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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35: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애가 2,18)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8-18 조회수3,909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35) “주님께 소리 질러라, 딸 시온의 성벽아”(애가 2,18)


아~, 예루살렘도 성전도 무너졌구나!



“아.”

애가 1장, 2장, 4장이 “아”라는 탄식으로 시작됩니다. 이 한 단어로 이 책의 내용이 요약됩니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특히 성전 파괴의 애통함을 표현하는 책이 애가입니다.

애가에는 저자가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전승에서는 예레미야가 애가를 썼다고 여겼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그런 언급이 없지만,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역에서는 이미 애가의 저자가 예레미야로 되어 있습니다. 타르굼과 대중 라틴말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주제 때문에 그렇게 여겼을 것입니다. 애가에서는 임금이 유배가 있는 상황을 언급하고 있고(4,20), 당시의 상황과 거기에서 느끼는 고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는 점 때문에 예루살렘 함락 직후에 작성된 책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작성 연대는 더 늦은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임금과 예언자에 대한 태도 등 내용상 몇 가지 점들이 예레미야에게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애가가 히브리 성경에서 예언서에 속하지 않고 성문서에 속한다는 사실도 이 책의 작성 연대를 늦추어 잡게 합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다섯 편의 애가가 한 사람에 의해서, 또는 같은 시대에 작성되었는지도 분명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노래는 예루살렘 함락에서 즉각적으로 느끼는 슬픔만을 표현하고 있고, 또 어떤 노래는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이루어졌을 신학적 성찰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시대에 생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수처럼 되시어”

히브리 성경에서 이 책의 제목은 “아.”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에카’입니다. 우리말 ‘애가’와 발음이 비슷하지만, 히브리어로는 탄식을 나타내는 감탄사입니다. 탈무드에서는 이 책을 ‘키나’의 복수형인 ‘키노트’라고 지칭하기도 했다고 전하는데, ‘키나’는 본래 죽은 이를 애도하는 조가를 나타냅니다. 말하자면 시온을 한 사람처럼 의인화하면서 그 시온의 죽음을 슬퍼하는 노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애가에는 시온에 대한 애도만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탄원도 있고 때로는 시온이 스스로 말을 하기도 하지만, 사용된 운율이나 전체적인 내용을 보아서는 시온에 대한 조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시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는 구약 성경의 애가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원전 2000~1700년대 수메르와 고대 바빌론에는 멸망한 도시에 대한 조가들이 있었습니다. 이 노래들은 도시를 의인화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신의 분노로 멸망하게 된 도시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었는데, 애가는 이러한 문학 유형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애가에는 바빌론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바빌론 군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뚫고 성전을 불살랐어도, 애가는 예루살렘과 하느님에 대해 말할 뿐 바빌론을 탓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은 황폐하게 되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과거에 벗이었던 이들도 모두 떠나갔습니다. 아무도 예루살렘을 위로해 주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이 이렇게 된 것은 “그의 많은 죄악 때문에 주님께서 그에게 고통을 내리신 것”(1,5)으로 이해됩니다. 예루살렘을 멸망하게 하신 것은 하느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예루살렘을 선택하셨던 그 하느님께서 “원수처럼 되시어”(2,5) 예루살렘을 쳐부수셨기에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2장 18-19절에서는 딸 시온의 성벽에게 주님 앞에서 통곡하라고,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시내처럼 흘리라고 말합니다. “보소서, 주님, 살펴보소서, 당신께서 누구에게 이런 일을 하셨는지”(2,20).

3장은 애가 중에서도 가장 길고 문학적으로도 최고도의 기법을 보이며 책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마치 욥과도 비슷한 인물이 “나는 그분 격노의 막대로 고통을 겪은 사나이”(3,1)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말합니다. 그는 앞에서와같이 자신의 고통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받아들일 뿐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고통이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믿고 하느님께 희망을 둡니다. “젊은 시절에 멍에를 매는 것이 사나이에게는 좋다네”(3,27).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유배를 겪었던 한 개인일 수도 있고, 특별히 예레미야와 연결시키기도 하며, 예루살렘 또는 유다 백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애가 전체의 맥락 안에서 본다면, 집단적 차원은 분명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온을 치셨어도 돌아갈 곳은 하느님뿐

특별한 점은, 이렇게 3장에서는 고통을 받아들이지만 5장은 다시 대답 없는 탄원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탄원에서,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애가의 마지막 말은 “정녕 저희를 물리쳐 버리셨습니까? 저희 때문에 너무도 화가 나셨습니까?”(5,22)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느님의 진노 속에서도 애가는 “주님께서는 영원히 좌정하여 계시고 당신의 어좌는 세세 대대로 이어집니다”(5,19)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께 달려 있다고 믿기에, 멸망도 그분께서 하신 일이고 회개도 주님께서 이루어주실 일이라고 믿기에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저희가 돌아가오리다”(5,21)라고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 딸 시온을 치셨어도, 원수같이 무서운 분이 되셨어도 시온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갈 곳은 하느님뿐이십니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16일,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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