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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코헬렛 - 오늘을 즐겨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191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코헬렛] 오늘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하게 만들어라.” 이 말은 피터 위어(Peter Weir)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엄스 분)이 학생들에게 한 명대사입니다. 그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젊음을 즐기라고 권합니다. ‘오늘을 즐기라’는 뜻의 라틴 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호라티우스의 시 구절 중 한 부분입니다.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오늘을 즐겨라,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오늘을 즐겨라’는 코헬렛의 중심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손수 만드신 세상을 보시고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창세 1,31 참조).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하느님께서 ‘보시고 좋아하신’ 세상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그렇다, 사람이 많은 햇수를 살게 되어도 그 모든 세월 동안 즐겨야 한다”(11,8). 코헬렛에 따르면 삶의 즐거움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5,18-19 참조)입니다. 그러나 11,8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은 “어둠의 날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입니다. 이는 기쁨에 대한 반전과 긴장을 가져오는 당부입니다. ‘명심해야 한다’는 본래 ‘자카르’로 ‘기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반전과 긴장은 11,9에서도 반복됩니다.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코헬렛의 저자는 헛되고 허무한 삶(11,10 참조)에도 기쁨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노고로 먹고 마시고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것(2,24; 3,13; 5,17-18 참조), 살아 있는 동안 즐기며 행복을 마련하는 것(3,12; 8,15 참조), 머리에 향유를 바르고 깨끗한 옷을 입고 기뻐하며 빵을 먹고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며 사랑하는 여인과 인생을 즐기는 것(9,7-9 참조) 등은 모두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삶이 즐거울 때 심판의 때를 기억하도록 촉구하여, 인생의 기쁜 순간에 언젠가는 마지막 순간이 온다는 것을 알고 의롭게 생활하라고 권고합니다. 삶의 즐거움은 ‘어둠의 날’과 ‘심판’ 사이에 놓여 있어, 어둠의 날과 심판으로 말미암아 헛되고 헛된 연기처럼 사라질 날들을 오히려 뜻깊게 지내라고 합니다.

 

 

12,2 해와 빛,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고 비 온 뒤 구름이 다시 몰려오기 전에 그분을 기억하여라.

 

11,7-10이 젊음과 즐거움을 강조한 반면, 12장은 노년을 언급하여 대조를 이룹니다. 12,1-7은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지만 인간의 말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묘사하여 시문학의 절정으로 손꼽힙니다. 이 말씀의 특징은 일련의 절망과 암울한 심상(imagery)으로 상징적 의미를 효과 있게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M. 폭스는 12,1-8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R. E. 머피). 메멘토 모리는 ‘너는 죽을 존재임을 명심하라’는 뜻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병사들이 적군의 시체와 전리품을 쌓아 놓고 축배를 들며 외친 승리의 구호였습니다. 승리의 술잔을 들고 있는 자신도 언젠가 죽을 처지가 되니 항상 죽음을 생각하자는 뜻입니다.

 

한나라의 한신(韓信)이 강을 등지고 진을 쳐서(배수진 背水陣) 병사들이 물러서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싸우게 하여 조나라의 군사를 물리쳤다는 이야기에서 보듯, 죽음은 삶을 더 생기 있게 하는 배수진 역할을 합니다. 12,1-7은 노년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며 11,8에서 언급한 어둠의 날들에 대해 길게 묘사하는데, 이는 ‘오늘을 즐기라’는 권고를 더 확실히 받아들이게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년과 죽음은 오늘을 더 알차고 힘 있게 살도록 하는 배수진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난과 죽음을 배수진으로 삼아 살아 계신 동안 삶의 모든 것을 내주셨습니다.

 

 

12,1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지혜문학 중 이곳에서만 ‘창조하다(바라)’가 명사 기능을 하는 분사형 ‘너의 창조주’로 묘사됩니다. 이는 ‘한처음’에 사람이 받은 ‘목숨’ 또는 ‘생명(루아흐)이 그것을 주신 분께 돌아간다는 것(12,7 참조)을 알게 하고, ‘루아흐’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합니다. 따라서 기쁨을 간직한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은 ‘어둠의 날’을 연상하게 하는 ‘노년의 때’와 대조됩니다. 이 말씀에는 창조주 안에서 삶을 시작하고 마치게 되는 인생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게 이끄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교부 존자 베다는 코헬렛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의 삶은 수레바퀴입니다. 태어난 날부터 죽는 날까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지상의 삶은 수레바퀴 같습니다.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12,1).”

 

 

12,5 인간은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가야만 하고 거리에는 조객들이 돌아다닌다.

 

인생의 마지막을 묘사하는 이 표현에서 ‘영원한 집’은 12,3-5을 묶어 주는 표현입니다. ‘영원한 집으로 간다’는 말은 죽음을 의미하는 완곡어법입니다. 저자는 이미 “모두 한곳으로 가는 것. 모두 흙으로 이루어졌고 모두 흙으로 되돌아간다”(3,20)거나, “그가 온 것처럼 그는 그렇게 되돌아간다”(5,15)거나, “그런 다음 죽은 이들에게로 간다”(9,3)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영원(올람)’이라는 말은 인간의 감각 능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시간적 개념을 의미합니다. ‘집’은 지상에서 사는 동안 머무르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공간적 개념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태양 아래서’, ‘땅 위에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고 사는 인간이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12,7)는 뜻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운명(모이라, μοîρα)’에 얽매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자신이 받은 몫에 따라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코헬렛의 견해입니다(M. 헹엘).

 

 

12,6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며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7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 그릇이 깨어지는 현상은 은줄에 매달린 금으로 된 등잔대가 파괴된다는 뜻입니다. 샘에서 물동이가 부서지고 우물에서 도르래가 깨어지는 것은 삶의 종말과 죽을 운명에 대한 은유로 여겨집니다. 저자는 종말이 다가오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권고합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먼지(아파르)’는 구약성경에 열두 번 사용되는데, 코헬렛에 두 번 쓰였습니다(3,20; 12,7 참조). 코헬렛의 저자는 먼지와 무덤과 영원한 집을 하나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땅의 먼지로 만들어진 사람은 하느님께 ‘생명(루아흐)’을 얻고(창세 2,7 참조), 그 생명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갑니다(창세 3,19 참조).

 

어느 날부터 오르막길과 계단이 두렵고 엘리베이터가 반갑다면 창조주 하느님께 큰 걸음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의미로 연결됩니다. ‘오늘을 즐기라’는 말과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라’는 말은 ‘지금 여기(here and now)’를 위한 명령입니다. 모든 시작은 끝과 맞물려 있으며 끝은 시작을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코헬렛의 저자는 우리가 주님께 받은 삶을 알차게 누릴 수 있도록 지혜를 알려 줍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가을은 사실 봄을 향한 내면의 준비 기간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이르는 길에 마중 나오시기 전에 우리 생활을 더 지혜롭게 가꾸고,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내면을 좀 더 알차게 엮어 가야겠습니다.

 

* 김경랑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소속이다.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삶의 현장인 수지 가톨릭성서모임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열매 맺으며 살아간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1월호(통권 452호), 김경랑 귀임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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