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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8)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1 조회수4,080 추천수1

[성서의 세계] 마르코 복음의 예수 이야기 (8)

 

 

종말 담화(마르13,1-37)

 

우리가 성전을 떠날 때 제자 한 명이 성전 건물의 웅장함에 감탄하고 있었다. 나는 곧 폐허의 흔적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올리브 산 위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아가 성전과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물었다. 나는 재난의 시기가 도시와 성전의 파괴 이전에 먼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내 제자들까지도 그런 재난을 맞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세상 종말이 예루살렘의 종말과 함께 일어날 것으로 믿었다. 나는 세상의 종말이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올 것이지만 그때가 언제일런지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느님만이 아신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의 아들이 선민들을 모은다는 것이었다. 가장 현명한 처신은 준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의 재림을 쳐다 보다 혼절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 사람들을 잘 알 것이다.

 

 

베다니아에서 생긴 일(마르14,1-11)

 

해방절 축제 이틀 전이었다. 나는 내가 이미 치유했던 나병환자인 베다니아의 시몬 집의 식탁에 앉아 있었다.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를 들고 들어와서 정중히 내 머리 위에 부었다. 그것은 나를 메시아로 알아 모신다는 그녀 나름의 표현이었다. 손님들은 그녀의 처신을 불필요한 낭비로 보았다. 그 향유 값이라면 많은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여인의 입장에 서 있다.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은혜롭고 사랑스런 행동을 했다. 그녀가 의식했건, 안했건 간에 안장되기 전에 내 몸에 기름을 미리 바른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말과 그녀의 처신에 대한 이야기가 언제나 들려지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녀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마지막 만찬(마르14,12-31)

 

나는 해방절 식사를 할 것이다. 그래서 여제자 둘을 보내 준비를 시켰다. 그들은 준비가 된 적절한 이층 방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녁 때가 되어 열두 제자들과 함께 그리로 갔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했다. 내 마음은 나의 마지막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생각에 무거웠다. 모두들 고통스럽고 어두운 분위기를 느꼈다. 물론 나는 제자들 중의 한 명으로부터 배반당할 것이다. 참으로 쓰라린 아픔이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채지 못하는 제자들을 보면 너무 실망스러웠지만 별 것 아니었다. 불행한 유다스가 안타까웠다.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다. 자비로운 아빠께서 그를 가엾게 봐 주셨으면 했다.

 

식탁에서 음식을 함께 한 것은 내 생활의 중요한 하나의 형태에 속했다. 내 제자들은 함께 한 이 마지막 만찬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빵을 들고 축복한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눠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받으시오. 이는 내 몸입니다.” 나는 포도주 잔을 들고 감사를 드린 후 제자들에게 주며 마시라고 했다. “이는 내 계약의 피로써 많은 사람을 위하여 쏟는 것입니다.” 나는 모세의 행동을 상기하고 있었다. 새로운 계약이 만들어져 인준되었다. 그 계약의 축복은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다. 마지막 만찬은 제자들이 내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게 도왔다. 지금까지도 나는 제자들에게 죽음이 마지막 말이 아니라고 강조할 수 있다. 이 만찬은 우리가 지상에서 가진 마지막 식사였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 왕국의 풍요로움 속에서 다시 식탁을 중심으로 만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제자들이 잘못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나를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갈릴래아에서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재탄생하게 될 것이고,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갈릴래아는 다시 선교의 장, 세계 선교의 장이 될 것이다. 그때 나의 씩씩한 베드로는 두 번 다시 나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크게 잘못할 것이라는 나의 경고를 가볍게 무시해버렸다. 그는 어려운 길을 배우게 될 것이다.

