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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노래들의 노래12: 그이의 모든 것이 멋지답니다(아가 5,16)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407 추천수0

아가, 노래들의 노래 (12) 그이의 모든 것이 멋지답니다(아가 5,16)

 

 

망설이다가 사랑의 때를 놓치고, 연인은 문 밖에서 사라졌습니다(5,2-8 참조). 그래서 마음 안에 고인 사랑을 억누르지 못해 병이 나고 만 우리의 주인공이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에게, 연인을 만나면 사랑 때문에 앓는 내 소식을 전해 달라고 애원합니다.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은 그 연인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토록 간절히 연인을 찾느냐고 묻습니다. “그대 연인이 다른 연인보다 나은 게 무엇인가?”(5,9) 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주인공은 자기 연인을 묘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묘사는 연인의 외모를 중립적으로 전달하는, 말하자면 경찰에게 진술하는 인사착의 같은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대답은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이 연인을 알아보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만인 중에 뛰어난 사람”(5,10)

 

아가 5,10-16은 연인에 대한 묘사입니다. 아가에 남녀가 서로 묘사하는 노래가 몇 개 있는데, 이 단락 하나만을 제외한 4,1-7과 6,4-7 그리고 7,2-9에서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 보입니다. 5,10-16에서만 예외로 여인이 자기 연인을 묘사하는데, 4장을 읽으면서 잠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이것은 고대의 다른 문학 작품과 비교해 봐도 드문 예입니다. 아랍 문학에는 ‘와스프’라는 문학 유형이 있는데, 보통 혼인 예식을 배경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신체를 묘사합니다. 그러나 아가에서는 남녀 모두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경탄합니다. 아가에서 여성은 남성의 사랑의 대상으로만 머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가의 사랑은 서로 동등하게 주고 받는 것입니다.

 

세부 묘사를 시작하기 전에 여인은 “나의 연인은 … 만인 중에 뛰어난 사람이랍니다”(5,10)고 선언합니다. 연인은 과연 그렇게 뛰어난 인물일까요? 잠시 돌려서 생각해 보십시오. 제 쌍둥이는 저를 불 때 ‘이쁜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예쁠까요?(다른 누구도 저를 보고 이쁜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 쌍둥이를 ‘귀염둥이’라고 부릅니다. 남들이 보기에도 귀여울까요? 또 부모님이 보기에는 영 모자라는 것 같고 눈에 들지 않는 사람을 좋다고 따라다니는 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사랑에 빠진 아가씨가 자기 애인이 멋지다고 하면, 그 말을 얼마큼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생각하면, 다시 아가의 본문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겠습니다. 아가의 주인공이 자기 연인을 두고 “나의 연인은 … 만인 중에 뛰어난 사람이랍니다.”(5,10)고 말할 때, 이것을 객관적 진술로 보아야 할까요?

 

물론 아닙니다. “예루살렘 아가씨들”(5,8)이 볼 때 그는 “만인 중에 뛰어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여인에게만 “만인 중에 뛰어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매력은 그들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그런 것인 모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연인에게서 보물을 발굴하듯 아름다움을 찾아냅니다. 방사선으로 몸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듯, 사랑어린 눈길이 감추어진 가치를 드러내 놓습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 자신도 알지 못했던 그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이의 머리는 금 중에서도 순금”(5,11)

 

그런데 아가에 들어 있는 신체 묘사 가운데 유일하게 남자 연인의 모습을 표현하는 이 노래에는 또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연인의 모습을 신상과 같이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이에 병행하는 문학 작품을 이집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특히 임금의 모습을 신상처럼 묘사하곤 했습니다. 아가 입문에서 잠시 다룬 적이 있는데, 아가는 이집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책입니다. 아가와 가장 가까운 노래를 이집트의 사랑 노래에서 볼 수 있지요. 이렇게 볼 때, 아가 5,10-16의 노래 역시 – 아랍 문학과 함께 – 이집트 문학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메소포타미아나 이스라엘에 비하여 훨씬 강한 의미로 파라오를 신격화했습니다. 태양신 라(Ra)가 아버지 임금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왕비에게 장치 임금이 될 아들을수태하게 한다고 여겼기에, 임금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이미 신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에 비하여 메소포타미아와 이스라엘의 군왕 신학은, 임금으로 즉위하는 순간에 하느님께서 “너는 내 아들”이라고 선언하신다고 여겼지요(시편 2,7 참조). 이렇게 파라오를 절대적 신의 아들로 여기다 보니 자연히 파라오에 대한 묘사가 신들에 대한 묘사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5,10-16의 본문에서도 연인은 마치 당당한 신상과 같습니다. “그이의 머리는 금 중에서도 순금”(5,11), “그이의 팔은 보석 박힌 금방망이”(5,14), “그의 몸통은 청옥으로 덮인 상아 조각”(5,14), “그이의 다리는 순금 받침대 위에 세워진 하얀 대리석 기둥”(5,15).

 

실제로 신들을 보았더니 몸이 금으로 되어 있어 그다음에 금으로 신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금으로 신상을 만들다 보니 신들의 몸이 금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집트에서는 금이 신들의 살이라고 일컬어졌다 합니다. 그런데 아가에서는 연인의 몸이 금으로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머리는 “금 중에서도 순금”입니다. 팔이 “보석 박힌 금방망이”라는 구절은, 사실 정확히 번역하기 어려운 구절이지만, 아마도 그 살이 금으로 되어 있고 거기에 반지(‘보석’)가 끼워져 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다리가 기둥이라면 그 다리의 ‘받침대’는 발입니다. 그러니 연인의 발도 금이겠지요.

 

 

“하느님의 모습으로”(창세 1,27)

 

앞에서 연인을 “만인 중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비교 대상은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연인은 거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 우상 숭배일까요? 사랑이 우상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가에서 아직까지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도 하느님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과, 결코 하느님이 될 수 없는 연인 또는 사랑의 관계는 아가 끝부분에 가서야 밝혀질 것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점입니다. 참세 1,27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모습’이라는 히브리어가 본래 뜻하는 것이 ‘상(像), 형상’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모습’은 바로 신상이지요.

 

아가는 정말 놀라운 책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것은 구약성경 인간학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창세 3장부터 이미 하느님의 모상은 손상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아가는 인간에게서 손상되기 전의 모습을 봅니다. 인간이 그대로 하느님의 상(像)임을 알아봅니다. 아가에 따르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가요? 우리는 이 글의 앞부분에서 그것을 이해했습니다.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 안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을 발굴해 낸다고 했습니다. 그 절정이 바로 ‘하느님의 모상’을 온전히 찾아내는 것입니다. 아가는 남녀의 사랑을 통해 이것이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창세기와 일치하는 생각입니다. 창세 1,27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랑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것을 철학괏 ᅟᅵᆫ학에서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요. 인간이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데 창세 1,27에서는 “하느님의 모습으로”에 이어 “남자와 여자로”라고 말합니다. 아가는 바로 이 구절에 근거하여, 사랑하는 여인이 자기 연인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발굴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에 ‘눈이 멀게’ 되었을 대에 오히려 인간의 본 모습을, 하느님께서 그를 처음 만드셨을 때에 바라셨던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 그의 눈길로 내 안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드러내 준다는 뜻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2년 12월호(통권 441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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