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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편지에 나타난 인간 바오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5 조회수2,328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편지에 나타난 인간 바오로

 

 

바오로의 성격

 

시대가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바오로의 정확한 사상을 알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유다계의 일반적인 특징에서 출발하여 바오로의 편지에서 그가 지닌 독특하고 예외적인 것을 찾으려 하였다. 바오로가 강한 성격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단 한 번 사도행전에서 그는 자연인으로서 바르나바와 비교되고 있다. “바르나바는 제우스 신이요, 주로 설교를 맡아서 한 바오로는 헤르메스 신이라고 불렀다”(사도 14,12). 바로 전에 바오로가 기적적인 치유를 행사했음에도 바르나바는 최고신에 비유되었는데, 이는 바르나바가 바오로보다 좀더 온화하고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헤르메스 또는 메르쿠리우스 신처럼 바오로는 비록 바르나바보다 나이도 더 많고 키도 작았지만 오히려 민첩함과 기민함을 보였다. 그의 혈관에서는 뜨거운 피가 흘렀다. 바오로의 편지에서도 그는 비록 키는 작았으나 활력이 있었음이 확인된다. “그의 편지는 무게도 있고 단호하기도 하지만 막상 대해보면 그는 약하기 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2고린 10,10 참조).

 

상상으로 그려보던 어떤 작가나 인물이 실지와는 얼마나 다른가? 텔레비전 방송이나 단순한 사진을 보며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이렇게 외친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르잖아?”

 

그렇지만 우리는 바오로의 신체적인 면을 추측해 보면서 그의 성격에 대해 적절히, 나아가 아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할 수 없는 게 아니다. 비록 그 편지의 대부분이 오래도록 내적으로 공을 들인 뒤에 쓰인 것이 아니라 이 교회 또는 저 교회에 현존하는 물음과 어려움에 응답하기 위해 쓰였다 할지라도 말이다.

 

데살로니카와 고린토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이 지역 사람들이 바오로에게 편지로 질문한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러분이 적어 보낸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1고린 7,1), “미혼 남녀에 관해서는”(1고린 7,25), “이제는 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에 관하여”(1고린 8,1), “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을 먹는 문제”(1고린 8,4), 또한 데살로니카 전서 4장 13절에 나오는 응답은 똑같은 질문이 있었음을 가정한다. “교우 여러분, 죽은 사람들에 관해서 여러분이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우리를 감동시킬 정도로 바오로의 사랑과 섬세함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난다. 또 다른 때는 그의 반응이 갑작스럽고 격렬하여 불같은 질책과 충동적인 행동을 수반한다. 마치 그의 기억에 좋거나 슬픈 운명, 즐거운 상황이나 역경이 되살아나듯 종종 그의 말에 과거가 투명하게 되살아난다.

 

그는 고린토 교회에 이렇게 썼다.

 

“여러분 가운데는 내가 여러분에게 찾아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교만해진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나는 주님의 뜻이라면 속히 여러분에게로 가서 교만해진 그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을 직접 알아보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이 더 좋겠습니까? 내가 채찍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까?”(1고린 4,18-21)

 

“나 바오로는 온유하시고 관대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나는 여러분과 대면하고 있을 때에는 유순하지만 떨어져 있을 때에는 강경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나는 물론 우리를 보고 속된 생활을 한다고 헐뜯는 자들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가질 작정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만나서는 그와 같은 강경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되었으면 합니다”(2고린 10,1-2).

 

데살로니카 교회를 떠난 지 몇 주 뒤에 그는 새로 개종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썼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었으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1데살 2,7-9).

 

그는 늘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개종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기울였고, 그들의 믿음과 충실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잠시 여러분과 떨어져 있게 되었지만 사실 몸으로만 떨어져 있고 마음으로는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만나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로 가기를 원했고 특히 나 바오로는 두 번이나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의 길을 막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주님 앞에서 우리가 누릴 희망과 기쁨이 무엇이며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승리의 월계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과연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며 기쁨입니다”(1데살 2,17-20).

 

바오로가 어떤 의도로 로마인들에게 펀지를 썼는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는 로마 교회를 세우지도 않았고, 로마에 간 적도 없었다. 로마에서 그에게 문의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펀지는 내적인 필요에서 작성되었다. 다시 말해 그는 그들에게 구원을 주는 믿음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밝히고 싶었고, 세상의 희개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싶어했으며, 동시에 자기 백성의 운명에 대한 자신의 고통을 알리고자 했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큰 슬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끊임없이 번민하고 있습니다. 나는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로마 9,2-3).

 

바로 이 로마에서,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신앙을 널리 보급하고 지중해 서쪽 지역을 향해 스스로 뛰어들고자 했던 이 로마에서(로마 15,23. 28 참조) 그는 투옥되었고 그곳에서 죽었다. 그는 마지막 감옥생활의 고독에 대해 한탄할 생각은 없었으나 그의 친구 디모테오가 찾아와 주기를 간청했고(2디모 4,9 참조), 그를 위로한 유일한 사람 루가였다고 회상한다(2디모 4,11 참조).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고 싶다고 청한다.

 

“그대는 겨울이 오기 전에 이리로 오도록 힘쓰시오”(2디모 4,21).

 

겉으로 드러난 바오로의 애매한 모습은 편지로 볼 때와는 사뭇 혼동된다. 그러나 그의 도덕성, 내면 성격은 투명하고, 강하며 단호하다. 내면의 불로 환히 밝히기를 원하는 불꽃처럼, 맹렬함으로만 끌 수 있는 유일한 불꽃처럼 그는 타오른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맹렬한 사람은 오로지 맹렬함으로만 죽을 수 있었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7년 10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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