 

 

내 영혼이 근심에 쌓이다(마르14,32-52)

 

나는 극도의 중압감을 느끼고 있었다. 한 배반자와 대면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과 제자들과 함께 있지만, 그들 모두도 결국 떠나버리고 말 현실을 직면해야만 했다. 우리는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만찬 방에서 키드론 골짜기의 묘지를 지나 올리브 동산의 겟세마니, 곧 기름 짜는 틀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오싹한 죽음의 분위기가 코앞에 물씬 풍기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육체적·정신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남겨두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올리브 나무숲으로 갔다. 크게 번뇌하면서 괴로워 죽을 듯한 나의 심정을 그들에게 토로했다. 그러면서 함께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땅에 엎드려 기도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 앞으로 닥칠 끔찍한 일이 절절했다. “아빠,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아빠께서 걷기를 바라시는 내 앞에 놓여진 나의 길을 나는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니 모두 잠들어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이들이 아닌가? 얼마나 태평스러운지! 나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고뇌 가운데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왜 제가 죽어야만 합니까?”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스스로 물음을 던지면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이미 그에 대한 대답을 했다. ‘내 아들이야 알아보겠지.’ 나는 그들의 구원을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모험을 하고 싶었다. 나는 너희들의 죽음을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은 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견줄 바 없는 이 사랑을 그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러면 점차 그들도 이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사람들이 반대할 길을 외롭게 걸어가는 것이 아빠의 뜻이라는 것을 기도를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아빠는 나와 함께 계실 것이다. 나는 졸고 있는 제자들을 깨웠다. 이젠 더 이상 두려움도, 분심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결연한 태도로 제자들에게 차분히 일렀다. “일어나 갑시다. 보시오.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습니다.”

 

대제관들과 율사들과 원로들은 할 일을 신속하게 착수했다. 순식간에 겟세마니에 들이닥친 그들은 나를 체포할 무장 군인들을 보냈다. 유다는 우리가 있는 곳을 잘 알았기 때문에 어두움이 문제가 되지 않아 나를 즉시 알아보았다. 사전에 미리 짜 놓은 듯 유다가 “랍비!”하고 신호를 보내면서 나를 안았다.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체포되었다. 누군가 칼을 빼내 대제관의 종의 귀를 사정없이 내리쳐 잘라 버렸다. 내가 폭력을 휘두른다는 인상을 주는 이 행동을 자제시켰다. 그리고 평화의 사람으로서 나의 가르침을 포기하기 싫었다.

 

제자들의 비겁한 처신은 큰 아픔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용감한 말을 고백했던 그들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려고 따르던 어떤 한 젊은이가 거의 잡힐 뻔했다. 여제자들은 겟세마니에 함께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여제자들이 끝까지 항구하게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있었다.

 

 

의회 재판(마르14,53-72)

 

나는 대제관 저택에서 열린 의회에 끌려갔다. 이미 사형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다만 죽음에 해당되는 증거를 위한 인습적인 의례라는 순서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거짓 증언은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성전 파괴를 예언했지만,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이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라는 내 말은 내가 만든 공동체를 말한다. 성전을 물리적으로 무너뜨린다는 위협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 표현인가! 공격 노선이 향할 곳이 없음이 분명해졌다.

 

대제관은 고소에 대한 나의 반응을 요구했다. 나는 날조된 고발에 대하여 반응을 보일 마음이 없었다. 나의 의도적인 침묵은 그의 입을 열게 했다. 그는 고소를 정식으로 제기해야 했다.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그리스도요?”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신중하게 선언했다. “내가 그입니다.” 나는 그가 하느님이 전적으로 배려하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내가 유일하고도 분명하게 메시아임을 주장하는 말이었다. 내가 형을 선고받는다면 그것은 날조된 고소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내가 바로 그(사람의 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제관은 나의 메시아 주장을 신성모독으로 보고 나를 사형감이라 단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안식일을 남용하며 죄인들의 친구였던 나는 ‘사람의 아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내 주장은 거룩한 하느님에 대한 모독이었다. 가짜 메시아도 로마를 위협하는 자로 간주되었다. 가짜라도 한때 자신의 전성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대제관은 나에 대한 의회의 사형선고에 만장일치를 요구했고 또 그렇게 되었다. 재판이 이렇게 진행되고 있을 때, 베드로는 먼발치에서 두려움과 괴로움과 갈등 속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미 그에게 경고했었다. 그는 통절하나 유익한 교훈을 배우고 있었다. 그는 점차 성장하고 있었다.

 

[월간 빛, 2004년 6월호, 이재수 시몬 신부(큰고개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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