이 닥치는 것이라고 오히려 엘리야를 비난한다. 그러나 엘리야는 아합 집안이 바알을 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불행에 빠졌다고 반박한다. 누구 말이 옳은가? 엘리야는 아합에게 이스라엘 온 백성과 이세벨에게서 녹을 먹고 사는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사백 명을 페니키아 근처 가르멜산에 모아달라고 요청하였다. 그 당시 가르멜산은 팔레스티나에서 유행하던 온갖 종류의 우상 숭배, 특히 바알숭배가 성행하던 곳이다. 가르멜이라는 이름 자체가 바알처럼 폭풍우의 신을 가리켰다.

 

먼저 바알의 예언자들이 황소를 잡아 장작 위에 놓았다. 그들은 온 몸에 상처를 내고 절뚝거리는 춤을 추며 바알을 불러보았지만, 제단과 제물에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엘리야 차례였다. 그는 온 백성을 가까이 부른 다음, 야곱 자손들 지파 수대로 돌을 열두 개 가져와 그 돌로 그들이 무너뜨린 주님의 제단을 고쳐 세우고 그 위에 장작을 쌓아 올렸다. 이 돌 열두 개는 모세가 세운 열두 개의 돌기둥을 상기시킨다(탈출 24,4). 비록 왕국이 남북으로 분리되었다 하더라도, 종교적 전통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을 열두 부족의 통합체로 보았다(이사 8,14; 예레 31,1.31; 에제 37,16-19 등). 제단을 다 쌓은 엘리야는 황소를 토막 내어 장작 위에 올려놓고 번제물과 장작에 마음껏 물을 붓게 하였다. 물이 제단 둘레에 흘러 넘쳐 큰 도랑을 이루었다. 엘리야가 부르짖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당신의 말씀에 따라 제가 이 모든 일을 하였음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해주십시오”(1열왕 18,36). 그러자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물에 흠뻑 젖은 제물과 장작은 물론 돌과 먼지와 도랑에 흐르던 물까지 다 삼켜버렸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고 엘리야의 지시에 따라 바알의 예언자들을 키손 시내로 끌고가 살해하였다. 그런 다음, 엘리야는 아합에게 가서 이스라엘에 가뭄이 그치고 큰 비가 내릴 것을 예고하였는데, 과연 그의 말대로 이스라엘에 큰비가 내렸다.

 

(구약성서 “새 번역”) 1 아합은 엘리야가 한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를 죽인 일을 낱낱이 이세벨에게 이야기하였다. 2 이세벨은 심부름꾼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렇게 전하였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그대의 목숨을 그들의 목숨과 한가지로 만들지 못한다면 신들이 나에게 벌을 내리고 또 내릴 것이오.” 3 엘리아는 두려운 나머지 일어나 목숨을 구하려고 그곳을 떠났다. 그는 유다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곳에 시종을 남겨두고 4 자기는 하룻길을 더 걸어 광야로 나갔다. 그는 싸리나무 아래로 들어가 앉아서 죽기를 간칭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저는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5 그리고 나서 엘리아는 싸리나무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때에 하늘의 천사가 나타나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고 말하였다. 6 엘리야가 깨어보니 뜨겁게 달군 돌에 구운 빵과 물 한 병이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그는 먹고 마신 뒤에 다시 누웠다. 7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를 흔들면서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 하고 말하였다. 8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으로 힘을 얻은 그는 마흔 낮 마흔 밤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

 

가르멜산에서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엘리야는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1열왕 17,3 참조). 이교도 출신 이세벨 왕비가 자기 휘하의 예언자들을 죽인 것에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시종을 브엘-세바에 남겨두고 자신은 광야로 나가 하느님과 대면한다. 사막은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엘리야는 지금 지쳐있고 자신의 소명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저는 조상들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1열왕 19,4). 그때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구운 빵과 물 한 병을 머리맡에 갖다놓았다. 그는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 사십 주야를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였다. 모세도 사십 주야를 이 산 위에서 지냈다. 이 ‘하느님의 산’은 이미 엘리야 시대에 순례의 장소가 되었던 것 같다. 엘리야가 이곳을 찾은 것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주님의 계시가 처음 전해진 곳에서 자기 믿음을 단련시키고자 함이었다.

 

호렙산에 이른 엘리야는 그곳의 한 동굴에 들어가 밤을 지내게 되었다. 모세 자신도 동굴에 머물렀다(탈출 33,21-23 참조).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주님께 자신의 딱한 처지를 하소연한다. “저는 주 만군의 하느님을 위하여 큰 열정으로 일해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당신의 계약을 저버리고 당신의 제단들을 헐었을 뿐 아니라,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저 혼자 남았는데, 그들이 제 목숨마저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1열왕 19,10). 그러자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동굴에서 나와 산 위에 서라고 하셨다. 때마침 강풍이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고 지나갔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다.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일어났다. 주님께서는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간 뒤에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불속에도 주님은 계시지 않았다. 그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주님께서 그 작은 침묵의 소리 가운데 계셨다.

 

이제껏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주님께 대한 큰 열정으로 숨가쁘게 살아온 엘리야에게 이런 침묵의 소리는 생소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폭풍과 지진과 불처럼 강한 자연 현상 속에서만 나타나시는 것은 아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은 하느님 편에서 볼 때 파괴적인 행동을 알리는 것이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는 주님의 창조적인 구원 행위와 연관된다. 주님께서는 폭풍우만을 관장하는 바알과 달리, 가장 작고 연약한 바람을 이용해서도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 엘리야는 이 침묵의 소리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알아보고 겉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섰다. 어떤 피조물도 하느님을 직접 뵈올 수 없기 때문이다. 모세도 주님 앞에서 얼굴을 가려야 했다(탈출 33,20-23).

 

주님께서 그 작은 소리 가운데에서 엘리야에게 다시 물으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도 같은 대답을 주님께 드렸다. 엘리야는 고독과 침묵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신분과 소명을 다시 확인한다. 주님께서는 지치고 절망한 그의 영혼을 폭풍과 지진과 불로 몰아붙이지 않으시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달래시듯 그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주님께서는 엘리야의 하소연을 들으시고 오므리 왕조에 맞서 대적할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신다. 사밧의 아들 엘리사, 아람의 임금이 된 하자엘, 님시의 아들 예후가 그의 뒤를 따를 것이다.

 

구약의 예언자들 가운데 가장 선이 굵은 인물 둘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모세와 엘리야를 꼽겠다. 위에서 살펴본 대로 두 예언자에 대한 구약의 기록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변모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나타난다(마르 9,2-8). 묵시 11,3-6에 보면 이름 모를 ‘두 증인’이 나타나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예언을 한다는 내용이 있다. 묵시록 연구가들에 따르면 이 표현에서 묵시록 저자가 염두에 둔 인물은 종말에 나타날 모세와 예언자이다. 묵시문학에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인자나 메시아는 모세와 엘리야를 동반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신약성서 저자들은 엘리야를 예수님과 곧잘 비교하는데, 정작 예수님은 그를 세례자 요한과 비교하신다.

 

열왕기의 엘리야 이야기는 소명을 받은 사람이 지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어떻게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 소명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잘 가르쳐준다. 유다교 전승에서 엘리야는 억압받는 자들의 주보성인이다(마르 15,35).

 

[경향잡지, 1998년 10월호,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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