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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민수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5 조회수3,789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구약] 민수기

 

 

광야생활

 

사제계 문헌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시나이에서 약 일년을 보냈으며 그 후 백성들은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출애 19,1; 민수 10,11). 여행길은 시나이에서 카데스로 향했다. 여기서부터 파견된 척후병들이 돌아와서 가나안 사람들은 사람을 잡아 먹는 거인이라고 보고하자 이로 인해 반역이 일어났으며, 이스라엘은 돌아서 남쪽으로 즉 홍해로 가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불복했다(민수 13-14장; 신명 1,l9-46). 그 대신에 그들은 북쪽으로 곧바로 올라갔으며 또 스스로의 결단으로 감히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 시도에서 그들은 완전히 패했다(민수 14,39-41; 신명 1,19-46). 그 후 설화에는 거대한 공간이 생기게 되어, 민수기 20장 1절에서 이스라엘은 40년 후에야 카데스로 돌아오게 된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벌로써 38년 간을 광야에서 머문 셈인데, 이 기간 동안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한 전 세대는 죽어야 했다(민수 l4,33-34; 신명 2,14).

 

구약 성서 전체, 특히 모세 오경에 있어서 광야 시기는 긍정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부정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하느님과 그 백성이 친밀했던 시기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지독한 반역의 시기였다는 것이다.

 

 

친밀했던 시기

 

구약 성서의 여러 곳에서 광야 시기를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서로 친밀했던 시기로 회상하고 있다. 이 친밀함의 시기는 특별히 북부 전승에서 더욱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호세아는 광야를, 이스라엘이 바알신 숭배로 말미암아 간음을 범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결혼 관계를 재건하기 위하여 그들이 되돌아가야만 하는 ‘황금의 시대’로 묘사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꾀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마음에 대고 속삭이면”, 이스라엘은 “그의 젊은 시절에 그리고 에집트 땅에서 나오던 때와 같이” 성실하게 응답할 기회를 가지게 되리라(호세 2,16-l7)고 한다.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도 광야 시절을 친밀함의 시기로 회고하고 있다. ‘씨 뿌리지 못하는 땅 사막에서 나를 따르던 시절, 젊은 날의 네 순정, 약혼 시절의 네 사랑은 잊을 수 없구나. 이스라엘은 나에게 깨끗이 몸바쳤었지”(2,2-3). 이같이 광야에서의 생활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가 가장 순수했던 시절이었으며, 둘 사이의 첫사랑의 시기였다.

 

 

반역의 시기

 

어렵고 힘든 광야 여행 동안 백성들이 했던 불평들 중에는 합당한 것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 15장 24절과 17장 3절에서 그들은 모세에게 불평했지만 그때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정말 목이 말랐던 것이다. 그런데 민수기가 보고하고 있듯이, 그들이 광야 여행을 재개하기 위해 시나이산을 떠난 이후부터 불평은 근거도 없는 심각한 것들이었고 이에 대한 하느님의 반응도 심각해졌다. 이런 반역적인 불평들은 민수기 11-21장 전체에 걸쳐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11,1-6; 12,1-2; 14,2-3; 16,12-14; 20,2-13; 21,4-5). 11장 4-6절에 나타난 백성들의 불평은 그들의 음식에 단백질이 없음에 대해서이다. 그들은 만나를 풍부히 먹을 수 있었으나 에집트에서 즐겼던 다양한 음식 특히 고기를 원했던 것이다. l4장 2-3절에서의 불평의 이유는 적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이 거인이라는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백성들은 에집트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고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다(14,1-2). 16장 12-14절에서는 코라의 반역과 하느님의 처벌(20-33절)이 있었고 17장 67절에서는 백성들이 반역자들이 처형된데 대하여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했다. 21장 4-5절에서는 광야 여행 자체를 지겨워하면서 물과 음식의 부족에 대해 하느님과 모세에게 대들었다. “어쩌자고 우리를 에집트에서 데려 내왔습니까? 이 광야에서 죽일 작정입니까?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습니다. 이 거친 음식은 이제 진저리가 납니다”(21,4-5). 이렇게 하느님을 거듭 시험하고 그분께 반역한 백성들은 아무도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분은 분명히 하셨다(14,22-23).

