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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기쁨의 확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3 조회수2,454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신약] 기쁨의 확산

 

 

사도행전의 넓은 무대에 특이하고 갑작스럽게 에티오피아 내시의 마차가 등장한다. 마차 위의 그 대신은 구약성서를 읽고 있다.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들과 어려움이 그를 휘저어놓는다. 장면의 정점에서 대신은 세례를 받기 위해 마차에서 내려 샘으로 간다. 마침내 그는 전적으로 변화한다. 그는 더 이상의 문제도 없이 나아가 기쁨에 넘쳐 무대에서 사라진다. “내시는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기쁨에 넘쳐 제 갈 길을 갔다”(사도 8,39). 문제와 어려움 뒤에 기쁨이 이어진다.

 

‘복음’이란 말이 ‘기쁜 소식’을 뜻한다면, 선포된(설교된) 이 소식에 기쁨의 요소가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루가의 복음에서 그러한 기쁨의 요소는 특별히 부각된다. 그의 책은 성탄 밤 천사의 메시지로 시작된다.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루가 2,10). 그리고 올리브산에서 예수의 고별 뒤에 사도들의 기쁨으로 끝이 난다. “그들은 엎드려 예수께 경배하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루가 24,52). 그리스도의 과제는 지상에 기쁨을 가져오는 것이라 정의할 수도 있다.

 

루가는 사도행전을 자신의 복음의 속편으로 그 윤곽을 잡았다. 여기에서 기쁜 소식은 하늘로부터 땅 위로 옮겨졌다. 사도행전의 보고에 따르면 기쁨은 원형을 이루며 더욱더 확산되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8) 어느 곳에나 다다른다. 루가는 기쁨의 확산에 대해 그렇게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그래서 사도행전을 기쁨의 확산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가져오신 기쁜 소식이 또한 한 사람 한 사람한테도 기쁨을 가져다 주는 단계에 있다는 것은 에티오피아인에 대한 이야기에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그의 길을 오로지 기쁘게 계속 간다. 그러나 다른 묘사들도 이런 개인적 기쁨을 암시한다. 귀신들렸던 많은 사람들한테서 더러운 영들이 큰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그리고 많은 중풍병자들과 많은 절름발이들이 치유되었다. 따라서 “그 도시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였다”(사도 8,7-8).

 

투옥된 바오로가 실라와 함께 밤을 새운 필립비의 그리스 도시의 감옥에서 갑작스럽게 지진이 발생했다. 간수는 칼로 막 자살을 하려던 참이었다. 바오로의 밝은 말이 구원과 기쁨을 가져왔다. 간수는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오로와 실라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음식을 대접하며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을 온 가족과 함께 기뻐하였다”(사도 16,33-34).

 

소아시아의 한 지역인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히브리인들이 바오로의 말에 냉소를 보내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외교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들려주었다.

 

“주께서 우리에게 ‘나는 너를 이방인의 빛으로 삼았으니 너는 땅 끝까지 구원의 등불이 되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바오로의 말을 듣고 이방인들은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사도 13,47-48).

 

‘기쁜 소식’이 회개한 이들에게 준 기쁨은 이 메시지의 해설자들에게,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데 힘을 쏟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히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 주었다. 시리아 남부, 페니키아, 사마리아 전역에서 성공이 알려지자 그 지역에서는 두 배의 기쁨이 입증되었다. “그들(바오로와 바르나바)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떠나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이방인들이 개종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하여 그곳 모든 교우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사도 15,3). 기쁨의 확산에 관한 보고는 기쁨을 더욱더 널리 퍼뜨렸다.

 

한편 첫 번째 예루살렘 공의회에 대한 보고는 북부에, 즉 몇 가지 어려움들이 위협을 가하고 있던 안티오키아에 새로운 기쁨을 가져왔다. “그들(바오로와 바르나바) 일행은 길을 떠나 안티오키아로 내려가서 회중을 모아놓고 그 편지를 전해 주었다. 회중은 읽고 격려를 받았으며 또한 기뻐하였다”(사도 15,30-31).

 

따라서 루가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묘사에서 종종 기쁨을 불가결한 일로 언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말하듯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한 믿음 한 마음이었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었다”(사도 2,46). 기쁜 소식이 그 어디에든 참된 기쁨을 남기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역설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의 묘사 덕분에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기쁨이 얼마나 깊고 진정한지 연구할 단계에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매질당한 사도들은 그들의 기쁨이 커가는 것을 느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하면서 의회를 물러나왔다”(사도 5,41). 그들의 기쁨은 감옥과 다른 벌들과 공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순수하게 내적인 기쁨이었고 성령의 선물이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사도 13,52).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성령의 책, 또는 성령의 현현(顯現)에 대한 책이라고 하는 게 정당하다면, 기쁨의 책, 기쁨의 출현과 확산에 관한 책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6년 7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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