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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집회서 - 지혜의 화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322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집회서] 지혜의 화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축제나 혼인 예식 때 아름답게 보이려고 머리에 화관을 썼습니다. 이는 풀과 꽃의 향기로써 악령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집회서에 따르면 지혜의 화관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1,18 참조). 하느님을 믿고 따르고 살면 그 거룩한 삶의 향기가 세상의 모든 악과 그릇됨에서 우리를 보호할 것입니다.

 

총 51장으로 구성된 집회서는 구약성경 중에 저자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입니다. 저자는 자신을 “예루살렘 출신 엘아자르의 아들, 시라의 아들인 나 예수(벤 시라)”(50,27)라고 소개합니다. 이 책을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시라의 지혜’ 즉 ‘소피아 시락(Σοφια Σιραχ)’으로, 라틴어 성경에서는 ‘에클레시아스티쿠스(Ecclesiasticus)’ 즉 ‘모임의 책’ 또는 ‘교회의 책’으로 이름 지었습니다.

 

오랜 형성 과정을 거쳐 완성된 이 방대한 책은 기원전 190-180년경 히브리어로 쓰였으리라 추정합니다. 머리글에서 에우에르게테스 임금 통치 38년(기원전 132년)에 저자의 손자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이 책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였다고 전합니다. 유다교에서 넘겨받은 이 책은 정경성의 여부를 두고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1546년 트렌토 공의회에서 가톨릭 교회의 정경으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새로 입교한 신자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1,5 지혜의 근원은 하늘에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지혜의 길은 영원한 계명이다.

 

이 말씀은 집회서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주제입니다. 집회서는 지혜문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인 잠언, 훈계, 교훈시, 찬가와 기도 등 다양한 형식으로 꾸며진 모음집과 같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다룹니다. 24장을 중심으로 창조, 하느님의 정의, 하느님 경외, 가정 생활, 아내와 여자, 우정, 경제, 정치 활동, 전례 지침 및 여러 덕행에 관한 것입니다. 또 지혜에 대한 주제를 비롯하여 역사와 연관된 하느님의 다스림에 대한 문제를 언급합니다.

 

이 책의 전체 구조는 다양한 주제의 적용 기준에 따라 여러 형태로 구분됩니다. 집회서에서는 독특한 방식으로 지혜의 기능을 묘사합니다. 1부(4,11-19; 14,20-15,10 참조)와 2부(24장 참조)에서는 교육자의 지혜와 ‘나’를 중심으로 한 인격적 지혜가 나오고, 24장 이후에는 율법을 연구하는 스승의 인격이 지혜를 대신하는 중개자로 등장합니다(24,30.34; 38,24-39,11; 39,12-35 참조). 마지막 부분에서는 지혜가 여인으로 묘사됩니다(51,13-20).

 

 

6,35 하느님에 관한 온갖 담화를 즐겨 듣고 지혜로운 금언이 너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여라.

 

집회서의 저자 벤 시라가 말하는 현인은 율법 학자로, 토라를 연구하며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38,34-39,11 참조).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율법을 명상”(38,34)하며, 아침 일찍 일어나 자신을 만드신 주님을 찾는 일에 마음을 쏟아 기도하고(39,5 참조), 모든 조상의 지혜를 찾고 예언을 공부하는 데 몰두하며, 여러 격언의 뜻을 절절이 꿰뚫어 파악한다고 합니다. 또 금언의 숨은 뜻을 깨고 수수께끼 같은 격언을 쉽게 풀이한다고 합니다(39,2-3 참조).

 

저자는 하느님 경외와 토라를 연구하여 얻어낸 값진 보화를 현인들에게 전해 주고, 지혜를 배우려는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려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고 삶을 통해 전수되어 온 잠언과 교훈에 담긴 지혜를 뛰어 넘는 가르침을 줘야한다고 여긴 듯합니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체험과 지식을 습득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됩니다(여행의 권유 34,9-11; 만찬과 잔치에 대한 충고 31,12-32,13; 자유 의지와 책임 15,11-17; 병과 의술 38,1-15 참조). 한편으로 그는 이스라엘의 전통 가르침인 부모 공경(3,1-16 참조), 우정의 가치와 기준(6,5-17 참조), 교육 문제 및 권력자와 부자에 관한 훈계(9,12-11,9; 13장 참조), 주님의 율법에 관한 가르침뿐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도 주저하지 않습니다(41,8; 42,2 참조). 또 가난한 이들에 대한 부도덕하고 불의한 태도를 비판하며, 윤리적 생활 태도를 바탕으로 올바르게 경신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34,21-31; 35,15-20 참조).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불경한 자들의 제물을 기꺼워하지 않으시고 제사를 많이 바치더라도 죄를 용서해 주지 않으신다”(34,23).

