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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과 영성22: 동방 교회의 기도 전통에서 영향을 받은 기도 운동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4,324 추천수0

성경과 영성 (22) 동방 교회의 기도 전통에서 영향을 받은 기도 운동은?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가장 완전하고 훌륭하며 아름다운 기도는 무엇일까? 혹자는 ‘시편 기도’를 언급할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의 기도’가 더 옳은 답이다. 복음서마다 전승이 약간씩 차이가 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친히 가르쳐 주시기 위해 주님의 기도를 알려 주셨다는 점이 중요하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 중에 유다인의 전통적 재계(齋戒) 방법인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언급할 때, 올바른 기도를 바칠 것을 권고하면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전한다. 즉 위선자처럼 드러내 보이려고 기도해서는 안 되고, 다른 민족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면서 기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한편 루카 복음사가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전한다. 다만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응하셨다는 점이 다른 복음서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서간 편은 사도들도 간절히 기도하기를 바라면서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어떤 정신과 마음가짐으로 기도에 임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고 전한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도 성경을 읽으면서 기도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를 실천했을 것이다.

 

 

동방 교회의 ‘예수 기도’는 서방 교회에 반향을 일으켰다

 

기도하라는 성경의 권고와 동방 교회의 헤시카즘 전통에 따른 기도 실천(지난 호 84쪽 참조)이 함께 만나면서 서방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는 오늘날 서방 교회의 기도 운동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 실존하는지 허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19세기 후반 러시아에서 출간된 《어느 러시아인의 순례 이야기》가 20세기 초반에 유럽 사회에 소개되면서, 서방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동방 교회의 기도 전통에 다시 한 번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79년에 우리나라에서 《이름 없는 순례자》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이 책은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후 한국 교회에서도 동방 교회의 기도 전통에 관심을 갖고 예수 기도를 실천하는 신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항상 성경 말씀에 의존하면서 영적 여정을 걷던 한 이름 모를 순례자가,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라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다 스승을 만나게 되었다. 스승은 순례자에게 동방 교회의 많은 영적 스승의 가르침이 담긴 《필로칼리아》라는 책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문을 가르쳐 주었다. 순례자는 스승의 지도에 따라 묵주 알을 돌리며 ‘예수 기도’를 하루에 일만 이천 번 이상 드릴 수 있게 되면서, 드디어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터득하였다. 그리고 스승이 사망한 후에 성경과 《필로칼리아》를 지니고 시베리아와 러시아를 횡단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분심과 잡념 없이 언제나 평온하고 기쁜 마음으로 늘 예수 기도를 드리며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예수 기도라는 동방 교회의 단순한 기도 실천 방법이 서방 교회에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단순한 방법으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향심 기도

 

한편 오늘날 평신도가 단순한 방법으로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도 운동이 서방 교회에서 새롭게 시도되었다. 1970년대에 미국 트라피스트회의 몇몇 수도자가 14세기에 저술된 《무지의 구름》에서 기도 방법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현대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여 평신도도 능동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향심向心 기도’(Centering Prayer)로 발전시켜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때 수도자들은 “그냥 앉아서 긴장을 풀고 편안히 있으라”고 한 《무지의 구름》의 권고에서 향심 기도를 착안했다.

 

향심 기도는 기도하는 신앙인에게 두 가지를 시도한다. 하나는 자기 마음에 현존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만나도록 마음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을 돕는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서 자신 안에 현존하며 활동하실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응답하는 일을 돕는다. 우리는 참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 자아를 성찰하여 그것을 넘어설 때, 자기 마음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뵙게 된다.

 

그러기 위해 기도를 바치는 신앙인은 먼저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떠올릴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한다. 그런 다음 편안한 자세에서 눈을 감고 그 단어를 떠올리며 기도한다. 기도 중에 분심과 잡념이 생기면 즉시 선택한 단어로 돌아가 기도에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도를 마치면서 한동안 침묵 가운데 머무른다.

 

향심 기도가 중세 신비신학에 바탕을 둔 기도 전통에서 착안되었다 해도, 《무지의 구름》 자체가 동방 교회의 부정신학에 기반을 두었기에 넓은 의미에서 동방 교회의 기도 전통, 특히 마음의 기도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의 마음에 우리 마음을 결합하는 ‘예수 마음 기도’

 

단순함에 기초한 기도가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한국 교회에서도 단순한 기도를 실천하는 운동이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1990년대부터 성심수녀회의 몇몇 수도자가 시작한 뒤 뜻을 같이하는 몇몇 교구의 성직자들이 점차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예수 마음 기도’라는 기도 운동의 싹이 생겨났다. 이 기도 운동은 예수 성심 신심과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 제시하는 영적 식별 방법, 화살기도 및 예수 마음 호칭 기도와 같은 단순성을 지닌 기도에 바탕을 두고 형성되었다.

 

예수 마음 기도는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에 우리의 마음을 결합한다. 즉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느님 아버지께 마음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바치는 기도다.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인간 영혼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합일할 수 있다. 이때 관건은 우리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을 일치시키기 위해 단순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예수 마음 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 그러면서 자기에게서 우러나오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친다.

 

예수 마음 기도를 할 때는 반드시 성경을 읽는다. 기도를 바치는 사이에 짧은 시간을 마련하여 복음서를 중심으로 한 신약성경을 읽으며 기도를 완성한다. 성경 말씀을 읽는 것도 훌륭한 기도 실천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여정은 이성의 작용으로 예수님을 상상 속에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체험케 한다.

 

동방 교회는 오랫동안 하느님께 마음으로 다가가는 기도 전통을 발전시켰다. 하느님께 마음을 바쳐 드리는 기도는 몇 마디 말만 필요한 단순한 기도다. 영성 생활마저 이성적이고 사변적으로 발전시킨 서방 교회의 전통에서 보면 동방 교회의 기도 전통은 분명히 매력적이었다. 결국 단순한 기도는 오늘날 서방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서방 그리스도인이 예수 기도를 앞다퉈 실천하게 하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 교회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또 한 가지, 기도 안에서 성경의 활용 문제가 정리되었다. 중세 초반까지 동서방 교회는 거룩한 독서의 전통에 따라 성경 말씀에 머물면서 바치는 기도를 실천했다. 그 후 서방 교회에서 수도원을 중심으로 거룩한 독서 전통을 근근이 유지하다가 오늘날 많은 신앙인이 다시 관심을 갖게 되면서, 성경을 이성적이고 학문적인 호기심으로 접근하기보다 기도의 원천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 결과 성경 독서와 기도 실천이 조화를 이루면서 그리스도인이 삼위일체 하느님을 올바로 찾아갈 수 있는 안전한 길을 개척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오늘날 새롭게 시도하는 기도 운동이 올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은, 동방 교회의 기도 전통을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여 동서방 교회의 기도 전통에 있는 장점만 모아 훌륭한 기도 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도 방법은 동양 사람이면서도 서방 교회에 속한 한국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잘 맞는 기도 방법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우리에게 꼭 맞는 방법으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 전영준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영성신학, 영성역사, 신비사상 등을 가르치며,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사도직) 총무로 활동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0월호(통권 451호), 전영준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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