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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므두셀라(므투셀라)는 과연 969년을 살았을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2,755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구약] 므두셀라는 과연 969년을 살았을까

 

 

최초의 친족 살인

 

성서의 장엄한 서두가 독자에게 웅대한 찬가로 우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생생한 묘사로 사람이 낙원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가를 실감하게 하는 반면에 이어지는 부분은 거의 같은 강렬함으로 인류가 겪게 되는 더욱더 가중되는 재앙을 깨닫게 한다. 물론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체험을 되살려 보게 하는 충격을 주고 성서의 첫 페이지들과는 달리 각자의 존재를 슬픔으로 다시 채워 놓는다.

 

그 후 이어지는 친족 살인에 관한 이야기는 성서의 첫 페이지를 피로 물들이는 오점이요, 인류 역사와 관련되는 모든 책에서 발견되는 오점이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그 단순한 형태로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숱한 상상과 함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그러나 창세기의 이 유명한 이야기에 관해서 의문과 억측이 솟아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문을 단순히 고려해 보면 모순과 불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카인과 아벨은 인류의 첫 번째 부부의 첫아들들로 나타나고, 아벨의 자리를 차지하는 세 번째 아들은 그 이름이 언급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암시하는 다른 많은 아들들은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아니면 아담에 대해서 아들 딸을 더 낳았다고 말하는 창세기 5장 4절의 포괄적언 지적으로 언급되는 것일까? 카인의 추방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아담과 하와의 수많은 아들들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본문을 좀더 세밀히 숙고해 보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겨난다. 첫째로 나타나는 것은 카인과 아벨의 직업이다. 카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목자(牧者)였다.

 

그러나 실제로 문화에 대해 피상적인 이해나마 갖추고 있다면 이것은 있을 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축업은 우리가 아는 한, 역사가 가장 오랜 수렵 활동으로부터 발전된 것이고, 농업은 기나긴 유목과 방랑 생활의 종착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인류의 첫 번째 부부의 아들들이 그 모든 중간 발전 단계를 뛰어넘었으리라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저자가 얘기한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이란 몹시 후대에 속한 그 후손들을 지적했다는 말인가?

 

카인이나 그 후손들의 그 후의 기담(奇談)을 고려해 보면 문제는 더욱더 복잡해진다. 카인에게는 도시의 건립, 즉 최초의 도시 생활이 돌려진다. 그뒤 그의 후손들 가운데서는 거문고와 퉁소의 발명자 그리고 “구리와 쇠”(창세 4,22)를 다루는 산업의 발견자가 나온다. 만일 그렇다면, 도시 생활과 철기 시대는 거의 아담에게까지 소급된다. 이러한 가정에서 볼 때 저자는 몇 세대를 건너뛰었다는 셈이 된다.

 

분명히 저자는 문명 발달의 단계에 대해서 시기를 정확하게 정할 의향도 없었고 하나의 연대기를 제시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인간 역사의 도덕성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아벨에 대한 저자의 편애, 다시 말해서 목축 생활, 특히 양을 치는 반(半)유목 생활 - 이 생활은 오늘날도 근동의 아랍 국가들에서 특징을 이루고 있다 - 에 대한 선호가 본문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옳다. 반면에 도시 생활에 대한 거부가 드러나고, 몇 가지 음악적인 표현에 그리고 전쟁과 피투성이의 투쟁을 야기하는 구리와 쇠로 하는 노동에 분명한 적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친족 살인의 탓을 분명히 도시 생활에 돌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카인의 후손들이 지닌 특성으로 나타나는 잔인성과 보복적인 앙갚음 그리고 일부 다처제에 대해 상당히 반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기에 이야기는 개개인보다는 오히려 관습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인상을 풍긴다. 카인과 아벨은 두 문화 혹은 문명의 대표자들로 간주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상징에 해당하므로, 첫 번째 친족 살인으로부터 목자들의 떠돌아다니는 생활이 농업의 부적당한 혹은 난폭한 도입으로 어떻게 파멸되었는가를 볼 수 있다. 그러한 파멸에서 피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래서 진짜 친족 살인이 언급될 수 있었다는 것은 있을 법하다. 이야기를 연장하여 오늘날의 대도시를 고려해볼 때, 오늘날 도시 생활 -도시화 - 이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 그리고 농업을 어떻게 파괴시키고 있는지 묘사해 볼 수도 있겠다. 여러 세기가 지난 뒤 도시 생활 또한 파괴되어 역사가 반복될지 누가 알겠는가?