 

 

2,18 인간의 손에 내맡기지 말고 주님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자. 정녕 그분의 위엄이 크신 것처럼 그분의 자비도 크시다.

 

2장에서는 주님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2,7-11 참조), 시련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태도(2,1-6 참조) 및 삶에 대한 본보기(2,15-18 참조)을 제시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2,18에서 ‘주님의 손’은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을 돌보고 보호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뜻합니다. 그러나 벌을 내리시는 손, 세상을 창조하시는 손으로도 묘사됩니다(이사 66,2 참조). 순종을 드러내는 이 말씀은 넓은 의미에서 지혜의 개념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헌신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시련에 대비시켜야 합니다(2,1 참조). 그럼으로써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겪은 것처럼(2사무 24,14; 1역대 21,13 참조)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고통과 시련 중에 주님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시련에 대비된 사람은 주님을 섬기는 방법을 배우고, 믿음을 정화하여 단련되며, 어려움에 맞서 이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을 바로잡고 확고히 다지며”(2,2), “길을 바로잡고 그분께 희망을”(2,6) 두어야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바로잡다’의 그리스어는 ‘유튀노(εὔθυνω)’인데, ‘똑바르게 하다, 펴다(straighten), 유지하다, 방향키를 잡다(steer)’는 뜻을 지닙니다. 마음과 길을 바로 잡으라는 뜻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을 굳게 유지’하거나 ‘키를 바로 잡으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2,11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당신을 항구히 섬기며 경외하는 사람을 자비로 돌보십니다. 저자는 주님을 믿고 경외하면 부끄러운 일을 당하거나 버림받을 일이 없다(2,10 참조)고 말합니다. 그는 확신에 차서 “주님께서는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재난의 때에 구해 주신다”(2,11)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경외하는 이유입니다.

 

저자는 하느님을 너그럽고 자비하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너그럽다’의 그리스어는 ‘오이크토스(οἰκτοϛ)’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는 ‘동정심이 있다’는 의미로 영어 compassion과 같은 뜻을 지닙니다. ‘자비’는 그리스어로 ‘엘레오스(ἐλεοϛ)’입니다. 영어 sympathy에 해당하는 말로, 연민을 지닌 동정과 자비를 뜻합니다. 엘레오스는 히브리어 헤세드로 주로 번역됩니다. 이는 사랑, 자비, 신의, 충실 등의 뜻을 지니며 상호 계약 관계에 충실한 태도와 호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어휘에서 드러나듯 주님께서는 지극한 사랑과 약속으로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을 돌보십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주님을 알며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바를 찾고 그분의 율법으로 만족하기에(2,16 참조)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향기가 우러나옵니다. 그러나 비겁한 마음과 게으른 손, 두 길을 걷는 죄인은 불행합니다(2,12 참조). 주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그분께서 벌하러 오실 때 속수무책이기 때문입니다(2,13-14 참조). 여기에서 ‘비겁하다(데이로스 δειλόϛ)’거나 ‘게으르다(파리에미 παρίημι)’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소심하다’, ‘나약하거나 소홀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분의 도움에 희망을 두지 않거나 역경에 맞서 싸울 힘을 갖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길을 걷는 죄인’은 주님의 율법을 따르는 것과 세상의 방식을 따르는 것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며 사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지혜를 찾는 이들은 기쁨에 넘치리라”(4,12). 생명의 신비로움이 파릇한 새봄의 향기와 함께 온 누리에 가득합니다. 주님께 대한 경외심이 절로 우러나오는 이 계절에 우리의 내적 아름다움을 지혜의 화관으로 꾸미고 주님을 맞이한다면, 활기차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호에서도 집회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성서와 함께, 2014년 3월호(통권 456호), 김경랑 귀임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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