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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드로아(트로아스)의 특별한 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3 조회수2,134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드로아의 특별한 밤

 

 

긴 연설

 

세 번째 선교여행을 하던 바오로는 고린토를 떠날 즈음 적개심을 품은 유다인들이 자신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마케도니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사도 20,13). 두 그룹으로 나뉘어 옛 드로아에 도착한 일행은 거기서 이레 동안 머물렀다. 이 도시를 처음 방문했을 때 바오로는 어느 날 밤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영상을 보았다. 그리고 두 번째 방문 때에도 그는 이런 특별한 밤을 보냈다.

 

“안식일 다음날 우리는 주의 만찬을 나누려고 한자리에 모였다. 바오로는 그 이튿날 떠나기로 되어 모인 사람들과 밤이 깊도록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모여있던 위층 방에는 등불이 많이 켜져 있었다. 그때 유디코라는 청년이 창문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바오로의 이야기가 너무 오래 계속되자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깊이 잠이 들었다가 그만 삼층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일으켜보니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바오로가 내려가서 그 청년을 부둥켜안고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마시오. 아직 살아있소.’ 하고 말하였다. 바오로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빵을 떼어 나누어 먹으면서 날이 밝도록 오래 이야기하다가 떠나갔다. 한편 사람들은 살아난 청년을 집으로 데리고 가며 한없는 위로를 받았다”(사도 20,7-12).

 

이상한 것은 드로아에 머무르는 전체 기간 중에 바오로가 오직 주의 만찬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 언급된 몇 가지 특이성 때문에 이야기는 독특한 활기를 띤다. 규모 있는 주택의 위층 방에 모여있던 작은 신자 집단을 보자. 참석자들 머리 위로 많은 등불들이 켜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창문은 공기를 순환시키고 연기가 밖으로 잘 나갈 수 있도록 활짝 열려있다. 그 창틀에는, 어디서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몇몇 젊은이들이 걸터앉아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

 

두 번에 걸쳐 루가는 바오로가 연설을 길게 하였다고 언급한다. 부연해 말한다면, 설교자는 다음날 아침에 떠나야 했고, 아마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많은 것을 말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꾸벅꾸벅 졸았다. 갑자기 바오로를 비롯한 모든 이의 눈길이 열려있는 창문 하나로 향했다. 비명이 들렸고 창턱에 비어있는 자리가 하나 보였다. 유디코라는 이름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삼층에서 그의 친구들이 얼굴을 내밀고 암흑 속에서 무언가 감지하려고 했으나 헛일이었다.

 

잠시 뒤 몇 개의 등불이 유디코의 생기없는 몸 위로 움직였다. 바오로는 자신의 긴 연설을 중단했고…, 그도 또한 아래로 내려가 죽은 이 위에 몸을 굽혔다. 그와 함께 내려온 사람들을 조용히 하게 하고 죽은 젊은이에게 생명을 되돌려주고 난 뒤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만찬을 계속했고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신자들과 담회를 했다.

 

자구적(字句的)으로 보면 죽은 이의 부활에 대해 다루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의사 루가는 기적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고, 고의로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그 사실에 부여한다. 즉 그 사건을 바오로의 출발에 대한 위로의 동기로 보게 한다. 만일 바오로가 그토록 특별한 밤 이후 곧바로 떠났다면 그를 그리워하는 감정으로 모두 따랐을 것이다. 게다가 그 전야(前夜)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운명적으로 어지러워진 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오로가 떠나고 나서 죽은 이에 대해 계속 슬피 울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디케는 건강하고 안전하게 제자리로 돌아왔고, 주위는 온통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것은 바오로 사도의 여행에 대한 큰 이야기 가운데 들어있는 인간적인 작은 구절이다.

 

세 번째 여행을 하면서 그는 에페소에 2년 동안 머물렀다(사도 19,10). “하느님께서는 바오로를 시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는데 바오로의 몸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에게 대기만 해도 병이 낫고 악령들이 쫓겨나갔다”(사도 19,11-12).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반응은 다양했다.

 

실제로 떠돌아다니는 몇몇 히브리 구마자들도 미친 사람들을 향해 “바오로가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라는 형식으로 주님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시험을 해보았다. 그러나 악한 영은 소리쳤다. “나는 예수도 알고 바오로도 잘 아는데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냐?” 그리고 귀신 들린 사람은 그들의 등에 올라타 난폭하게 그들을 때려눕혔다. 그들은 상처를 입고 알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쳐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사도 19,13-16).

 

“많은 신도들이 와서 자기들이 한 일을 숨김없이 자백하였다. 또 많은 마술쟁이들은 마술책을 모두 가지고 나와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불살라버렸다. 그것을 값으로 치면 은화로 오만 냥어치나 되었다”(사도 19,18-19).

 

마지막으로 은장이 데메드리오가 바오로를 상대로 민중폭동을 일으켰다. 볼 수 있게 만들어놓은 여신 아르데미스에 대한 숭배가 궁지에 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온 도시가 소란해졌다. 사람들은 바오로의 동행인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타르고를 붙들어가지고 떼를 지어 극장으로 몰려갔다”(사도 19,29). “그 소동이 가라앉은 뒤에 바오로는 신도들을 불러 격려한 다음 작별인사들 하고 그곳을 떠나 마케도니아로 갔다”(사도 20,1). 따라서 그는 왼편에 있는 에페소를 포기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에페소에는 들르지 않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는 할 수만 있으면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지내려고 서두르고 있었다”(사도 20,16).

 

이러한 심려는 감금생활과 구속에 대한 절망에서 나왔을까? 바오로는 그것을 드러내보였다. 밀레도스에서 그는 아시아와 자기가 소중히 여긴 일에 대한 고별연설을 했다. “그들은 모두 많이 울었으며 바오로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이었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까지 전송하였다”(사도 20,37-38).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7년 4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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