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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상징과 환시의 예언자 에제키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8-01-11 조회수4,126 추천수0

[성서의 세계] 예언자 에제키엘 (2) -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리라!”

- 상징과 환시의 예언자 에제키엘

 

 

에제키엘 예언자의 선포 메시지는 예루살렘 멸망(기원전 587년)을 전환점으로 하여 완전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 부정과 불의에 빠져 있던 왕조시대 말엽에는 준엄한 하느님의 심판(4-24장)이 선포되었지만, 왕조가 멸망한 후 유배의 시련을 겪게 된 이스라엘을 향해서는 하느님께서 이루실 구원(33-48장)이 예고되고 있다. 결국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마른 뼈’ 신세로 전락한 이스라엘에게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주시며,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로 ‘다시 살아날 것’임을 선포하였던 것이다.(37,1-14)

 

 

1.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선포(4-24장)

 

1) 이스라엘의 죄

 

그 옛날 이스라엘 선조들이 하느님의 놀라우신 업적으로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광야의 여정을 걸어갔을 때, 시나이 산에 이르러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과 규정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며 하느님과 계약을 맺게 된다. 바로 이 시나이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십계명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을 구원하신 하느님만을 믿고 섬기며,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고,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한마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말한다.

 

바로 이러한 삶의 규범에 비추어 에제키엘은 왕조시대 말엽 이스라엘의 종교, 사회생활을 고발하고 있다. 사제였던 에제키엘은 먼저 우상숭배에 빠져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 멀어져있던 이스라엘의 생활을 질책한다. 그들은 높은 언덕과 산봉우리, 나무 아래에 제단을 쌓고 온갖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쳤으며(6,13), 예루살렘에 있던 하느님의 성전에서도 ‘질투의 우상’(8,5), ‘기어다니는 온갖 생물과 혐오스러운 짐승’(8,10), 아카디아의 담무즈 신(8,14), 태양(8,16)을 숭배하는 역겨운 짓들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예언자는 당시의 폭력과 불의가 난무하던 사회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22장) 사회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남용하여 사자가 먹이를 노리듯 백성들의 재물을 착취하고(22,6.25), 사제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짓밟고 그분께 바쳐진 거룩한 물건들을 더럽혔으며(22,26), 예언자들은 주님께서 일러주시지 않았는데도 자기 멋대로 거짓 환시와 속임수 점괘를 남발하였던 것이다.(22,28) 또한 백성들도 사회생활의 가장 근본 계명인 부모님 공경을 소홀히 하였을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부류인 이방인과 고아 그리고 과부를 외면하고 학대하였으며, 성(性) 윤리가 무너져 간음과 근친상간이 만연한 실정이었다.(22,7-11)

 

2) 이스라엘의 반항의 역사

 

예언자는 당시 죄에 빠져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갔던 상황이 이미 이스라엘이 살아왔던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16, 20, 23장) 이스라엘이 한결같으신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마다 하느님을 배반하는 잘못을 저질러 왔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에집트에서 해방시키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던 그때부터 하느님께 반항하기 시작하였다.(20,6-8) 이어 광야에서 목마름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이스라엘이 물,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을 다시 한번 체험하였지만 여전히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를 따르지 않았고 안식일을 더럽혀 하느님께 반항하였다.(20,10-27) 그리고 하느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을 데리고 들어갔을 때에도 그들은 온갖 혐오스러운 우상들을 섬겨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고 말았다는 것이다.(20,28-31) 그러므로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강한 손과 펼친 팔로, 퍼붓는 분노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어 계약의 의무를 지우겠다고 선언하신다.(20,32-38)

 

이러한 예언자의 역사 이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부정한 아내의 역사’로 제시하고 있는 16장과 정부들(아시리아, 에집트, 바빌론)의 품을 열망하여 찾아다녔던 두 자매, 즉 오홀라(사마리아)와 오홀리바(예루살렘)를 바로 그 정부들의 손을 통해 하느님께서 심판하시리라는 23장에서도 잘 묘사되고 있다.

 

3) 하느님의 심판-예루살렘의 멸망

 

이처럼 하느님을 배반하여 반항을 일삼아오던 이스라엘은 결국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초래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배의 고난이었다. “비탄과 탄식과 한숨”, 예언자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받아 먹은 두루마리에 적혀있던 이 말씀은 이제 이스라엘의 운명으로 드러나게 되고, 예언자는 자신의 상징적 행위들을 통해 다가오는 비극적인 상황을 예고한다.

