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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성경에서 산(山)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12-27 조회수2,609 추천수0

[성경 이야기 01] 성경에서 산(山)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산행 – 마종기

 

“이른 아침에는 나무도 우는구나

가는 어깨에 손을 얹기도 전에

밤새 모인 이슬로 울어버리는구나.

누가 모든 외로움을 말끔히 씻어주랴.

아직도 잔잔히 떨고 있는 지난날,

잠시 쉬는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앞길을 묻지 않고 떠나온 이번 산행,

정상이 보이지 않는 것 누구 탓을 하라.

등짐을 다시 추슬러 떠날 준비를 한다.

시야가 온통 젖어 있는 길.”

 

마종기 시인의 ‘산행’이라는 시이다.

 

외국사람들이 서울이 좋은 이유 중에 산이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버스를 타고 몇십 분만 가면 바로 산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도 복잡한 도심을 떠나 산에 오르기 시작하면 공기와 분위기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땀을 흘리며 한발 한발 산으로 오르다 보면 어느새 분심을 털어버리고 복잡한 생각도 정리가 된다.

 

산은 예로부터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초월적, 영적 경험의 장소로 생각했다. 산은 주변 지역보다 높은 자연지형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산지가 전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악국가이다. 한반도의 지형은 구릉성 야산이 많은 탓에 사람이 사는 곳도 산과 짝을 이루는 강을 낀 곳에 발달했다. 우리나라의 현재의 대도시들은 대부분 산을 포함하거나 접해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산을 가까이 하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산을 숭배하는 민간신앙이 생겼고, 산은 늘 예술적, 심미적 감상 대상이 되었다. 또한 인류사에서 산을 지키고 다스리는 산신에게 종교적인 믿음을 바치는 것은 오래된 민간신앙이다. 산에 대한 신앙은 천지 및 천체신앙과 함께 자연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우리나라의 민족문화에서는 단군신화와 수로신화는 산악신앙의 가장 오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두 신화에서 산은 신이 강림하는 자리이고, 사람들로서는 강림하는 신을 받드는 자리로 나타난다.

 

성경에서는 산을 여러 상징과 은유로 표현된다. 시편에서는 산과 언덕을 자주 의인화한다. “강들은 손뼉 치고 산들도 함께 환호하여라”(시편 98,8). 또한 산들이 뛰어놀기도 한다. “산들아, 너희가 숫양들처럼, 언덕들아, 너희가 어린 양들처럼 껑충껑충 뛰다니?”(시편 114,6).

 

예로부터 산은 사람에게 친숙하면서도 중요한 자연 지형이다. 가파른 경사, 절벽 등으로 국가의 경계를 이루고 전략적 요새가 됐다. 세파에 지친 이들은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산에서 휴식처를 찾기도 한다.

 

성경에서 산은 피난처와 안전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당신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산에 빗대기도 한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감싸고 있듯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감싸고 계시다, 이제부터 영원까지”(시편 125,2).

 

구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미디안족의 위협을 피해 산에다 은신처를 마련하기도 했다. 당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자 이들을 미디안족의 손에 넘겨 버리셨다. 산속의 동굴과 나무 틈새에 몸을 숨긴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시 아버지를 찾아 울부짖었다. 그러자 하느님은 기드온에게 표징을 보여주시고 미디안을 물리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판관 6,1-7,20). 하느님의 백성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산에서 하느님을 다시 찾고 그분의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다.

 

또 산은 하느님의 영원하신 실존의 기준이다. “산들이 생기기 전에 땅이며 누리가 나기 전에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시편 90,2). 거칠고 낯선 산이 가진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함과 그 가시적 광대함은 인간 한계를 실감케 하는 경외의 표징이 된다.

 

산은 성경의 거의 처음부터 거룩한 장소로 등장한다. 창세기에서 산은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초월적 영적 경험의 장소이다(창세 22,1-14). 하느님께서는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기도 하셨다. “모세는 미디안의 사제인 장인 이트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는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탈출 3,1-2).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탈출 3,12).

 

신약성경에서도 산은 예수님께서 군중을 피해 홀로 계시면서 피곤을 회복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찾는 곳으로 표현된다. 또한 예수님께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 장소도 산이었다. 산은 악마와 같은 영적인 존재가 활동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마태 4,8-9). 예수님은 산에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고,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기도 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천상의 모습으로 변화되신 곳도 산이었다(마태 17,1-8).

 

현재 예루살렘 올리브 산 정상에는 예수 승천기념 성당이 있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승천하셨다고 믿는다. 유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올리브산에서 부활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는 무덤이 많고 공동묘지가 넓게 퍼져있다. 이처럼 산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속성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역사를 펼치신 거룩한 장소이다. 성경에서 산은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중요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평화가 넘치는 샘물, Autumn 2022 Vol. 32,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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