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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마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9 조회수3,719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마음

 

 

심장과 마음

 

생리적·의학적 지식이 많지 않던 고대인들에게는 심장이 인체에서 가장 신비로운 기관으로 여겨졌다. 심장은 늘 규칙적으로 박동한다. 그 움직임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여러 군데에서 직접 느낀다. 몸이 편안할 때라든가 잠을 잘 때에는 심장도 조용히 박동한다. 몸이 활발히 움직이면 심장도 기운차게 운동한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 어떤 생각이나 느낌에 사로잡혀 흥분할 때에는 심장의 박동도 덩달아 불규칙해지고 빨라진다. 그러다가 심장이 멎으면 결국 사람은 죽는다.

 

성서의 사람들은 매우 구체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정신적, 내적 움직임도 몸의 특정 기관의 활동으로 생각하였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인체의 중심이면서 결정적 기관인 심장을(시편 38,11; 예레 23,9 등 참조) 마음과 동일한 것으로 여겼다. 히브리 말과 그리스 말에서는 같은 낱말이 심장을 뜻하기도 하고 마음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영어(heart)를 비롯한 현대의 서양 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말은 약간 어중간하다고 할 수 있다. 마음과 염통과 심장, 세 낱말 가운데에서 마음과 염통은 전혀 다른 것처럼, 심장은 ‘마음 심’ 때문에 마음과 연관된 것처럼 여겨진다. 다른 한편, 마음을 심장 대신에 쓰는 일은 없지만, 심장은 더러 ‘뜨거운/차가운 심장’처럼 마음을 비유하여 일컫는 데에 쓰이기도 한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인 마음의 활동이나 그 영역에 대해서는 언어나 민족마다 다르게 생각한다. 영어의 ‘heart’와 ‘마음’의 쓰임새를 대충 비교해 보아도 어림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용도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같은데, 성서의 사람들은 ‘마음’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예수님은 바리사이들과 벌어진 정(淨)과 부정(不淨)의 논쟁을 끝내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마르 7,21-22). 여기에서는 몇몇 좋지 않은 실례만 나열되는데, 결국 사람이 속으로 품는 부정적·긍정적 생각이나 의도나 자세만이 아니라 모든 구체적인 행동까지 마음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부터 ‘마음’이 영어나 우리말에서보다 더 넓은 의미로 쓰임을 느끼게 된다. 사실 성서에서는 ‘마음’이 감성과 의지와 지성, 그리고 도덕과 신앙의 중심으로 여겨진다.

 

 

감성의 자리

 

마음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이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느끼는 자리이며, 그러한 감정의 주체이다. 하느님을 늘 자기 앞에 모시어 아무 흔들림 없이 살아가는 믿음의 기쁨을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제 마음 기뻐하고 … / 제 육신마저 편안히 쉬리이다”(시편 16,9). 반면에, 덧없는 인생길에서 불행에 잠긴 기도자는 “마음이 속에서 달아오르며 / 탄식으로 울화가 치밀었다.”고 토로한다(시편 39,4). 느헤미야가 유배 간 나라에서 고국을 생각하며 슬픈 얼굴을 짓자, 임금은 그것이 “마음의 슬픔”임을 바로 알아본다(느헤 2,2). 또 즈가리야 예언자는 하느님 백성의 마음이 마침내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고 예언한다(즈가 10,7).

 

마음은 이렇게 희로애락만이 아니라, 용기와 겁 또는 두려움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시편의 기도자는 주님이 자기의 빛이며 구원이시어서, “나를 거슬러 군대가 진을 친다 하여도 / 내 마음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고 노래한다(시편 27,3). 반면에,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을 히브리 말에서는 ‘마음이 (밖으로) 나가다’(창세 42,28), ‘마음이 (밑으로) 떨어지다’(1사무 17,32), ‘마음이 떠나가다’(시편 40,13)라는 말로 표현한다. ‘마음’이 아예 ‘용기’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2사무 17,10). 그래서 마음이 겁에 질리게 되면, 바람 부는 숲의 나무들처럼 떨기도 하고(이사 7,2) 밀초나(시편 22,15) 물처럼(여호 7,5) 녹아내리기도 한다(신명 20,8).

 

이 밖에도 마음은 걱정(1사무 9,20), 실망이나 절망(신명 28,65), 감격(사도 2,37), 신뢰(시편 28,7), 연민(호세 11,8), 동정과 자비(마르 1,41), 그리고 교만과 겸손의 자리이다(신명 8,14; 마태 11,29). 마음은 또한 사람을 끄는 갖가지 바람이나 욕망 같은 것의 주체이기도 하다(민수 15,39; 욥 31,7; 시편 21,2; 잠언 6,25; 로마 1,24). 이리하여 성서의 사람들은 마음이 온몸의 건강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하였다: “평온한 마음은 몸의 생명이다”(잠언 14,30).

