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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9 조회수3,603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피 

 

 

시뻘건 색깔에, 신비한 방식으로 생명 및 죽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피는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 흥분, 때로는 어떤 경외감마저 느끼게 해왔다. 다른 한편으로, 피가 영양에 좋음을 인류는 일찍부터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된다. 특히 사람 피는 효험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였다. 스키타이족 전사가 전투에서 처음으로 죽인 적군의 피를 마셨다는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이야기나, 효심 깊은 자식이 어버이의 병을 고치려고 자기 피를 마시게 하였다는 우리 나라의 민담 등도 이러한 사실과 관련된다. 지금도 우리는 선짓국이나 순대 등을 즐겨 먹는다.

 

 

피를 먹어서는 안된다 - 남의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

 

이렇게 별다른 선입견 없이 동물의 피를 섭취하는 입장에서 구약성서를 읽으면 깜짝 놀라게 된다. 구약성서에서는 엄격하고 단호하게 피를 먹지 말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피는 고사하고 동물의 피를 먹는 것조차 가증스러운 죄로 명시된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에게 모든 짐승과 식물을 음식으로 허락하신다. 다만, “피가 들어있는 살코기는 먹어서는 안된다.”고 엄하게 이르신다(창세 9,3-4). 이러한 금지가 율법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새의 것이든 짐승의 것이든 어떤 피도 먹어서는 안된다.”(레위 7,27-28. 그리고 레위 3,17; 17,10; 신명 12,16.23). 짐승을 잡아먹기는 하되, 그 피를 따로 마셔서도 안되고 피가 든 살코기를 먹어서도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금령은 짐승의 피를 아무렇게나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내포한다. 짐승의 피를 함부로 흘려서는 안된다는 계명은 사람의 피를 결코 흘려서는 안된다는 지엄한 명령으로 이어진다.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나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값을 요구하리라”(창세 9,5). 남의 피를 흘린다는 것은 물론 살인을 뜻한다. 그래서 살인자를 “피의 사람”이라고(2사무 16,7; 시편 139,19), 살인죄를 그냥 “피”라고 부르기도 한다(호세 1,4; 6,8). 하느님께서 이를테면 피의 후견인 또는 보증인이시기 때문에, 피 자체가 힘을 지녔다고 여기기도 한다. 무죄하게 흘린 피는 하느님께 복수를 부르짖을 뿐만 아니라(창세 4,10) 범인을 뒤쫓기까지 한다(에제 35,6). 또 사람의 피는 그것을 쏟은 자의 손과 머리에(마태 27,24-25), 그의 집안에 계속해서 남아있다고 생각한다(2사무 21,1). 역대기에 따르면, 다윗까지도 전쟁으로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칠 수가 없었다(1역대 22,8).

 

 

피는 하느님의 것

 

왜 짐승의 피를 먹어서는 안되는가? “생물의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이다”(레위 17,11). “피는 생명이고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신명 12,23). 그리고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의 것이다. 생물에 생명을 주고 또 거두는 것은 하느님의 절대적인 권리이다(창세 3,19; 욥 34,14-15; 시편 90,3; 104,29-30; 전도 12,7). 인간은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이러한 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생명과 직결된 피를 먹지 않음은 생명의 주님이신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짐승의 피를 먹음은 하느님의 주권을 거스르는 도발 행위이고 “배신” 행위이다(1사무 14,33).

 

그렇다면 짐승을 어떻게 잡아서 먹어야 하는가? 두 가지 방식이 제시된다. 첫째는 레위기 17장의 규정이다. 모든 짐승을 성소 곁에서 잡아 피를 제단 쪽으로 뿌리고 굳기름을 불살라 하느님께 바친 다음에 나머지 고기를 먹는 것이다. 사냥하여 잡은 것으로 제물로는 적합하지 않은 짐승도 의식을 갖추어 피를 땅에 흘려 보낸 다음에 흙으로 덮어야 한다.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것은 그분 앞에서 가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이사 26,21과 신명 23,13-15 등 참조). 둘째는 신명 12장의 규정으로,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짐승을 잡되 피는 “물처럼 땅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16절). 물론 여기에서도 짐승을 잡는 것은 종교 의식의 의미를 지닌다.