 

다른 상황을 첨부해 보자. 첫 번째 친족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하느님께 대한 선조들의 반역 이야기에 즉각 이어져 나오기 때문에, 성서 저자가 하느님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그 형제를 더 더욱 존중하지 않으리라는 것, 즉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없으면 이웃에 대한 사랑은 더 더욱 없으리라는 것도 가르치고자 했다는 사실이 배제되지 않는다. 그러한 악의 성장은 카인의 후손들, 특히 보복적이고 잔학한 첫 번째 중혼자(重婚者) 라멕의 후손들(창세 4,19-24) 그리고 홍수의 원인이 되는 사람들의 타락 (창세 6-9장)에 대한 언급에서 보다 잘 지적되어 있다.

 

 

므두셀라의 나이

 

성서의 어떤 표현이나 수치를 보면 의아한 생각과 함께 호기심이 발동될 때가 있다. 예컨대 969년을 살았다는 므두셀라의 예외적인 나이가 그렇다. 과연 그는 그렇게 오래 살았을까?

 

창세기 5장을 읽어 보면 므두셀라만이 그렇게 오래 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의 나이는 다른 선조들, 즉 930년을 산 아담, 950년을 산 노아, 962년을 산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야렛과 비교하여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셋, 에노스, 케난도 900년 이상을 살았다. 다만 에녹은 예외로 365년을 살았다. 그러나 그에 대해 성서는 “그는 하느님과 함께 살다가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데려가신 것이다.”(창세 5,24)고 이야기한다.

 

아담에서 노아에 이르는 첫 조상들의 이 동화와 같은 나이는 홍수로 끝나는데 여기에 대한 설명이 있는가?

 

대체로 문자적이었던 옛 해석은 창세기에 엄밀하게 역사적인 성격을 부여하였기 때문에 저 많은 나이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해석자들은 첫 인류의 우수한 생명력을 내세웠다. 수천 세기가 지난 지금,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 130~140세까지도 산다면, 첫 세대의 가장 건강한 사람들은 800~900세에 이르렀으리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그 숫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고 “연”(年)이라는 말을 다른 의미로 설명하려고 했다. 예컨대 그들은, 최초에는 지구의 공전이 몹시 빨라서 그만큼 한 해의 길이가 짧았다고 생각했다! 저 특이한 나이를 문자대로 설명하려는 가설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합리적인 하나의 해결에 이르려는 모든 시도들은 기록된 사실이 실제라는 가설에 근거했다.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 의심할 만한 용기와 동기가 없었으므로 가능성을 찾아낼 뿐이었다.

 

이미 암시했듯이, 새로운 해석학은 저자의 의도에서, 이른바 “문학 유형”에서 해결을 찾는다. 사실 많은 경우에, 사물을 제시하는 저자의 방법에서 저자의 의도를 찾아낼 수 있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어떤 학설이, 얼핏 보기에 저자가 의도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선조들의 예외적인 나이를 창세기 앞부분의 “특별한” 장들(1-11)에서만 발견한다. 그런데 우리는 성서의 이 첫 장들에서 특별한 형태의 역사 편찬이 나타나고 있음을 이미 살펴보지 않았는가? 자유로운 묘사로 그리고 상징들을 통하여 제시되는 것은 오로지 역사적인 핵심이다. 그러니 선조들의 나이에서 상징적인 가치를 찾는다고 하여 이상할 것이 있겠는가? 이렇듯 과분한 나이는, 20세기의 시적 취향이 없는 사람들인 우리가 첫눈에 발견해 내는 것과 다른 의향을 통보할 수 없지 않겠는가?