 

이러한 불평들을 종합해 보면, 시나이에서의 황금 송아지 사건 이전에는 불평은 어떤 특수하고 정당한 필요에서 생겨난 것이었고, 그래서 하느님의 응답은 은혜로운 보호와 돌보심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하느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가 흔들리고 난 이후, 그들의 불평은 정당한 필요성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고 따라서 하느님의 응답은 분노와 심판이었다. 특히 백성들의 불평들 중에서 놀라운 것은 출애굽 구원을 그들 면에서 자주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출애굽 사건이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바랐다(출애 16,3; 17,3; 민수 11,20; 14,2; 20,4-5; 21,5). 반항하고 불충한 무리, 이것이 바로 하느님에 의해 구원된 이스라엘 백성이었던 것이다(시편 78편 참조).

 

그렇지만 그들이 비록 이루어져 있고 또한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구원을 자주 부정 할지라도, 그분은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그들을 계속 인도하신다. 그분은 당신 백성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죄에도 불구하고 계속 당신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의 성취는 백성들의 성실 여부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성실한 의지와 행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민수기의 교훈

 

오래 전에 쓰여진 구약 본문의 교훈들은 후대의 교회에 새롭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민수기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줄 그러한 일련의 극적인 심판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민수기의 가르침을 새로운 이스라엘인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시키는 데 있어서 그 지침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신약 성서이다. 신약 성서의 기자들에게 있어서 민수기는 하나의 준엄한 경고이다.

 

민수기의 내용을 후대의 신약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잘 적용시키고 있는 곳이 고린토 전서 10장 1-11절이다. 여기에서 바오로는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을 고린토 교회가 처한 상황에 아주 비슷하게 적용시키고 있다. 고린토 교회의 현재의 상황과 죄들은 민수기에서 미리 제시되어 있다. 즉 세례(1고린 1장 이하), 만나와 물(최후의 만찬; 10,14 이하), 우상 숭배(8장, 10장), 음행(5-7장), 불평(l2장 이하)과 같은 것들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그렇게 가혹히 처벌받았다면 새로운 계약의 교회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이렇게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 오래 전의 사건들이 비슷한 역사적 상황 안에서 또한 비슷한 구원의 효과를 지니고서 등장하고 있다. 과거의 사건들은 현재의 사건들에 대한 하나의 ‘경고’요 ‘교훈’이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당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되었으며 그것이 기록에 남아서 이제 세상의 종말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는 교훈이 되었습니다”(1고린 10,11).

 

히브리서도 민수기를 인용하고 있는 데, 그것은 정탐꾼의 보고로 인한 반역 사건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출애굽 사건에 참여한 세대가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인해 약속된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듯이, 그와 같은 죄는 후대의 세대들이 천국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히브 3,7-4,l3; 시편 95,7-11 참조).

 

유다서도 불경건한 자들로 말미암은 현재의 여러 위험에서 교회를 경고하기 위해 민수기의 이야기들을 이용하고 있다. “여러분의 기억을 일깨워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에집트로부터 구해냈지만 그들이 후에 믿음을 저버렸을 때에는 그들을 멸망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5절). 유다서는 그러한 불경건한 자들의 대표적인 죄들로서 음행(민수 25장)과 권위에 대한 배척(코라의 반역 : 민수 16장)과 탐욕(발람의 과오 : 민수 22,16-19.22 참조)을 들고 있다(유다 8,11).

 

민수기의 사건들이 신약 성서 시대에 유효하게 적용되었다면 그 내용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하느님의 특성과 인간의 본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계시의 빛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밝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진리와 하느님께 응답하는 인간의 능력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변하고 발전해 가는 상황 속에서도 죄와 은총과 심판이라는 반복되는 주기가 현존해 있고 또 현존할 것이다.

 

광야 시기는 구원 사건(출애굽 사건)과 약속된 땅에 들어감, 이 둘 ‘사이의 시기’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광야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즉 구원 사건) 그리고 당신의 왕국을 완성하시기 위한 재림(즉 세상의 종말과 천국이 이루어짐) ‘사이의 시기’이다. 또 달리 말하면, 광야 시기란 세례를 통한 구원과 새롭게 약속된 땅인 하늘 나라로 들어감 ‘사이의 시기’이다. 즉 그것은 하늘 나라를 향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현세의 삶과 같다. 이 ‘사이의 시기’에 하느님은 하늘 나라를 향해 우리를 이끌어 주시면서 우리의 신체적 및 영적인 궁핍함을 돌보아 주신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무리한 불평을 할 수도 있고 그분께 반역할 수도 있고 우상(재물, 권력 등)을 숭배할 수도 있으며 또 때로는 자신의 본능과 욕구에 따라 마음대로 살 수 없음을 한탄하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세례성사를 받고 구원된 것)을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민수기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교훈”과 “경고”가 된다. [경향잡지, 1993년 1월호, 박광호 베드로(대구 가톨릭 대학 교수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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