 

 

의지의 자리

 

앞에 언급한 희망이나 욕구는 지성과 의지를 전제한다. 곧 알고 의도하는 바를 바라는 것이다. ‘마음을 먹다, 작심하다, 결심하다’라는 표현과 비슷하게, 히브리 말에서도 마음은 인간의 의지적 행위가 출발하는 곳이다. 의향이 형성되는 곳이 바로 마음이다. 그래서 악마가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 넣는다(요한 13,2). 마음은 의향을 넘어 적극적인 계획까지 세운다.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언 76,9).

 

마음이 의지의 주체이기 때문에 히브리 말에서는 같은 낱말이 ‘양심’의 뜻도 지닌다. ‘마음’이 ‘좋은 마음’ 곧 양심(良心)의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2사무 24,10). 시편 저자는 “깨끗한 마음”을 만들어주십사고 청한다(시편 51,12). 이는 더럽혀진 마음을 다시 양심이 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 동안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서는 회개가 이루어지는 곳도 바로 마음인 것이다(요엘 2,12).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주신다는 에제키엘의 예언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에제 36,26). 이러한 새 마음은 단순히 깨끗한 마음을 뜻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돌로 된 마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살로 된 마음”이다. 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씀을 들음’은 곧 ‘말씀을 실천함’이다. 마음은 느끼고 바라고 계획하고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샘에서 물이 흐르듯) 구체적 행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은(탈출 4,21) 남의 말을 듣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마음을 다시 순종의 마음으로 바꾸는 것을 마음의 할례라고 부른다(예레 4,4). 옛날 이스라엘인들이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계약의 백성의 일원이 되었듯이, 자기 마음에 할례를 행함으로써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게 된다(신명 10,16).

 

사랑은 단순한 감정만이 아니라 상대를 선택하여 자기 마음을 주는 의지적 행위이기도 하다(신명 7,7; 10,15 참조). 그래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은(신명 6,5) 지성과 함께 의지를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지성의 자리

 

성서에서 말하는 마음의 가장 큰 특성, 서양인들이나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바와 가장 다른 점, 그래서 성서의 인간학과 관련하여 오해하기가 매우 쉬운 사항은, 마음이 지성의 자리라는 사실이다. 성서에서 사람에 관하여 말할 때에 제일 중요하고 흔하게 쓰이는 개념이 마음이다. 그리고 그 기능 가운데에서 가장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 감성이나 의지가 아니라, (현대인에게는 뇌나 정신에 해당하는) 지성이다. 잠언이나 전도서 같은 지혜문학서에서 마음이 잇달아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명기 9장 3절에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라는 표현이 나온다(이사 6,10 참조). 이와 같이 성서의 사람들은 마음의 첫째 기능이 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마음은 먼저 어떠한 사실을 아는 이성적 기관이다(신명 8,5). 이러한 마음에서 사람의 생각이나 사고가 이루어진다(창세 6,5; 마르 2,6). 구체적 사고방식을 지닌 이스라엘인들은 ‘자기 마음에게 말하다’라는 표현을 ‘생각하다’의 뜻으로 사용한다(1사무 27,1). 마리아는 예수님 탄생과 관련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가 2,21). 사고에 이어 숙고를 하고 또 기억하는(다니 7,28) 자리가 마음인 것이다. 지식을 얻는 곳, 지식이 저장되는 곳도 마음이다. 그래서 현인은 “슬기로운 마음은 지식을 찾는다.”고(잠언 15,14), 욥은 조상들이 “마음에서” 가르침의 “말씀”을 꺼낸다고 말한다(욥 8,10).

 

이에 따라 ‘마음이 없음’은 지각이나 분별력이 없음을(호세 7,11), 술 같은 것에 ‘마음을 뺏김’은 생각이나 판단력을 잃음을 뜻한다(호세 4,11. 그리고 잠언 24,33 참조). 반대로 ‘마음을 훔침’은(창세 31,20) 상대방의 인식이나 판단을 흐리게 하여 속이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넓고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마음은 결국 외적인 “몸”에 상응하는(시편 73,26; 마태 26,41) 내적 인간, 곧 지적·의지적·영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 자체를 가리킨다. 마음이 바로 도덕, 특히 신앙이 이성적·의지적으로 결정되는 곳이다(마르 11,23; 로마 10,9와 1사무 12,20; 잠언 3,5). 마음은 곧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이며(신명 4,29; 1사무 16,7; 1역대 29,17), 성령,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머무르시는 곳이다(2고린 1,22; 에페 3,17).

 

[경향잡지, 2003년 1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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