 

상징적인 가치와 저자의 깊은 - 참된 - 의향을 탐구해 볼 때, 아담과 노아에 이르는 가계도(家系圖)에서뿐만 아니라, 약간은 줄어들었지만, 노아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가계도에서도 고령(高齡)이 발견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고대 바빌론의 문학에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긴 두 가지 가계도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열 명의 왕에 대한 첫 번째 명부는 45만 6000년간의 치세 기간을 담고 있고, 여덟 명의 왕에 대한 두 번째 명부는 24만 l000년간의 치세 기간을 담고 있다. 이 두 계보는 성서의 두 계보와 마찬가지로 세계 홍수로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서 특별한 문학 유형과 숫자들의 고유한 의미를 살펴볼 필요는 성서에서보다도 더 클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해석학자들은 아직도 그러한 숫자들의 설재적인 의미에 관해 일치하지 못하고는 있지만 그 숫자들이 우리의 평가와 상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동의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 그 숫자들이 축복의 상정이라는 점은 불가능하지 않다. 더욱 있을 법한 것은 그러한 숫자들이 처음부터 끝에 이르는 가계도에 다리를 놓는 데 이바지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러한 연결을 위해 세대와 개개인들의 거대한 숫자를 탐구한다. 고대 근동 사람은 어쩌면 연대를 무수히 늘리는 데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전통적인 해석에 따라 성서의 숫자들을 따져 보면 아담에서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는 1948년이다. 과학의 자료에 따르면 이 숫자는 요구되는 것에 비해 몹시 낮다. 그러나 창세기 5장의 새로운 해석에 있어서 숫자들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이 기간을 계산하기는 불가능하다 해도, 계산할 수 없는 기간에 대한 지침은 있다.

 

그러나 다른 해석자들은 그러한 숫자들에 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 숫자들은 조상들(아담, 셋, 므두셀라 등)이 자신의 나이와 함께 아들, 손자, 증손자 그리고 모든 후손들의 나이를 포함하여 자신의 사망일을 계산한 햇수의 총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부족 가운데서 아직도 시행되는 그러한 나이 계산법이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끝으로 어떤 이들은 마치 화가가 흘러내리는 수염과 하얀 머리털로 표현하는 것처럼, 우선 성서가 그러한 들어 높여진 나이로 하느님께로부터 축복받은 성조들의 존경할 만한 나이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성서상의 많은 이름과 개념과 사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나이도 설형 문자로 된 문헌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이미 45만 6000년간 다스린 열 명의 바빌론 왕과 24만 l000년간 다스린 여덟 명의 왕의 명부를 위에서 상기한 바 있다. 그러한 극히 높은 수치가 나오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확실치는 않지만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답이 있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중 명부의 자료와 베로소(기원전 3세기에 자기 나라의 역사를 그리스어로 기록한 바빌론의 사제, 역사가)가 보고한 자료를 비교해 보면, 그 명부의 각 왕은 평균 9사르(sar) 동안 통치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1사르는 60X60년, 즉 3600년에 해당되므로 9사르는 대략 30000년이 된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이 단정하는 대로 1사르가 60X60년이 아니라 60X60일, 즉 3600일에 해당될 수도 있다면 9사르는 3만 2400일이 되고 이를 일년 365일로 나누면 대략 90년으로 정상적인 나이라 할 수 있는데, 베로소에 의하면 7~8사르, 즉 70년 남짓 통치한 다른 왕들에 비해 훨씬 많은 나이라 하겠다.

 

이제 성서로 돌아와 성조들의 이름과 나이에 관한 한, 바빌론의 저 명부와의 문학적인 상관 관계를 인정한다면, 성서 저자가 모든 것을 고려하여(성조들의 나이를 찬양하기 위하여) 사르라는 용어를 100으로 옮겨 7, 8, 9사르가 700, 800, 900년이 되게 했거나 아니면 옮기는 데 실수했다고 결론내리기 쉽다(감도받은 교의를 전혀 손상시키지 않는다). 보다 쉽게 말해서, 홍수 이전 성조들의 그 높은 수치는 10으로 나누어져야 하고. 그러므로 이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았다 하겠다. 이러한 이론은 의심의 여지없이 몹시 독창적이고, 또한 상당한 가능성이 있으며 수많은 학자들의 찬동을 얻고 있다. (L’uomo moderno di fronte alla Bibbia에서 박래창 옮김)

 

[경향잡지, 1990년 5월호, 베난시우스 더 레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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