 

성서는 왜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그토록 엄중히 경고하는가? 남의 피를 쏟아 죽이는 자는 하느님께 이중으로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살인은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죽임으로써 하느님께 직접 도전하는 것이다(창세 9,6). 하느님께서는 남의 피를 쏟아 죽이는 자를 “역겨워하시며” 그에게 벌을 내리신다(시편 5,7; 55,24; 잠언 6,17). 그래서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경우에 피만은 쏟지 않는 편법을 강구하기도 하고(창세 37,21-22), 이미 피를 흘렸을 때에는 그것을 흙으로 덮으려고 하기도 한다(창세 37,26; 에제 24,7-8). 억울하게 살해당하는 이는 반대로, 자기의 피가 흙으로 덮이지 않기를 바란다(욥 16,18).

 

인간의 피를 흘리는 것은 그야말로 더러운 죄이기 때문에, 무죄하게 흘린 피는 그 땅까지 더럽힌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은 그러한 더러움이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거룩한 땅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민수 35,33-34; 신명 19,10.13; 예레 7,6). 월경과 출산도 본의는 아닐지라도 피를 흘렸기 때문에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 부정(不淨)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므로, 일정 기간 뒤에 정결례를 치르면 없어진다(레위 12,1-8; 15,19-30).

 

 

피는 생명을 위한 것

 

피는 먹지 말아야 하고 쏟지 말아야 하며 흙으로 덮어버려야 하는, 곧 되도록 기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의 자리인 피를 다양한 종교 의식에서 규정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면, 인간에게 속죄와 정화와 성별과 보호와 해방, 곧 생명을 가져다 준다.

 

피는 제단(에제 43,20), 분향 제단(탈출 30,10), 그리고 성소와 성전 자체를 정화하고 속죄하는 데에 쓰인다(레위 16,15-16; 에제 45,18-20).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사제직을 받을 때에는, 희생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그들의 오른쪽 귓불과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른다. 그리고 제단 위에 있는 피와 성별 기름을 그들의 옷에 뿌린다. 이로써 백성을 대표하여 제단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그들과 그들의 옷이 거룩하게 된다(탈출 29,9-21).

 

전통적으로 ‘나병’이라고 번역되는 악성 피부병에서 치유된 사람의 정결례에서도 똑같은 신체 부위에 제물의 피를 바른다(레위 14장). 사제 수품식과 죽은 이로 여겨지던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례에서, 피가 해당자들에게 새 삶과 새 생명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피는 또한 여러 가지 희생제물을 바칠 때에도 제단 둘레에 뿌리거나 그 밑바닥에 쏟거나 그 네 모퉁이에 바른다(레위 1,5; 3,2; 4,7.18 등).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친교를 강화하고 죄인에게 속죄를 가져다 주어 인간의 생명력을 증가시키는 데에 피가 한몫을 하는 것이다.

 

지성소에는 대사제가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데, 이때에 그가 ‘죽지 않으려면’(레위 16,2.13) 제물의 피를 여러 곳에 뿌려야 한다(레위 16,14.15.19). 피가 죽음의 힘을 막아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직전에 지낸 과월절에서도 드러난다(탈출 12장). 그들의 집 문에 피를 바름으로써, 피가 그들의 생명을 보호해 주고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의 길을 터준다. 이 길의 정점인 시나이 계약에서도 피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탈출 24,4-9). 같은 제물의 피를 하느님을 상징하는 제단과 이스라엘인들에게 뿌린다. 이 계약의 피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이 준가족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이다.” 하고 말씀하신다(마태 26,27-28). 그리고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역설하신다(요한 6,54-56).

 

신약성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리스도의 피’는 구약성서와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신약은 구약의 단순한 연속이 아니다. 신약은 구약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구약을 한없이 뛰어넘는다. 진정한 과월절 양이신 그리스도의 피는 구약에서 말하는 짐승의 피와 비교할 수 없이 완벽한 정화와 속죄와 해방과 거룩함을 가져다 준다(로마 3,25; 에페 1,7; 1베드 1,19; 1요한 1,7; 히브 9,14; 13,12).

 

구약을 그야말로 뒤집음으로써 구약의 기대를 완전히 성취시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를 마셔서는 안된다. 사람의 피는 마시기는 고사하고 흘려서도 결코 안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짐승의 피로 맺어진 계약 대신에, 당신의 피로써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신다. 그리고 구약에서는 계약의 피가 제단과 백성에게 뿌려지는데 반하여(탈출 24,8), 그리스도께서는 이 계약의 피를 마시라고 내놓으신다. 구약은 준가족 관계를 형성해 주었다. 그런데 새 계약의 피 곧 그리스도의 피를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말 그대로 그리스도와 피를 나눈 한 형제자매가 된다. 그리스도의 참 ‘피붙이’가 되어 그분의 생명에 온전히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2년 1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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