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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속죄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8 조회수3,571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속죄일

 

 

제4차 중동전쟁과 ‘희생양’

 

1973년에 일어난 석유 파동은 아직도 많은 사람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그리고 1978년 이란의 혁명으로 제2차 파동이 다시 일어남으로써, 석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오일 쇼크’가 언제나 재발이 가능한 재앙으로 공포의 대상이 된다. 1973년의 유류 파동은 그해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하면서 벌어진 전쟁의 여파로 일어난다. 이 전쟁에서도 이전처럼 이스라엘 편을 드는 서방에 대한 보복으로,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의 생산 제한과 수출 금지를 실시하였기 때문에, 세계는 사상 처음으로 심각한 석유 위기를 겪고 많은 국가의 경제가 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분쟁을 제4차 중동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서양에서는 ‘욤-키푸르 전쟁’이라고 한다. ‘욤-키푸르’는 히브리 말로서 ‘속죄일’을 뜻하는데, 그해 10월 6일에 이스라엘에서는 구약성서의 율법에 따라 속죄일을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는 올라가 있지 않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희생양’이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어떤 불행한 일이 터졌을 때, 직접 원인이 되는 사물이나 사람이 아니라 다른 대상에게 책임을 떠넘겨 대중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때에 책임 전가나 대중 조작의 대상을 ‘희생양’이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희생양을 찾다’, ‘희생양이 되다’라는 표현이 쓰인다. 예컨대 1923년 일본의 간토(관동) 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 육군과 경찰이 날조된 풍설을 퍼뜨려 수많은 재일 한국인을 학살한다. 이들을 무고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이러한 ‘희생양’은 구약성서에서 유래하는데, 본디 숫염소로서 ‘속죄일’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짐승을 가리킨다.

 

 

유다인들의 가장 거룩한 축일

 

‘속죄일’은 히브리 말로 간단하게는 ‘욤-키푸르’, 정식으로는 ‘욤-하키푸림’이라고 부르는데, 이스라엘에서 정확히 언제부터 이날을 지내기 시작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기원전 538년에 끝나는 유배 이후, 부분적으로는 이미 예전부터 내려오던 의식들이 지금 우리가 레위기 16장, 그리고 23,26-32와 25,9와 민수기 29,7-11에서 보는 속죄일 예식으로 모아져 장엄하게 거행되기 시작하였다고 판단된다.

 

기원전 587년 외적의 손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많은 사람이 유배로 끌려가는 전대미문의 불행을 겪으면서, 유다인들은 자기들이 저지르는 죄와 그 결과, 그리고 인간의 죄와 공존할 수 없는 하느님의 거룩함에 관하여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참회와 하느님의 자비로 일년 동안의 죄와 잘못, 또 그것들이 불러오는 부정(不淨)을 씻는 속죄일을 중시하게 된다. 후대에 내려올수록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속죄일은 ‘그 중대한 날’ 또는 그냥 ‘그날’로도 불리면서 유다인들에게 연중 가장 거룩한 축제로 여겨지게 된다.

 

이러한 속죄일은 “일곱째 달 초열흘날”에 지낸다(레위 16,29). 히브리 말로는 ‘티쉬리’라고 부르는 “일곱째 달”은 오늘날의 3-4월에 걸치는 달(히브리 말로 니산)을 한 해의 첫 달로 계산하는 방식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진 1973년에는 10월 6일이 ‘그날’이었다. 이날, 우리 식으로는 전날 해넘이에서 본날 해넘이까지 어린이와 환자 이외의 모든 유다인은 고행을 해야 한다. 고행을 함은 참회의 자세로, 음식과 음료를 들지 않고 몸을 씻거나 몸에 기름을 바르지 않으며 신도 신지 않고 부부관계도 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래서 그냥 “금식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사도 27,9). 또 이날은 안식일이 아닐지라도 일을 해서는 안되는 특수 ‘안식일’이다.

 

이 “안식의 날이며 고행을 해야 하는 날”의(레위 23,32) 본예식은 온 백성과 함께 성전에서 대사제가 집전한다. 예루살렘 성전의 본건물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다. 성소에서는 날마다 사제들이 제사를 지낸다. 지성소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 가운데에 현존하시는 장소로서 말 그대로 가장 거룩한 곳이다. 이곳에 대사제가 일 년에 단 한 번, 바로 속죄일에 들어가 예식을 거행한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속죄일을 가장 거룩한 축일로 여긴 것이다.