 

에제키엘은 벽돌로 예루살렘 성읍과 그 둘레를 에워싼 공격보루와 공격축대를 만든다.(4,1-3) 이 모습은 예루살렘의 포위와 함락에 대한 하느님의 확고한 결정을 예시하고 있다. 그 뒤 예언자는 바닥에 왼쪽 옆구리를 대고 390일(또는 190일),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40일 눕는다.(4,4-8) 이 행위는 하루를 한 해씩으로 쳐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그들의 죄로 겪게 되는 유배 햇수를 가리키고 있다. 이어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에게 여섯 가지 곡식을 섞어 만든 재료를 인분으로 구워 빵을 만들라고 명하신다.(4,9-17) 예루살렘 멸망 후 이스라엘이 먹게 될 이 빵은 정결을 중시하던 그들에게 있어 결코 가까이 해서는 안될 부정(不淨)한 것이었다. 밭에 여러 곡식들의 씨앗을 섞어 뿌리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규정(레위 19,19)처럼 여러 곡식을 섞어 만든 빵도 부정한 것인데, 하물며 인분이나 쇠똥과 같은 부정한 땔감을 사용했다는 것은 부정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겠다. 나아가 식량을 하루에 200그램의 음식과 0.65리터의 물로 제한한 것은 유배 때 겪게 될 생활의 곤궁함을 나타낸다. 또한 예언자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아 삼분의 일은 성안에서 불로 태우고, 삼분의 일은 성을 돌며 내려치며, 나머지 삼분의 일은 바람에 날린다.(5장) 이러한 예언자의 상징적 행위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맞게 될 이스라엘의 운명을 단적으로 예고하고 있다. 즉 주민의 삼분의 일은 성안에서 흑사병과 굶주림으로 스러져 가고, 삼분의 일은 성 둘레에서 정복자의 칼에 쓰러지게 되며, 또 삼분의 일은 고향을 등지고 외국으로 유배나 유랑의 길을 나서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예언자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보따리를 꾸려 나서는 모습 역시 유배지로 끌려 갈 백성들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12,1-16)

 

마침내 주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고(10장), 바빌론에서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함락됨으로써 근근히 존립해오던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고 거룩한 성전이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33,21)

 

 

2. 하느님의 구원 선포(33-48장)

 

예루살렘 멸망(기원전 587년) 이후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겪게 된 고난이 그들 자신이 범했던 죄의 결과임을 지적하면서, 아울러 하느님의 심판은 끝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참다운 백성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한 정화의 시작임을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절망 속에 빠져 있던 백성들에게 궁극적으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의지를 열정적으로 전한다.

 

1)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리라!(37장)

 

예언자는 환시를 통해 마른 뼈로 가득 찬 골짜기를 보게 된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적인 말씀을 통해 뼈에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심으로써 다시 살릴 것임을 예언자에게 일러주신다. 이 환시는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37,11)라고 탄식하던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새로운 생명이 부여되리라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전하고 있다.

 

2) 새 마음을 통한 새 계약의 체결

 

이제 하느님 친히 당신 백성의 목자로 나서시어 “잃어버린 양은 찾아내고 흩어진 양은 도로 데려오며, 부러진 양은 싸매 주고 아픈 것은 원기를 북돋아 주리라.”(34,16)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죄에 물들어 있던 이스라엘을 정결케하고 새 마음과 새 영을 불어넣어 주시며,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주심으로써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시고, 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이끌어 주시고자 하신다. 여기서 마음이란 인식의 주체일 뿐 아니라 의지와 행동의 주체를 의미하는데, 이처럼 이스라엘은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사람이 됨으로써 하느님께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36,24-28)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평화의 계약’을 맺게 될 것인데(34,25), 그때 비로소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있음을 그리고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임을 알게 될 것이다.(34,30)

 

3) 새로운 공동체(40-48장)

 

에제키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환시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전해 받고 새롭게 탄생하게 될 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새 공동체의 삶에 있어서 그 중심은 전통적으로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며 참된 경신례가 올려지는 장소인 성전이 될 것이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14년째 되던 해(기원전 573년)에 주님의 손에 이끌리어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동쪽으로부터 오시어 머무르시게 될 성전은 ‘하느님 어좌의 자리, 그분의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이며,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 곳’(43,7 참조)이 될 것이다.

 

이어 예언자는 하느님의 도구로서 그분의 새로운 백성을 이끌어갈 지도자들을 전하고 있는데, 그들은 사제와 레위인 그리고 제후들이다.(44-46장) 먼저 사제는 하느님께로 가까이 나아와 그분을 섬기고, 경신례를 주관하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하느님의 법규에 따라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직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레위인은 사제들을 도와 성전에서 시중드는 일을 맡게 된다. 그리고 제후들은 백성의 지도자로서 왕조시대 폭력과 억압, 수탈을 일삼던 임금들과는 달리 ‘공정과 정의’로서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어야 할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제키엘은 성전에서 솟아 흐르는 물의 환시를 전하고 있는데,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나게 된다.(47장) 구약성서에 있어 물이 솟아나는 샘은 생명력을 부여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상징한다. 따라서 여기서 성전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생명력을 지닌 “생명수”는 곧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약성서의 요한계 문헌들은 이 예언이 인류를 위해 희생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새로운 성전이며(요한 2,21), 그분의 옆구리로부터(요한 19,34) 영원한 생명의 물이 흐른다.(요한 4,14) 요한의 묵시록은 희생된 어린양의 천상 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제시하고 있다.(묵시 22,1-2)

 

환시와 상징적 행위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하였던 예언자 에제키엘. 그는 당시 이스라엘의 삶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을 열정적으로 선포하였으며, 나아가 하느님과 함께 온전히 구현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였던 예언자라 하겠다.

 

[월간 빛, 2002년 12월호, 송재준 마르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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