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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탈출기를 처음 읽는데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4,137 추천수0

[탈출기를 처음 읽는데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탈출기를 잘 담은 애니메이션으로 [이집트 왕자](1998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영화는 모세의 출생부터 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갈대 바다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하기까지의 과정(탈출 1,1-15,21 참조)을 담았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 흘러나오는 노래는 영화의 주제를 확연히 드러냅니다. “어깨를 가르는 모진 채찍질/ 온몸에 맺히는 피와 땀방울/ 하느님, 우리의 신음소리 들으시어/ 고통과 어둠에서 건지소서/ 핍박받는 백성을 굽어 살피소서/ 구하소서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끝 장면에서 모세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들고 백성 앞에 나섭니다.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해서 완전히 구원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겠지요.

 

 

탈출기는 우리 신앙에 관한 이야기

 

‘일상 탈출’, 분주하고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삶의 활력을 되찾으려는 시도입니다. 현대인이 꿈꾸는 삶이지요. 그래서 ‘탈출’하면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와 해방이 연상됩니다. 탈출기도 자유와 해방과 구원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어떤 장소나 구속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의 탈출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창세기에서 그 믿음의 여정은 성조들(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탈출기에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드러납니다. 백성의 이야기인 탈출기는 곧 우리 신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탈출 1,1에는 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손은 늘어만 가서 그들은 번성하고 더욱 강해집니다. 마침내 이집트 땅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가득 찹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하늘의 별들처럼 후손이 많아지리라’(창세 15,5 참조)는 말씀이 실현된 것인데, 이는 오히려 억압과 구속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상황을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왜 이스라엘 백성을 고통과 어둠 속에 갇히게 하셨을까요?

 

 

파라오의 명령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려라’

 

탈출 1,1-2,22에는 여러 죽음이 등장합니다. 이집트 임금은 점점 번성하는 히브리인들이 두려워 특단의 대책을 내놓습니다. 그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자들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탈출 1,16). 이 대책은 실패로 끝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이 분부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이집트 임금은 히브리인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고 드러냅니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탈출 1,22).

 

파라오가 히브리인 사내아이들을 죽인 반면, 모세는 이집트인을 때려죽입니다. 공주(파라오의 딸)의 양자로 궁궐에서 교육받고 자라온 모세는 어느 날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갑니다. 그곳에서 이집트인 하나가 히브리인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고통 받는 동포에 대한 연민과 약자에 대한 정의감을 느낀 그는 그 이집트인을 때려 죽이고 시신을 모래 속에 묻어 감춥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파라오는 모세를 죽이려 합니다. 모세는 파라오를 피

해 미디안 땅으로 도망칩니다. 파라오의 억압에서 자기 혼자 탈출한 셈입니다.

 

 

죽음의 세력은 생명의 힘을 꺾을 수 없다

 

이야기가 죽음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난다면 그건 성경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하느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맞설 생명의 힘을 곳곳에 부어넣어 주십니다. 우선 산파들은 히브리인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파라오의 말에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지혜가 죄 없는 아기들의 생명을 살립니다.

 

레위 집안의 남자 ‘아므람’과 레위의 딸 ‘요케벳’에게서 태어난 모세. 요케벳은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기릅니다. 그러나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탈출 2,3)둡니다. 요케벳이 파라오의 명령을 따르려고 아기를 강가에 놓아둔 것일까요? 누구에게든 발견되어 생명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강가에 놓인 아기를 지켜본 사람이 있습니다. 아기의 누이입니다. 그런데 그 누이는 지켜만 보지 않습니다. 파라오의 딸이 아기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기던 순간 그에게 나타나,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탈출 2,7) 하고 제안합니다. 누이가 부른 유모는 바로 모세의 어머니 요케벳이었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파라오의 딸이 히브리인 사내아이를 ‘물에서 건져내고’ 그 누이와 어머니로 하여금 그를 키우게 합니다. 산파들, 요케벳, 모세의 누이, 파라오의 딸 모두 죽음에서 생명을 구한 사람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인을 때려죽인 일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보셨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싸우고 있던 히브리인의 입을 통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탈출 2,14) 그 순간 모세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깨닫습니다. 그 깨달음은 미디안 땅의 어떤 우물가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목자들에게 쫓겨난 미디안 사제의 딸들을 돕습니다. 그가 어떻게 도왔는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이집트에서 했던 폭력은 결코 아니었을 것입니다. 개인의 폭력으로는 구원을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을 느꼈겠지요. 우물가에서 모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낯선 땅의 나그네로서 이집트 왕자라는 명예와 권력과 부를 벗어던지고,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 작은 탈출을 감행한 것입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생명으로 가는 작은 기적

 

“아가야 미안하다/ 이 길만이 네가 살 수 있는 길/ 언젠가 만날 거야/ 주님께서 구해 주시는 날.” 요케벳은 아기를 잡으러 다니는 이집트 병사들을 피해 모세를 품에 안고 강가로 달려갑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반드시 모세를 구해 주시어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기적을 낳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기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그 기적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생명으로 가는 작은 기적입니다. 삶의 이곳저곳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나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월호(통권 442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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