 

 

속죄 예식

 

속죄일 예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곧 속죄의 예식과 희생염소의 예식이다. 대사제는 이 예식을 주관하려고 엄격한 절차를 걸친다.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하다가 전날 저녁에는 아주 가볍게 식사를 하고 밤샘을 한다. 아침이 되면 몸을 씻은 다음 화려한 대사제복을 입고(출애 28장 참조), 이날에 지정된 특별한 번제물을 바친다(민수 29,8-11). 그뒤에 순백의 아마포로 된 간단한, 그러나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는다(레위 16,4). 이어서 성전 앞에 미리 끌어다놓은 황소 한 마리, 숫양 한 마리, 숫염소 두 마리를 가지고 속죄 예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대사제는 먼저 자신과 자기 집안 곧 사제들을 위한 속죄 예식을 거행하려고 황소를 잡는다. 그리고 나서 성소의 제단에서 숯불을 향로에 가득 담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곱게 간 향을 가득 들고 지성소로 들어간다. 지성소 안에는 증언판 곧 십계명판이 들어있는 증언궤가 있는데, 계약궤라고도 부르는 이 증언궤의 덮개를 속죄판이라고 일컫는다. 대사제는 숯불에 향을 놓아 향 연기가 속죄판을 덮게 한다. 여기에서 향 연기는 구름을 가리키는데, 구름은 하느님이 현존하심과 동시에 사람에게 보이지 않으심을 상징한다. 이렇게 연기 덕분에 대사제가 ‘하느님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됨으로써, 그가 그분 현존의 자리인 지성소에 들어가 있어도 죽지 않게 된다(레위 16,13. 그리고 출애 33,20 참조).

 

그런 다음에 황소의 피를 얼마쯤 가져다가 속죄판 위와 앞에 뿌린다. 생명의 자리라고 생각하던 피가 속죄하는 데에 일정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과 자기 집안을 위한 속죄 예식을 거행한 다음, 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이 될 숫염소를 잡는다. 그리고 아까와 똑같은 방식으로 숫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속죄판 위와 앞에 뿌린다.

 

대사제와 사제들, 그리고 백성을 위한 이러한 속죄 예식은 동시에, 지성소를 위한 속죄도 된다. 그래서 성소를 위한 의식도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한다. 지성소와 성소, 곧 성전은 당신 백성 한가운데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집이다. 그런데 사제들을 포함한 하느님의 백성은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죄 때문에 부정(不淨)하게 된다. 백성의 이 부정은 그 가운데에 자리잡은 성전에도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정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사제는 이어서, 황소의 피와 숫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을 돌며 그 네 귀퉁이에 바르고 또 그 위에 뿌린다. 이로써 성전과 제단이 대사제를 비롯한 사제들과 백성의 죄에서 다시 정화되어 거룩하게 된다.

 

 

희생염소의 예식

 

속죄일에는 이러한 사제적 예식에, 이와는 상당히 다른 통속적 성격을 지닌 희생염소의 예식이 가미된다. 이 둘째 예식은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모르지만, 다른 민족들과 구약성서에도 비슷한 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아(레위 14,4-7.51-53)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판단된다. 대사제는 속죄 예식을 시작하면서, 성전 앞에 끌어온 숫염소 두 마리를 놓고 주사위를 던져 하느님을 위한 것과 아자젤을 위한 것을 결정한다. 하느님을 위한 것은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로 쓴다.

 

이제 아제젤을 위한 염소를 처리하게 된다. ‘아자젤’이라는 히브리 말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광야를 돌아다닌다고 사람들이 믿었던 귀신 이름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칠십인역과 대중 라틴말 성서(불가타)에서는 이 낱말을 ‘희생염소(영어: scapegoat)’로 이해하였다(여기에서 우리말의 ‘희생양’이 나온다). 대사제는 이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온 백성의 이름으로, 그들이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를 고백하여, 그것들을 (상징적으로) 희생염소의 머리에 씌운다. 그리고 기다리는 이에게 넘기면, 그 사람이 염소를 예루살렘 동쪽으로 바로 이어지는 유다 광야, 후대 랍비들의 전통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6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간다. 이 염소는 부정하게 되어 더 이상 제물로 쓸 수 없다. 그래서 아자젤 귀신을 비롯한 악마들이 사는 곳, 또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곳이라고 믿었던 광야로(이사 13,21; 34,11-14; 토비 8,3; 마태 12,43 참조) 내보내는 것이다.

 

희생염소 예식을 마치고서 대사제는 그때까지 입었던 아마포 옷을 벗는다. 이어서 희생염소와 접촉함으로써 부정하게 된 몸을 물로 씻고서 본래의 의복을 입는다. 그리고 나서 자기와 자기 집안을 위하여, 그리고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물로 이미 잡아놓은 짐승들의 굳기름을 제단 위에 태워 바친다.

 

희생염소를 광야로 몰고 갔던 사람도 부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옷을 빨고 몸을 씻은 다음 성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성전에서 속죄 예식을 거행하려고 피를 받은 다음에 속죄제물로 바친 황소와 숫염소의 가죽과 고기와 똥은 성밖으로 내다가 불에 태운다. 이 일을 한 이도 옷을 빨고 몸을 씻은 다음 성안으로 들어온다.

 

이로써 ‘구약성서의 성금요일’이라고도 부르는 속죄일의 예식이 끝난다. 그런데 (제2) 이사야는 ‘주님의 종’이라는 신비로운 존재가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리라고 예언한다(이사 53,6.11-12).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지고 성밖으로 나가신다(히브 13,12). 그리고 당신 자신의 피로써 모든 인간에게 죄의 용서와 구원을 가져다 주신다(히브 9,12).

 

[경향잡지, 2001년 5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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